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67
-out
환자들은 의료진보다 이틀 앞선 수요일 귀국이었으며, 의료진은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그 소식에 의료진은 저마다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윤슬은 덤덤하게 하루 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한선생님. 닥터 다니엘이 한 번 만나고 싶다는데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닥터 다니엘 말입니까?"
"예."
윤슬은 시진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곧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얼굴을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아, 근데 그 사람이 저를 왜?"
"글쎄요…."
"…시간 괜찮으시면 동행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다들 혼자 못 나가게 막아서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약 좀 먹고 나오겠습니다."
"그럼 먼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윤슬은 시진이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려 나가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자신 또한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숙소보다는 메디큐브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던 윤슬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은 짐들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침상 옆에 놓여있던 작은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약품들이 들어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빈공간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약통 하나를 집어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손 위로 털어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입안으로 그것을 털어넣은 윤슬은 탁상 위에 놓여져 있던 물병에 담긴 물을 입 안에 머금은 다음 바로 목울대를 움직이는 것으로 입안에 머금고 있던 것들을 삼켜냈다.
그 다음 바로 몸을 돌려서 나가려던 윤슬은 곧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자심의 짐이 단겨있는 가방을 향해 시선을 주었고 곧 윤슬은 그 안에서 남색의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잠시 응시하던 윤슬은 곧 그것은 품 안에 집어넣은 다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망설임없이 걸음을 옮긴 윤슬이 도착한 곳에는 시진이 군용지프에 기댄 채로 서있었다.
"출발합시다."
"아, 네. 타세요."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윤슬이 접근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던 시진은 윤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는 윤슬이 차에 탈 수 있도록 문에서 비켜섰다.
윤슬이 지프에 탄 뒤로 시진 또한 지프에 올라탔고 이후 두 사람은 다니엘의 가게가 있는 시내로 향했다.
지진 피해가 복구중인 탓에 분주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다니엘의 가게 쪽은 큰 피해가 없었는지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다니엘? 아무도 없습니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내부로 들어선 시진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윤슬의 존재도 신경쓰였지만 그것보다 다니엘이 벌써 떠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다.
다니엘이 윤슬을 보고 싶다 요청한 게 꽤나 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다니엘은 윤슬이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떠났을 수도 있을거라는 상상도 들어 깊은 한숨을 내쉬던 시진은 곧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유대위님?"
"아, 다니엘. 아직 떠난 게 아니었군요."
"네. 물론 이번주내로 떠날 생각이라 정리중이지만,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뇨, 예전에 다니엘이 한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얘기했던 게 떠올라서 말입니다."
"한윤슬 선생님이요?"
다니엘은 곧 시진의 뒤에 서있는 윤슬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고 그런 다니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윤슬은 곧 그를 자신의 기억 속에서 찾아냈다.
"…예전에 그 분이시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닥터 닐. 그 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날 저는 제 동료를 눈 앞에서 잃을 뻔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니엘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에 시진이 조용히 눈을 굴리며 윤슬을 쳐다보자 무표정으로 다니엘을 응시하면서도 그에게 일어서라는 말을 하는 윤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렇게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그 때의 일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제 삶의 변환점이었으니까요."
"그렇군요…."
"혹시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놓여있던 테이블에 있던 종이에다가 간단하게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서 윤슬에게 다가와 그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든 윤슬은 그저 감흥없는 얼굴로 그것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동안 찾아오지 않으셔서 만나기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떠나기 전에라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역시 저희들에게는 무소식이 희소식인가 봅니다."
"…닥터 다니엘이라고 했었던가요?"
"예, 지금은 피스메이커 긴급구호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만날 수도 있겠군요."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고 싶습니다. 은인이기 이전에 닥터 닐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존경할만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신다해도 눈이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니엘의 말에 윤슬은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일 뿐이었고 그런 윤슬의 모습을 시진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다니엘의 행동에 윤슬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불편했습니까…?"
시진이 차로 곧장 걸음을 옮기는 윤슬의 뒤를 따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윤슬이 우뚝하고 멈춰섰고 그에 시진도 윤슬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멈춰섰다.
"……저는 그저 어머니가 군의관이셨기 때문에 의사가 된 겁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순수하게 사람을 살리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의사더라고요."
"……."
"솔직히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보인 윤슬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고 그런 윤슬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진은 그런 윤슬의 모습에 자신과 다르게 저 사람은 무너질 것이 더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어디까지 무너져야지만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일까.
왜 저 사람은 자신에게 해준 말과 다르게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려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기댄다면 언제든지 그를 부축해 줄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윤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진은 곧 자신을 향해 돌아서는 윤슬의 행동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시간 괜찮으시면 어디 좀 같이 가시겠습니까."
"…예."
당신의 부탁이라면 어디라도.
시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프에 올라타는 윤슬의 행동에 자신 또한 지프에 올라탔다.
윤슬은 시진에게 '나바지오 해변'으로 가달라고 요청했고 그런 윤슬의 요청에 시진은 내심 놀랐지만 그런 윤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바지오 해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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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는 페가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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