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59

-out

모연이 아구스와 함께 세단을 타고 떠나고 얼마 흐르지 않아 모연의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무전기가 시진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빅보스 송신. 강선생,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내가 반드시 찾고, 내가 반드시 구할 겁니다. 당신이 한선생님을 맡긴 사람인데 믿을만 하죠?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울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게요."

시진의 말에 모연은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려내면서도 보이지 않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런 모연의 모습을 아구스도 볼 수 있었기에 아구스는 그녀의 모전기를 주머니에서 꺼내 비릿하게 웃으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나도 널 응원해, 빅보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구스는 창문을 열어 그 무전기를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뒤 따라오던 차량들의 바퀴에 깔려 산산조각이 나버린 무전기는 더이상 본 능력을 발휘할 수조차 없는 고물이었지만 이미 모연은 시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였다.

-

시진은 피범벅인 채 축 늘어진 파티마를 차에 태우고 태백부대 본진으로 향했고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파티마를 군의관에게 맡긴 후, 곧장 대대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내부에 있던 박중령은 인질 구출 작전을 개시하겠다고 말하는 시진의 피로 물든 군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소리쳤다.

"야, 이 미친놈아! 정신 안 차려? 인질 구출? 너 지금 전투복에 부대 마크 뭐 붙었어! 니가 지금 알파팀이야? 너 지금 파병 군인이야. 평화 재건 하러 온 공병이라고!"

"꼭 가야 합니다. 가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대기해. 명령이니까 대기하라고!"

"제 앞에서 제 눈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이 버티고 있던 시진이 울컥 솟아오르는 울음을 겨우 삼키고는 고장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야 합니다. 갔다 오겠습니다."

"야. 이거 보여, 안 보여. 아까부터 깜빡거리는 거 보여, 안 보여! 2번 사령관, 3번 청와대 연결이야. 어떡할거야! 너 지금부터 찍소리도 내지마. 숨소리라도 냈다간 너 아주 군복 빤쓰까지 벗겨버린다."

협박을 하는 것 같은 말과 달리 시진을 대대장실에서 내보내지 않았다는 허술함을 보인 박중령은 곧 유선전화기 3번을 누르고 말문을 열었다.

"단결. 태백부대 1대대장 중령 박,"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입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본록부터 합시다. 납치가 맞습니까?"

스피커폰으로 안보수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 안에는 골프장에서 날 법한 탁탁 튀는 공소리도 섞여 있었다.

"납치까진 아니고 상황이 좀 비슷하게,"

"납치 맞습니다."

박중령이 시진의 눈치를 살짝 살피면서 난감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자 시진이 침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확실해요? CIA 채널로 들리는 얘긴 좀 다르던데?"

안보수석이 건성건성 묻자 시진은 서둘러 답했다.

"납치 맞습니다. 상대는 14~5명에 전원 무장했고,"

-"상황보고는 미군 쪽 브리핑 들을 거니 됐고, 당부할 얘기 있어 연락한 겁니다. 앞 뒤 상황 확실해질 때까지 일급 기밀 유지하고 다들 대기하게요."

"예 알겠,"

"대기할 시간 없습니다!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유사시 운용지침에 따라 인질 구출 작전 개시하겠습니다."

박중령이 답하려는 것을 낚아채며 말한 시진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전화 너머의 안보수석에게서는 짜증만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뭘 해요? 입단속하면서 대기하란 내 말이 안 들렸어요? 이봐 유대위. 좋게 좋게 넘어가주니까 청와대 수석 말이 우습습니까? 이러라고 조국이 당신 손에 총 들려줬는지 알아?! 이건 한 개인이 죽고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고!"

