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7

-out

모연에게서 자유를 허락받은 윤슬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라바트 의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그였지만 윤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회복실 안으로 들어가 상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것으로 자리를 비워도 된다는 표시를 건넸고 상현은 윤슬의 기색을 한 번 살피고는 곧 자리를 비웠다.

윤슬의 등장에 한쪽 벽면에 서있던 경호팀장과 무라바트의 곁에 의자를 끌고와 앉아있던 주치의가 반응 했는데 윤슬은 그런 그들을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무라바트의 상태를 체크했다.

"[닥터 닐. 의장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뒤에 서있던 경호팀장이 결국 말문을 열어 질문을 던지자 무라바트의 상태 체크를 끝낸 윤슬이 경호팀장을 향해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

"[회복 속도는 생각이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고 깨어나신다면 며칠 내로 가볍게 움직이는 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 자리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에게는 불행이었지만,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나 봅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답한 윤슬은 비어있는 의자를 끌어서 무라바트를 향해 몸을 돌린 채로 앉았다.

그런 윤슬의 행동에 경호 팀장은 말문을 닫았으며, 주치의는 자신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무라바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회복실 밖에서는 시진이 아닌 병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그 밖으로 경호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윤슬의 자유와 함께 경호임무에서 벗어난 시진은 당연하게도 보고를 위해 상황실로 발걸음을 했고 중대장이 자리를 비움과 동시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모우루 중대원들은 현장에 남아 경계태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던 그들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무라바트의 의식이 돌아온 이후였다.

바이털 수치도 정상이고 별다른 합병증에 대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수치가 없는 것으로 무라바트의 상태체크를 완료한 의료진은 모연과 윤슬의 지시 아래에 해산을 하였다.

경호팀장처럼 무라바트 또한 윤슬을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식을 되찾은 무라바트는 윤슬을 보고 놀란 기색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지만 아직 말을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이 아니였기에 윤슬에게는 어떠한 말도 전해질 수 없었다.

"[…다시 당신과 마주 할 일이 없길 바랬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무라바트 의장님.]"

윤슬의 말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만둔 무라바트는 그저 미안함으로 물든 눈으로 윤슬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무라바트 의장의 이송을 위해 남우르크 정부에서 헬기가 보내졌는데 그 자리에서 윤슬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그저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헬기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해산하였는데 윤슬만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윤슬의 모습에 그 자리에 남은 인물이 두 명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시진과 모연이었다.

시진은 그에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먼저 모연이 윤슬의 정신을 깨우고 이끌었기 때문에 시진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 몸을 돌려 세운 시진은 본진에 보고를 하기 위해 부대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와, 죽다 살았네. 나 진짜 서른일곱 살 인생 객지에서 막 내리는 줄 알았다."

어느새 메디큐브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 중 상현이 테이블에 엎어지면서 하는 말에 뒤따라 들어온 자애가 그의 옆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환자 살아서 의사 살렸네."

"진짜 다행이에요. 우리 집이 좀 살지만 이건 어떻게 수습될 사이즈가 아니거든요."

"그럼 한쌤은 대체 어떤 분이신거예요?"

"그러게요. 이번에 한쌤이 나타나시자마자 모든 게 해결되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치훈과 민지의 질문은 메디큐브 안에 있던 의료진 중 어떤 사람도 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윤슬이란 비밀로 점칠되어 있어서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신뢰했으며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의 그런 비밀스러움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그 비밀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엎어져 있던 상현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붙였다.

"그것보단 내가 진짜 수술실에서 그렇게 떨어본 건 외과 인생 통산 세 번째인 것 같다."

"첫 번째랑 두 번째는 언젠데요?"

"얘네 어머니 수술할 때랑 아는 사람 수술할 때. 얘네 어머니 수술할 때는 뭐 하나라도 잘못될까 긴장했고, 아는 사람 수술할 땐 내 실수로 이 사람이 죽을까 봐 긴장했지."

상현의 말에서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인물들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모르는 이들은 상현이 두려워할 정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다들 지친 상태라 더이상의 수다보다는 쉬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연의 이끌림에 메디큐브에 들어가려던 윤슬은 그 말을 듣고 멈춰섰고 모연은 그런 윤슬의 행동에 그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강선생님도 떨었습니까?"

"언제요? 이번 수술에서요? 아니면, 선배가 피투성이가 되서 실려왔을 때요?"

모연의 태연스러운 얼굴과 말투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윤슬은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본 그녀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떠올리면서 자조적으로 웃었고 그 모습에 모연은 윤슬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물론 선배가 그런 모습으로 실려올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지만 지금의 저는 그저 선배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웃지 말아요. 나도, 송선배도, 괜찮으니까요."

"…미안합니다."

"미안할 필요도 없고요. 환자는 의사에게 잘 나아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어보인 모연의 모습에 윤슬도 마주 웃었고 그런 윤슬의 얼굴에 모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메디큐브 안에 있는 의료진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그런 모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슬은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피곤해져오는 느낌에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고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막사 내에 비치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의료진이 막사 내에 돌아오지 않는 시간동안 짐이 도착한 것인지 윤슬의 이름이 적힌 캐리어가 짐을 놓아두었던 곳 바로 옆에 놓여있었지만 지금 당장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던 윤슬은 캐리어를 정리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공간이라고 인지한 곳에 몸을 눕힌 이 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윤슬이 쉬는 그 순간 상현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윤슬이 쉬는 내내 막사 내부에는 조용하고 평온한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그 기류에 떠밀리듯이 윤슬은 또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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