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39

-out

임시회의가 끝나고 치훈을 찾기 위해 메디큐브로 돌아왔던 모연은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멍하니 서있는 치훈을 발견하고 차훈에게 다가갔다.

"회의 있다는 말, 못들었어? 왜 이러고 있어?"

"아…, 죄송해요…."

"너 손 왜이래? 다쳤으면 치료해야지."

"…."

모연은 오른쪽 손등이 찢어져서 피로 얼룩진 치훈의 손을 보고 경악을 하면서 치훈을 치료실로 데려갔고 치훈은 말없이 모연의 손에 이끌려 치료실로 가 베드에 앉으면서도 먼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런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을거야."

"…."

"뭔진 모르겠지만, 힘들면 말해. 선배잖아."

"…네."

지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이 가득 쏟아질 것 같은 마음에 이를 악물었고 그런 치훈의 모습에 모연은 가만히 그런 치훈의 상태를 모른 척을 해줬다.

아직 치훈에게 이 상황은 힘들고 감당하기 힘든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모연인 실상을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지금 치훈의 과제는 그저 스스로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는 사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그동안 생각치 못했던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도와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버텨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은 모연 또한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치훈이 그 과제에 짓눌렸다는 것을 알지 못한 모연은 그렇게 치훈의 손등을 치료해주고는 밖으로 나가는 치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연은 시진을 만나러 가기 전 윤슬에게 한 번 더 들려서 윤슬의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피로와 수면제 효과가 겹쳐서 푹 잠든 윤슬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모연은 안도하면서 몸을 돌릴 수 있었다.

"유대위님 여기 귀국진 명단이요. 한쌤은 일어나면 다시 여쭤보긴 할건데 아마 안 타실 것 같아요."

"…많이들 안 가시네요."

"여기에 환자들이 있는데 다 갈 수는 없잖아요."

"…강선생도 의사기는 했군요."

"그렇죠."

"예전엔 방송하는 의사라고 하시더니…."

시진의 말에 모연은 가자미눈을 뜨면서 시진을 노려봤고 그에 시진은 허허로이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한선생님은 안 깨어나셨나 봅니다."

"아마 내일까진 푹 주무시겠죠."

"그렇습니까."

"예, 일어나더라도 다시 재울 생각이지만요."

"무섭네요."

장난끼를 담아 말하는 시진의 행동에 모연은 그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고 시진은 그런 모연에게 갑자기 생각났다 듯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내일 UN회의가 있어서 강선생도 참가해야한다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내일 급한 일 있으십니까?"

"…아뇨, 일단 급한 일은 없으니까 문제는 없어요."

"그럼 아침에 정문에서 만납시다. 저도 마침 가야해서 말입니다."

"유대위님도 가시는 거예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시진이 순수하게 묻자 모연의 안색이 심각해졌는데 그에 시진의 얼굴로 굳었다.

하지만 곧 모연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하고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럼 한쌤을 감시할 사람이 없어지는데…."

"아니, 이 고급인력을 감시용으로 쓰실려고 하셨던 겁니까?"

"뭐 어때요. 한쌤 감시인데."

"…하아, 일단 필요하시면 서상사한테 말해두겠습니다."

"설마 한쌤이 제 말을 무시하고 움직이실까요."

"…."

모연이 설마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시진은 가만히 모연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그 모습에 모연은 얼굴을 싹 굳히면서 말했다.

"서상사님께 부탁 좀 해주세요."

"허, 한선생님을 너무 못 믿으시는 거 아니십니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못 믿어요."

단호한 모연의 표정과 말투에 픽 웃어버린 시진은 알겠다고 말했고 이후 모연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모연이 건네준 의료팀 귀국진 명단을 조용히 쳐다봤다.

명단에는 빈 칸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상현의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윤슬의 자리였다.

그리고 나머지 의료진 중 안 가는 이들 자리에는 그들의 이름 대신에 메디큐브 내에서 중환자로 분류된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과연 이틀 뒤 떠날 명단에 윤슬이 포함될지 시진은 매우 궁금했다.

항상 먼저 떠나는 것은 자신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스스로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진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숨을 깊게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부재가 불안이 되고, 그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되고, 그의 안전이 자신에게 걱정이 될 거라고 생각치 못했던 시진은 차마 이 감정이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라는 존재가 자신을 뒤흔드는 존재가 되었음을 은연 중엔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물질적으로 보고 느끼는 순간에도 시진은 윤슬에 대해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감정의 끝이 쌍방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시진은 그의 앞에서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서상사, 내일 한선생님 감시 좀 부탁드립니다."

"예?"

"내일 저랑 강선생이 UN회의로 자리 비운 시간에만 부탁드립니다."

"…내일 지뢰 제거 작업 있는거 잊으셨습니까."

"아, 그랬나?"

"김일병한테 말해둘테니까 갔다와서 확인하시죠."

시진은 가만히 대영의 말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차라리 그냥 의료팀에 말해두는 게 낫겠습니다. 김일병은 분명 한선생님한테 말려들 겁니다."

시진의 말에 대영은 문득 현장에서 단호하면서도 사람들을 휘두를 줄 알던 윤슬의 처세술을 떠올리고 수긍했다.

그리고 왜 시진이 자신을 감시로 붙이려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래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예. 단결."

"단결."

그렇게 윤슬의 감시 담당은 자애로 결정 났지만 자애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알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