그 말을 들은 시진은 자신의 안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기대감도 지워버린 채 싸늘히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좀 생기면 어때. 당신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난 내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시진은 그 말을 끝으로 박중령에게 마지막인 듯 경례를 하고는 대대장실을 나가버렸고 그 자리에 남은 박중령은 시진의 등 뒤를 향해 노발대발 난리를 쳤지만 시진은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한민국 군인이 구하러 간다는 것을 막고 그것을 함구하라는 명까지 내리는 것을 시진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안보수석에게 국가안보는 밀실에 모여 하는 정치일지 모르지만, 시진에게는 청춘 다 바쳐 지키는 조국이고 목숨 다 바쳐 수행하는 임무고 명령이었다.

작전 간에 죽거나 포로가 되었을 때, 이름도 명예도 찾아주지 않는 조국의 부름에 영광되게 임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이 곧 국가안보란 믿음 때문이었던 시진은 그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멈추십시오. 대기하라십니다."

초소병이 시진의 지프 앞에 바리게이트를 세웠고 그러자 시진은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저 문 튼튼하냐? 내가 해봤는데 저 정도는 부서지더라."

그렇게 말하며 엑셀을 밟은 것인지 순간 엔진음이 훅하고 울렸다가 가라앉았고 그런 시진의 위협에 초소병은 당황해하면서 갈등하는 얼굴을 했다.

그런 초소병을 구해낸 것은 초소 쪽에서 병사가 들고 나온 무선전화기였다.

"바꾸라십니다. 특전사령관님이십니다."

그 말에 시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구스가 부른 이들 중에 윤슬도 있고 윤슬과 전우라 했던 이가 떠올라 바로 그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단결. 대위 유시진,"

-"딱 세 시간이다. 그 세 시간 동안 난 니 행방을 모른다. 그 세 시간 동안 넌 알파팀도, 태백부대 모우루 중대 중대장도, 대한민국 육군 대위도 아니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다만, 사령관님께 보고드려야 할 것 같은 사안이 있습니다."

-"뭐지?"

"한윤슬 선생님의 전우라고 지칭한 하트라는 남자가 아구스 쪽에 함께 하고 있고 아구스는 그것을 이용해 한윤슬 선생님도 불러낸 듯 싶습니다. 현재 위치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잠시 윤중장에게서는 답이 없었지만 잠시후 무겁게 이어지는 말을 들은 시진은 서늘하게 앞을 응시했다.

-"하트는 콜사인이고, 이름은 강마음. 탈영병으로 특전사 소속이었지 지금은 사살명령이 내려진 인물이지만. 한소장이 움직였다는 게 걸리는군."

"큰, 문제입니까."

-"그라면 너보다 잘 해결할테니 신경쓰지 말도록. 말했던대로 나는 세 시간동안 나는 니 행방을 모르는 걸로 할거다."

"…알겠습니다."

-"이상."

"단. 결!"

윤중장의 암묵적인 허락에 시진은 자신이 기댈 곳이 아직 남아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지지였지만, 그것은 자신의 흔들리던 뿌리를 다 잡아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모연을 구해내는 것, 아구스를 처리하는 것, 그리고… 사라진 윤슬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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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당신이 돌보는 나라는 대한민국인가, 미국인가. 왜 당신은 현장에 있던 대한민국의 군인에게는 묻지 않고 미국의 브리핑을 듣고자 하며, 왜 당신은 자신의 국민보다 타국을 더 위하는가. 강모연도, 한윤슬도, 유시진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그들에게 희생하라 강요하고 죽음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가족을 잃고, 동료를 잃고, 친구를 잃고 또 잃어야하는가. +) 그에게는 [국민의 죽음 < 국가 간의 안정]이라는 균형이 있었던거고, 시진은 [국민의 죽음 > 국가 간의 안정]이라는 균형이 있었기에 극명한 대립으로 보였다 생각함. 정확히는 안보수석 = 국가가 평화로워야 국민이 살아나지. 그 과정에서 사소한 희생은 어쩔 수 없어. 시진 = 국민이 안전해야 국가가 잘 돌아가니까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을 버린다는 건 국가의 일부를 버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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