[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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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봉사 일정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의료봉사팀은 봉사일정을 종료하였고 공군지원을 받아 헬기 이동을 하게 됐다.
멀미가 심한 나는 약효가 돌아야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자진해서 후발대에 합류 했고 선발대가 돌아오기 전에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모우루 발전소에 다녀오기로 했다.
고반장님께 전해드릴 사항도 있고 오늘 전달 받은 팩스 중에서 직접적으로 안내를 해야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모우루 부대를 돌아보고 발전소로 출발한 나는 빠른 속도로 발전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드렸던 탓인지 고반장님은 밖에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계셨었는데 그래서 나는 망설임없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미리 연락드렸던 한윤슬이라고 합니다."
"어이고, 의사선생 아닌겨? 그래서 뭐땜시 이리 급하게 찾아온겨? 오늘 돌아간다 들었던거 같은디."
"네 곧 출발합니다. 하지만 의료 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있었던 분들의 재검사 결과는 직접 말씀드리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의료팀이 떠나고 나면 아무리 검사 결과지가 있어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한정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찾아온 것이고, 그런 나의 말에 고반장님은 더이상의 의문을 표하지 않고 조용히 나의 설명을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런데 설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땅에서 진동이 느껴지더니 크레인이 흔들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이 힘들 정도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그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고반장님과 함께 내부에서 작업을 하던 이들을 향해 소리치면서 건물 입구로 달려들었다.
"빨리!!! 도망치세요!!!"
공사중인 이 건물은 아무리 단단한 설계를 했다 해도 아직은 결국 미완성인 고철 덩어리일 뿐이었다.
이런 강진에서 버틸리가 없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들을 최대한 피하면서 마지막 인부들까지 끝까지 부르던 나는 순간 고반장님 위로 떨어지는 잔해를 보고 다급하게 고반장님을 감쌌다.
"크윽-"
"의사선생! 괜찮은겨?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여!"
"고반장님도 어서 대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 붕괴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떨어진 잔해를 털어내면서 말한 나는 진지하게 와그작 무너져 내린 건물 입구를 보다가 위에서 점차 떨어져 내리는 잔해들에 급하게 고반장님을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인부들을 건물 멀리로 대피시킨 고반장님은 무사했지만 인부들의 상태와 인원을 살핀 고반장님의 얼굴을 슬픔으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직 못 빠져 나온 이들이 많은거 같어."
"…저희는 더이상 진입해서는 안 됩니다. 이곳 구조대원들이 오길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2차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잔인하지만 그게 사실이었고 인부들도 지진의 공포를 겪은 탓인지 내 말과는 별개로 섣불리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진이 잦아들 무렵 근처에서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의료팀이 들고 있던 무전기는 전날 모우루 부대를 통해 주인에게 반납하였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고반장님이 들고있던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지직…발전소… 지직… 무사합니…지직지직
"아무래도 통신 자체에 잡음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거 같은겨. 이기 우찌해야하는기여."
절망이라 칭할 법한 얼굴을 하는 이들을 뒤로 한 나는 고반장님께 양해를 구해서 무전기를 받아 무전을 보냈다.
-여긴 해성 발전소. 여긴 해성 발전소. 발전소 붕괴. 발전소 붕괴.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요청. 지원요청. 오바.
-지직… 알겠다. 지직지직… 현장 지원 보내겠다. 오바.
드디어 통신에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마지막에는 깔끔한 무전이 전달되었다.
지원요청을 확답 받은 나는 다친 인부들을 위해 채널을 바꿔서 망설임없이 메디큐브에 있을 이를 부르기 위해 무전을 보냈다.
"여긴 해성 발전소. 메디큐브. 메디큐브. 발전소 붕괴. 발전소 붕괴. 지원요청. 지원요청. 오바."
-지직…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급박할 상황일 때는 설명보다는 간단한 상황 전달만 하는 편인 나는 그렇게 그들의 지원을 확답을 받고 바로 고반장님께 무전기를 전달하고 차에 있던 겉옷을 걸쳐입고 현장 부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섣불리 손을 대서는 안되지만 상황파악을 미리 해두면 그들이 도착했을 때 대처를 하기 쉬울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피와 비명으로 물든 구조 현장에 발을 들였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살리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였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한 미래에도 나의 의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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