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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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크. 발칸 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나라로 이번에 해성병원에서 의료봉사단을 보낸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그것을 본 이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그 중 하나는 그 봉사단에 들어갈까봐 눈치를 보거나 불만을 표하는 이들, 다른 하나는 그 봉사단에 지원하는 이들이었다. 나머지는 이도저도 아닌 이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세 가지 중 이도저도 아닌 쪽에 가까웠다. 애초에 나는 내가 간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가족들이 내가 우르크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가는 바로 출국 금지를 시킬 게 분명했다.

우르크는 현재 종전을 하긴 했지만 내전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는 곳으로 민간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곳이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우르크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나의 판단과 다르게 나는 봉사단에 합류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봉사단 팀장이 바로 강모연이고 그 안에 합류하는 인원 중 송상현도 포함되어 있어 주치의로 자리하고 있는 두 사람이 없을 때 내가 한국에서 혹사를 해도 말릴 이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표지수 선생님은 한국에 남지만 담당 부서가 다른 탓에 직접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없다며 모연이 진지하게 설득하는 모습에 나는 알겠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을 해 설명을 해야만 했다. 처음엔 당연하게도 반대를 했지만 모연과 상현이 함께 한다는 말에 고민을 하시던 어머니가 허락하는 것으로 아버지도 허락의 말을 전하셨다.

누나와 형들은 끝까지 불만을 표했지만 동생인 현아가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에 조심히 다녀오라면서 암묵적으로 허락을 했다. 현아는 그런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연락하라면서 나에게 연락처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지금 우르크에는 한국군이 파병 가 있어서 아마 이번에 가게 되면 한국군 쪽에서 경호할 확률이 높아. 그래도 혹시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한국군 말고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나 알아봤어. 마침 우르크에는  닥터 다니엘의 가게가 있다고 하더라. 그건 그 다니엘 가게 주소야. 연락처는 잘 가지고 있지? 미리 연락해보고 방문해 봐. 그리고 오빠한테 종종 편지 보내던 발렌타인도 아직 우르크에 거주하고 있더라."

"…그래? 알겠어."

"그리고 제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응."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출국날이 다가왔고 나는 군인들이 경호를 할 확률이 높을 거라는 현아의 말을 믿고 그들이라면 이동시 제한할 짐을 생각해 짐을 분리해서 챙겼다. 그리고 짧은 옷들을 입은 다른 이들과 달리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얇은 소재로 만들어진 긴팔과 긴바지를 챙겨입었다.

모자는 해와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라서 눌러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장의 열기는 쉬이 버텨내기 힘든 정도였다. 그래서 다들 더워하면서 힘들어하는 동안 상현의 전화를 통해 이사장인 한석원씨의 연락이 모연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은 나는 내 귀를 잠시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를 어디로 불러서 뭘 하려 했다고?

"자, 다들 들으셨죠? 이게 내가 여기에 온 이유입니다."

모연이 괜찮다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에 수군거리는 봉사단 사람들의 소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침착하게 모연을 응시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문자 한 통을 남긴 뒤 다시 주머니 안에 휴대폰을 넣었다.

때마침 의료봉사단의 경호 업무를 담당하게 된 군인들이 수송기와 함께 비행장에 도착했으니까 말이다.

"우르크에 계시는 동안 의료팀 경호 임무를 맡은 모우루 중대 중대장 유시진 대윕니다. 반갑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그를 응시했다가 금방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옆에 서있던 이들이 나누어주는 군용 더플백(duffel bag)을 받아 내 짐을 옮겨 담았다. 딱 맞게 모든 짐을 넣고 그 외에 급하게 필요 없는 추가 옷들이나 짐들은 캐리어에 담아 육로로 보내질 짐들 속에 보냈다.

"앞으로 14박15일간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동안 지켜야 할 주의사항과 행동수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막사 주변에는 우르크 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들이 아직 완벽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에, 울타리 경계 내 안전구역 외의 출입은 전면 통제합니다. 식수는 반드시 공급되는 생수만 드시고, 샤워장 이용은 1일 1회로 제한합니다."

부대 도착 이후 이루어진 브리핑 시간 동안 나는 가만히 브리핑 내용을 경청했고 그런 이는 봉사단 내부에서 유일하게 나뿐인 듯 싶었지만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부대 내에서만 있다면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구호 현장에서 여러분이 신경 써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안전과 건강입니다.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우리 군도 최대한 협조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상 마치겠습니다. 단결."

절도 있는 경례와 함께 브리핑은 끝이 났고 나는 박수를 치는 이들 속에서 물 흐르듯이 같이 박수를 치면서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시선을 무시했다.

보름 일정인 해외봉사 파견은 서늘한 감각과 함께 시작되었다.

앞으로 있을 미래를 예상하기라도 하듯이 나의 감각은 점차 예민해져 갔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이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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