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2

-out

"혹시 인터넷만 되면 됩니까?"

차를 멈춘 시진의 말에 뒷좌석에 앉아있던 모연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그렇다고 답했고 그에 시진은 차의 방향을 돌리더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철창으로 만들어진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져 있었고 그 안으로는 화분들이 가득한 집 앞에 차를 세운 시진은 도착했다면서 차에서 내리고는 그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가려던 데는 아닌데 여기가 인터넷은 더 빠를거예요."

"유시진 대위님."

"예?"

시진의 뒤를 말없이 따르던 모연과 달리 차에서 내려선 윤슬은 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채 그를 불러세웠다.

윤슬의 부름에 몸을 돌려세운 시진은 의아한 기색을 내비췄고 그런 시진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인지 윤슬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덤덤히 말을 이었다.

"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한선생은 다운타운에 가기만 한다 하셨죠."

"예. 먼저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라면 한시간 뒤에 여기로 오시겠습니까? 강선생도 데려다 드려야 해서 말입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말입니다. 강선생님과 함께 먼저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럼 연락 주시겠습니까? 데리러 가겠습니다."

시진의 말에 윤슬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시진에게 내밀었다.

"…연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책임자는 유시진 대위님이니 필요하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시진은 윤슬의 말에 눈썹을 까딱이고는 윤슬에게 다가갔고 윤슬이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 능숙하게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건네주었다.

"콜사인이… 빅보스였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윤슬이 화면을 한번 보고 시진을 보면서 하는 말에 시진은 놀란 듯한 기색을 품은 눈을 했고 느릿하게 맞다고 답했다.

"그럼 콜사인으로 저장해두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빠르게 시진의 번호를 빅보스라고 설정한 윤슬은 이만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뒤에 서있던 모연에게 일 보고 조심히 들어가라는 안부를 남긴 다음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선생, 원래 저랬습니까…?"

고개를 기울이면서 몸을 돌린 시진이 모연을 향해 묻는 말에 모연은 다른 의미로 고개를 갸웃했고 그런 모연의 반응에 픽하고 웃은 시진은 안으로 들어가자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유시진씨가 말하는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한쌤은 원래 하나로 단정 짓기에는 비밀이 많은 분이라서요."

"…그렇군요."

시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나무로 된 문을 밀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모든 공간을 확장한 듯한 형태라서 넓었지만 그 안에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해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딸랑-

"계십니까?"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시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리자 안 쪽에서 소리없이 여성 한 명이 나타났다.

"응? 그때 그 잘난척 하던 오빠네."

모연에게는 익숙한 모국어로 말을 하지만 어눌한 말투인 여성은 매우 덤덤한 얼굴로 들고왔던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근처에 있던 물건을 치우자 옆에 서있던 시진은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 사람에게 물었다.

"주인 바꼈습니까? 여기 다니엘 가게 아닙니까?"

"다니엘이 그래요? 자기 가게라고? 다니엘이랑 나랑 공동사장이거든?"

어이없다는 듯한 기색으로 쏘아붙이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시진의 옆에 서있던 모연은 움찔 하면서 한 걸음 물러섰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시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다니엘은…. 아, 입국금지 됐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몰라요, 그 멍청이. 입국 금진 풀려도 내 가게는 출입금지야."

툴툴 대면서 말하던 그녀는 모연을 그제서야 발견한 것인지 그녀의 시선이 모연에게로 옮겨졌다.

"그런데 이 언닌 누구야? 한국에서 왔다는 의료봉사단 의산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서 단숨에 모연에게 다가와 숨을 들이켰고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모연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도 모연에게 그 이상 다가설 생각은 없었는지 금세 뒤로 물러서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맞네. 에탄올 냄새."

그런 그녀의 반응에 모연은 처음으로 시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예요?"

"본업은 피스메이커 긴급구호팀 소속 간호사예요. 뭐 철물점은 부업인거 같고."

"아…, 좋은 일 하면서 사시는 구나. 돈 안 되는…."

"재밌는 일 하면서 사는 건데, 돈 없어도 되는."

진지해진 얼굴이 된 그녀의 말에 모연은 입을 굳게 닫았고 그에 그녀의 시선은 다시금 시진에게로 옮겨져 갔다.

"근데 오빤 점쟁이 아입니까? 내 본업, 부업 다 어떻게 알았지?"

"다니엘한테 들었던거 같아서. 고려인 아내에 대해."

"아내는 무슨- 우린 그냥, 동료! 근데 뭐이 필요해서 왔습니까? 다니엘 말고 뭐든 다 있는데."

"와이파이 좀 쓸 수 있을까 해서요."

"아, 와이파이…. 어, 보자~. 그, 파이가…."

두리번거리면서 뒷쪽으로 가는 그녀를 시진과 모연이 시선으로 따랐고 모연은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한 기색으로 조용히 시진에게 물었다.

"여기 와이파이 되는거 맞아요?"

"잘 뒤져보면 여기 어디 미사일도 있을껄요. 일 보고 여기서 기다려요. 한 시간이면 됩니다."

그렇게 모연에게 말한 시진은 수납철제 사이로 고개를 숙여서 와이파이를 찾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의사 선생 좀 잠깐 맡깁시다."

그에 시진을 돌아본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수긍임을 알아차린 시진은 다시금 모연에게로 시선을 돌려서 말을 이었다.

"싸우진 말고, 저 친구 총 있어요."

마지막 말은 귓가에 작게 말했지만 모연은 시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고 그 말을 끝으로 나가려는 시진의 행동에 그를 잡으려다가 그 순간 훅하고 막아서는 이의 행동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걱정 마시오. 여기 어디 분명 공유기 있어."

시진에게 향하는 퉁명한 반응과 달리 호의적이라는 게 분명한 기색인 그녀의 말에 모연은 얼떨떨하게 웃어보였고 이후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리예화라는 것도 알게 됐고 무사히 송금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윤슬은 바 혹은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바 안에 서있던 여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발렌타인.]"

"[나야말로 하고 싶은 말인 걸. 닐(Nil)]"

"[그 이름도, 반갑네.]"

윤슬은 씁쓸한 미소를 그렸고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발렌타인은 윤슬에게 검은색인 가방을 하나 꺼내주었고 윤슬은 가만히 그 가방을 받아들었다.

가방을 열자 안에는 상자가 하나 들어있었고 상자는 뚜껑만 열면 내용물을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기에 윤슬은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지 않은 채 뚜껑만 열어서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는 분리한 총이 두 자루 들어있었는데 윤슬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상자를 닫고 가방을 닫자 발렌타인이 윤슬을 향해 물었다.

"[확인 안 해봐도 되겠어?]"

"[발렌타인을 신뢰하니까.]"

"[…넌 언제나 빛나는구나. 행운을 빌게.]"

"[…고마워.]"

윤슬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발렌타인이 그를 붙잡아 세웠다.

"[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무엇을?]"

"[행복해?]"

"[….]"

앞뒤가 전혀 상상도 되지 않는 질문을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윤슬은 가만히 발렌타인을 바라봤고 그 순간만큼은 발렌타인 또한 윤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마주했다.

"[미안. 그 질문엔 답할 수가 없네.]"

"[아냐, 그럼 조심히 가.]"

"[기회가 된다면 또 올게.]"

바를 사이에 두고 가볍게 포옹을 한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길을 걷기 위해 윤슬은 돌아섰고 발렌타인은 그 자리에 남아 혼자가 되어버린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네가 행복해지길 바랬어. 닐-]"

당사자는 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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