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0
한윤슬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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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수송기에서 내린 후 의료팀 오리엔테이션은 이곳 모우루 중대의 부중대장이라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 서대영 상사님이 맡았고 나는 그들 속에 뒤섞여서 가만히 브리핑을 들었다.
"앞으로 14박 15일간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동안 지켜야 할 주의사항과 행동수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막사 주변에는 우르크 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들이 아직 완벽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에, 울타리 경계 내 안전구역 외의 출입은 전면 통제합니다. 식수는 반드시 공급되는 생수만 드시고, 샤워장 이용은 1일 1회로 제한합니다."
딱딱한 말투였지만 그게 더 익숙한 나에게는 그 목소리가 나름 감회롭게 느껴졌다.
"구호 현장에서 여러분이 신경 써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안전과 건강입니다.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우리 군도 최대한 협조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상 마치겠습니다. 단결."
절도있는 군인 답게 경례를 하는 것으로 브리핑을 마친 서대영 상사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의료팀과 함께 박수를 치던 나는 곧 몇몇 군인들이 의료팀들이 머물 막사로 안내하는 것을 조용히 따랐다.
그런데 안내를 받던 도중 나는 유시진씨의 제지에 걷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한윤슬 선생님과 송상현 선생님께서는 이쪽 막사를 사용하시면 되십니다."
그가 안내한 곳은 2인이 머무는 막사였는데 가만히 그곳에 들어선 나는 느리게 안을 훑어보고는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 그를 말로 붙잡아 세웠다.
"유시진 대위님. 어째서 이렇게 배치됐는지 알 수 있습니까?"
"…상부의 명령을 받은 것 뿐입니다. 그럼 이만. 단결."
그가 나가고 나서 베드에 누운 송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잘 된거 아니예요?"
"…"
복잡함에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뒤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면서 베드에 주저앉은 나를 쳐다보고 있던 송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은거 맞아요? 약은, 먹었어요?"
"예…. 조금 쉬면 괜찮을겁니다."
"그래. 그럼 쉬고 있어요. 짐은 조금 있다가 정리하고."
"송선생님도 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자애한테 다녀와서 쉴려고요."
"…알겠습니다."
"다녀올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쉬세요."
"…."
웃으면서 답하지 않은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가는 송선생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떨군 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면서 한동안 자르지 않아서 길어진 머리가 흘러내리자 뒤로 쓸어넘겼다.
병원에 있을 땐 어차피 항상 써지컬 캡을 쓰고 있다보니 자각하지 못했었는데 여기서는 아무래도 묶거나 해야할 것 같았다.
'머리끈은…, 빌려야겠네.'
일단 대충 머리카락을 털어낸 나는 처음으로 길른 머리들임에도 그저 귀찮게만 느껴졌고 우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벗어서 캐리어에 넣은 야상과 가디건 대신 스포츠백에 넣어두었던 가벼운 재질의 후드가 달린 남방을 꺼내서 걸쳤다.
머리는 대충 쓸어서 후드 안으로 감춘 나는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막사에서 나왔고 산책을 위해 발걸음을 옮길려다가 우연히 사진을 찍고 있는 이선생님을 봐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서인지 군복에 최우근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이가 그에게 다가서는 것도 확인한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장 사진 지웁니다."
카메라 앨범을 확인하는 듯한던 그가 불편한 기색으로 이선생님에게 지워달라 말하면서 카메라를 건넸지만 이선생님은 순수하게 잘못나왔죠? 다시 찍어드릴게요 라고 말했는데 그에 그가 뭐라고 하려는 것을 내가 끼어드는 걸로 막았다.
"이선생님 이곳에서는 이곳에서의 규칙이 있는 겁니다. 저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분들의 말에 따라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건가요? 그럼, 전부 지워야 하나요…?"
이선생님이 눈치를 보면서 묻는 말에 나는 최우근 중사님을 쳐다봤고 그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는 나지막하게 부대원들의 얼굴이 나온 것만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다 지우고 이 분한테 확인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네!"
열심히 손을 움직여서 앨범을 뒤지면서 이곳 부대원들이 찍힌 사진들은 전부 지운 이선생님이 최우근 중사님께 확인 받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인사를 하고 물러났고 그도 나에게 경례를 하는 것으로 답하고 환영식 준비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이선생님도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식사하러 가시고 저는 잠시 산책 좀 하다 오겠습니다."
"어? 조심히 다녀오세요."
"예."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나는 울타리 부근에서 껴안고 있는 강선생님과 유시진 대위를 보고 천천히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안 죽어요."
"방법 있어요?"
"발 떼요. 내가 대신 밟을 테니까."
"대신 밟는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안 터져요?"
"터져요. 내가 대신 밟고 죽는거죠."
"그게 말이 돼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나 대신 왜 죽어요, 댁이! 빨리 가서 더 잘하는 사람 불러와요! 방법이 있을수도 있잖아요! 자기가 못 한다고 포기하지 말고요!"
희미했던 목소리들이 점차 크게 들려오면서 저 두사람이 왜 저러고 있는지 대충 짐작한 나는 바둥거리는 강선생님이 유시진 대위를 밀침과 동시에 두 사람이 휘청거렸고 근처까지 다가간 나는 망설임없이 강선생님을 붙잡았다.
그리고 같이 넘어지려던 유시진 대위 또한 붙잡아서 세운 나는 가만히 두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유시진 대위가 제대로 선 것을 확인하고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강선생님 또한 상태를 확인하고 놓아주었다.
"지뢰로 장난치고 계셨습니까?"
"아, 그게 말입니다."
변명하려는 듯했던 유시진 대위는 곧 상황을 파악한 강선생님이 화가 난 목소리로 하는 말에 말문을 닫고 말았다.
"뭐야, 뻥이었어요?"
"저,…."
"됐어요! 말 걸지 마요! 따라오지도 말고!"
단단히 화가 났는지 그녀는 찔리면 아플 것 같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나를 지나쳐서 걸어갔고 그런 강선생님의 모습에 유시진 대위는 한숨을 내쉬면서 짧은 머리를 헤집었다.
"뭐하십니까."
"예?"
"빨리 가서 사과하셔야 하는 순간 아니십니까?"
"…실례하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머리를 헤집던 손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강선생님이 간 방향으로 달려갔고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와 달리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이 안에서는 아직도 작은 전쟁들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나는 그저 이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애국가 소리에 발걸음을 다시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는 왜 이렇게 다시 마주할리 없을 것 같은 일들만 마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돌려 세운 나는 아무도 보지 않지만 조용히 오른손을 왼쪽 가슴께 위로 올렸다.
더이상 군인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이 나라의 국민이며, 조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한윤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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