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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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명주의 병실 앞에서 자리를 지키던 윤슬이 산책이라는 명목 하에 자리를 비운 후 그를 만나기 위해 메디큐브를 찾았던 시진은 부대원 중 한 명이 윤슬이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려주어 그의 부재를 쉬이 납득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도록 모연의 모습도 보이지 않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진은 그제서야 모연의 행방을 물어보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모연의 행방을 몰랐고 유일하게 단서가 될만한 정보가 메디큐브 막내 간호사인 민지에게서 나왔다.

"어? 강선생님이라면 어제 여기 경찰들이 와서 파티마 잡아간다고 해서 파티마랑 경찰서 가신다고 하셨는데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이곳, 우르크 경찰들 확실해요?"

민지의 말에 시진은 아구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경찰들이 움직였다는 점에서 불안감의 원인이 이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곧 자신의 휴대폰이 울리고 그 전화를 건 이가 아구스라는 점에서 그 짐작을 확신으로 바꿨다.

시진에게 전화를 건 아구스는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모연을 구하고 싶으면 우르크 외곽 지역에 있는 산악도로 쪽으로 오라고 말하면서도 혼자서 움직이는 조건까지 붙였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지프를 몰고 산악도로로 향했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시속 120킬로로 놓고 달리는 탓에 자동차 바퀴가 빠질듯이 덜컹거렸다.

하지만 산악도로에 진입하자마자 100미터 전방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입에는 초록색 테이프를 붙이고 손목에는 수갑을 찬 채로 바들바들 털며 서있었고 그것을 뒤늦게 발견한 시진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사정없어 꺽어버렸다.

그러자 있는대로 속도를 내고있던 지프는 비탈길로 굴러떨어지듯 내려가다가 가까스로 멈춰섰고 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 시진은 곧 바로 차에서 내려 도로위에 서있던 소녀, 파티마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손이 파티마에게 닿기 직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파티마의 다리를 총탄이 관통하고 그 자리에 붉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에 시진은 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쓰러진 파티마를 끌어안아 보호하는 듯한 행위를 보였지만 곧 전날 밤 보았던 복면 쓴 사내들이 총을 겨눈 채 다가오는 것을 보고 품에 있던 파티마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히고 자신의 권총이 자리한 등 뒤로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곧 그 사내들 틈으로 사지가 결박이 되고 아구스가 그녀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진에게 모연은 경호대상, 신경쓰이는 이가 소중히 여기는 이였다.

그때 비가 오고 그가 눈물을 보였던 그 날, 그 모습이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시진은 애써 분노를 씹어삼키며 두 손을 들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자 아구스는 시진의 모습에 비웃음을 흘리며 뚜벅뚜벅 시진에게 다가왔는데 본래의 목적은 그가 아닌 바닥에 쓰러진 파티마였는지 그녀에게로 손을 뻗었다.

"[많이 다쳤네? 어쩌나? 저 의사 선생은 지금 진료 못 하는데.]"

"[그 손 치워.]"

아구스가 자신의 스카프로 피가 쏟아지는 파티마의 다리를 묶어주며 빈정거리자 시진은 이를 가며 말했지만 오히려 아구스는 시진을 노려보다시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상황 파악을 못 하네. 죽고 싶어? 아님 저 여자 죽이고 싶어? 명령은 내가 할 차례야, 캡틴. 여기서 우리 애들이 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거든.]"

"[…원하는 게 뭐야.]"

"[그렇지. 그렇게 물어야지. 일 얘긴 남자들끼리 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한 아구스가 고갯짓을 하자 부하들은 모연을 검은색 세단으로 데려갔고 그러자 세단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시진과 아구스를 향해 응시하면서도 덤덤하게 모연을 태우는 부하들을 무시했다.

"[오늘 자정에 북우르크로 무기들이 넘어가. 그 거래가 끝나면 내 조국은 날 끝장낼 계획이고. 근데 난 돈도 벌고 싶고 죽고 싶지도 않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거래가 끝남과 동시에 내가 이 나라를 뜰 수 있는 방법을 가져와.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내 퇴로 확보. 예전처럼 또 한 번 나를 구해내란 얘기야, 캡틴. 퇴각 시간은 0시 05분.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되겠지?]"

아구스는 느긋하게 몸을 돌려세우다가 세단 옆에 서있는 남자를 보고 떠올랐는지 유쾌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시진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초대손님이 한 분 더 있었지. 저 친구는 하트, 닥터 닐의 옛 전우지. 그래서인지 서로가 매우 만나고 싶어하더라고?]"

그 말을 들은 시진은 순식간에 산책을 갔다오겠다면서 자리를 비웠던 윤슬의 부재가 떠올랐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구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단으로 걸어가버렸다.

그에 세단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긴 시진은 아무것도 담아내지 않는 무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를 끝으로 무력하게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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