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6
-in
수술이 끝나고 피로 물든 가운과 마스크를 벗고 써지컬 캡까지 끌러내린 나는 수술실을 벗어나려다가 핑 도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대로 퓨즈가 나간 것처럼 기억이 끊겼는데 어렴풋이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던 이들을 봤던거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곧 암흑에 뒤덮힌 나는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았다.
추측일 수 밖에 없는 건 깨어난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이 메디큐브의 천장으로 추정되는 벽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선생, 정신이 듭니까?"
"…유대위님?"
"다행입니다. 거의 하루동안 일어나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무심코 들어올리려던 왼손이 아닌 오른손을 들어올려 뻑뻑한 두눈 위에 잠시 올렸던 나는 손을 끌어내리면서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잠시만요."
하지만 내 행동은 유대위의 손에 의해 막혔기에 다시금 베드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강선생한테 부탁 받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하아."
"강선생 불러올 테니까 그동안 더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괜찮습니다."
"만약 제가 이대로 한선생 보내면 제가 강선생에게 어떤 짓을 당할지 몰라서 말입니다."
장난끼가 섞인 말에 저게 장난임을 눈치챘지만 순순히 그의 말에 납득해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래도 베드에 몸을 맡기고 강선생님을 부르러 가려는 듯한 유대위를 향해 물었다.
"무라바트 의장님은, 어떻습니까?"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가만히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가만히 무라바트 의장을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고 문득 발걸음 소리가 이어지지 않는 것에 눈을 떠 유대위가 서있을 방향을 쳐다보자 그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궁금하신 게 그것뿐이신가 싶어서 말입니다."
"…제가 더 궁금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뭐… 군과의 관계라던가, 의료진의 안전이라던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함부로 움직이거나 건들일 수 없을 테니까."
"…뭘 믿고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과거의 댓가, 정도면 설명이 되겠습니까?"
"…."
나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 그의 얼굴이 복잡해 보이는 걸 보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악연이었을 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강선생 불러오겠습니다."
"예."
그렇게 유대위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면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흐릿해지지 않던 과거의 기억이 잠시 떠올랐지만 더이상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수 없었다.
더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저 마른 두눈을 눈꺼풀 아래로 감춰야 했다.
-out
윤슬이 깨어나자 그 순간까지 생각하고 있던 의문에 대한 것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던 시진은 바로 모연을 부르기 위해 일어섰지만 곧 자신에게 무라바트의 안위를 묻는 윤슬의 행동에 멈춰서고 말았다.
순간이지만 잊고 있던 의문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어떤 물음을 건네도 되는지 머릿 속에서 정리하던 시진은 곧 자신을 쳐다보는 윤슬의 질문에 나지막하게 가장 무난하다 생각하는 질문을 내뱉었다.
"…궁금하신 게 그것뿐이신가 싶어서 말입니다."
"…제가 더 궁금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자신의 질문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로 되묻는 윤슬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질문을 던졌던 시진이 오히려 어물어물 말을 이었다.
"뭐… 군과의 관계라던가, 의료진의 안전이라던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함부로 움직이거나 건들일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시진의 말에 윤슬은 당연하다듯이 시진에게서 눈을 떼고 두눈을 감으면서 말으 이었고 그의 그 모습은 정말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시진은 고민하던 질문 중 하나를 결국 내뱉고 말았다.
"…뭘 믿고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그 말을 내뱉은 시진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려 자신을 쳐다보는 윤슬의 시선이 아프게 느껴져서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조금이나마 두렵다라고 느끼고 말았다.
"…과거의 댓가, 정도면 설명이 되겠습니까?"
"…."
자신은 모르는 과거에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에 담긴 감정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눈치챈 시진은 말문을 닫았고 그런 시진의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윤슬을 가볍게 웃어보이면서 시진에게 말을 건넬 뿐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악연이었을 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강선생 불러오겠습니다."
"예."
장승이 된 것 마냥 윤슬이 깨어나기 만을 기다리던 시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고 시진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도망인 같은 느낌이 들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메디큐브 회복실에 있는 무라바트 의장님의 곁을 지키고 있는 모연을 발견한 시진은 문에 달린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걸로 시선을 끌었다.
그런 시진의 행동에 회복실 안에 있던 경호원과 경호팀장은 물론 모연과 상현까지 시선이 쏠렸는데 시진을 본 이들 중에는 모연만이 벌떡 일어나서 회복실 밖으로 나왔다.
"왜 여기 있어요? 한쌤은요?"
"한선생 일어났길래 부르러 왔습니다. 일단 쉬라고 말해놓고 왔으니까 아마 누워있을 겁니다."
"그래요…?"
"예."
시진의 대답을 들은 모연은 회복실 안에 있는 상현을 향해 뭐라 이야기를 하고 나오더니 거침없이 윤슬이 누워있는 베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시진은 그런 모연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선배!"
"아, 강선생님."
"정말,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화를 내는 모연의 뒤에서 시진이 가만히 서있고 누워있던 윤슬이 상체만 일으켜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앉아있었는데 모연은 태연해보이는 윤슬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주치의가 좀 쉬라고 하면 쉬는 게 어때요?"
"내 주치의 그만둔 거 아니였어요?"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네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윤슬의 상태를 살피는 모연의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윤슬은 그것을 아는 것인지 그저 웃으면서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모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진은 허리 뒤로 넘기고 있던 두 손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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