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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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있어 시간이란 멈추지 않고 쉼없이 흐르는 유한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그 불변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내 할 일을 해나갔다.

모연이 특진병동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수술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수면시간은 줄었지만 모연의 성공만큼은 기뻤기에 그에 불만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툴툴거리는 건 상현 쪽이었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선배 강 교수가 샌드위치 사왔는데 먹으면서 쉬어요."

"아, 고맙습니다."

상현이 가져다준 샌드위치를 받아든 나는 멍하니 비어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콜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현에게 받았던 샌드위치는 그대로 당직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로 바로 응급실로 향한 나는 계단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뇌출혈 증상은 발견 되지 않았고 뇌진탕이 의심되긴 했지만 검사결과상으로는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급선무인 팔 다리의 골절상은 정형외과에서 체크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오더를 내린 뒤 바로 정형외과 쪽으로 콜을 넣어 환자의 차트를 넘겨주었다.

이후 유리파편이 박힌 팔을 하고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게 위해 엑스레이를 찍은 뒤 다행히 급박한 상황은 아니기에 부분 마취 후 바로 제거를 시작했다. 유리파편 제거는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걱정이 되는 케이스다 보니 시간 소요는 많이 걸렸지만 드레싱까지 마무리 하고 나서 후유증과 관리법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전달했다. 그리고 진통제와 함께 잔여하고 있는 조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후 한 번 더 내원하라는 말을 끝으로 다른 환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 외에도 응급실에는 환자가 끊임없이 찾아왔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차트의 체크를 끝낸 뒤 잠시 시간이 난 나는 당직실에 갔다가 분명 내가 두고 갔던 샌드위치 옆에 놓인 간식들과 주스에 의아해하면서 테이블에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간식과 주스를 제외하고도 메모지가 두 개 더 놓여 있었다.

『임서준 선생님께 드리는 간식! 건드리지 말 것!』

『주스도 같이 마시면서 드세요!! 식사는 꼭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걱정하세요 ㅠㅠ』

그에 작게 웃음을 뱉어낸 나는 간식들은 주머니에 넣고 샌드위치랑 주스는 손에 든 채로 당직실을 나와 근처 휴게실에 가서 앉았다. 휴게실에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몇몇 앉아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산했기 때문에 조용히 창 밖을 응시하면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마시던 나는 내 맞은 편에 누군가가 앉는 소리를 듣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그걸 가져다 준 게 언제인데 지금 드시고 있는 거예요?"

근무시간이 끝난건지 사복차림의 모연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묻는 말에 그저 웃으며 샌드위치를 한 입 더 베어문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답이 된 것인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의자에 기대는 모연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나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걸로 입 안에 있던 샌드위치를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이제 퇴근입니까?"

"예. 선배는 오늘도 병원에 계실 겁니까."

모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연의 행동에 그저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휴지로 입가를 닦아낸 뒤 주스로 갈증을 대충 해소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샌드위치 맛있었습니다."

"…하아, 선배는 몸이나 잘 챙기세요. 애들이 걱정하는 소리가 저한테까지 들려온다고요."

"그건 미안합니다."

"됐습니다~ 그럼 전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말을 늘어트리면서 답하는 모연이 가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던 나는 빈 주스병과 먹고 남은 샌드위치를 버렸다. 그러고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한 나는 근처 마트에 가서 과일 주스 세트를 세 박스 사와서 두 박스는 당직실에 가져다 놓았다.

누가 가져다 준건지를 모르겠으니까 그냥 다같이 마시라는 의미에서 넉넉한 양으로 가져다 둔 나는 메모지까지 붙여둔 뒤 양치를 하고 바로 응급실로 내려갔다. 나머지 한 박스는 이쪽 휴게실에 가져다 둔 나는 여기에도 메모지를 남긴 뒤 마침 콜이 울린 덕에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베드 위에는 복통을 호소해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누워 있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촉진만으로도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상태에 나는 복막염이 의심되어 바로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보호자에게는 검사 결과를 보고 지금 상태 어떤지 확인하자고 말한 뒤 바로 오더를 내렸다.

혈액검사 등 몇가지 검사를 통해 장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판단한 나는 바로 수술진행을 위해 보호자에게 상태를 전달하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없었던 덕분에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환자와 함께 수술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내부 장기의 손상으로 인한 복막염의 경우엔 한시라도 빨리 내부 장기의 손상을 해결하는 외과적 조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될수록 경과가 안 좋아지거나 수술의 범위가 커질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른 판단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의사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 본 누군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익숙하고 그것에 대해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짧았다. 아니, 단축시켰다는 게 맞을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한 유시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을만 하면 다시금 떠올랐다는 쪽이 맞을 거다.

마치 과거의 인연들을 마음 속에 거두기 전처럼 유시진이라는 존재는 나라는 사람을 뒤흔들고는 했다.

스스로 잘라낸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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