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40

-out

아침이 밝아오자 시진은 모연과 함께 회의를 떠나기 전 윤슬을 찾아갔는데 윤슬은 아직 잠든 채였고 다행히 어제보다 안색이 나아진 걸 보고 안도하면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시진이 가고 나서 링거를 바꾸러 왔던 자애가 때마침 눈을 뜨는 윤슬을 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하선생님. 어떻게 된겁니까?"

"뭐긴 뭡니까. 과로로 기절하신거죠. 등의 상처는 봉합해 놓은 게 터지셔서 재봉합했고요."

"아…."

"오늘 하루는 쉬세요. 강선생님이 단단히 주의 주고 가셨으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혹시 통신망 복구는 됐습니까?"

"네. 아, 그러고보니 휴대폰 연락이 계속와서 꺼뒀어요. 가져다드릴까요?"

"그럼 잠깐 연락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가져다 드릴게요."

자애가 차트를 덮고 커튼 너머로 사라지자 윤슬은 느리게 두 눈을 감았다 뜨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욱신거리는 등 근육의 고통에 미간을 찌뿌렸던 윤슬은 곧 얼굴을 피면서 숨을 토해냈다.

나흘 내내 정신을 아슬아슬 붙잡고 있었던 터라 지치긴 지쳤던 윤슬은 지금 이 순간의 휴식이 달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아닌 다른 환자들도 상태가 좋지 않을 텐데 자신이 이렇게 누워있다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치의 신분이기도 한 모연의 말을 거부하고 함부로 돌아다녔다가는 그 후에 찾아올 눈초리가 떠올라서 따로 움직일 생각을 접었다.

그저 조용히 자애가 가져다 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윤슬은 메디큐블을 나와 의료기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곳까지 걸음을 옮겨서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이 로딩되는 동안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던 윤슬은 로딩이 완료되고 뜨는 알림 소리에 시선을 휴대폰으로 돌렸다.

로딩이 완료된 배경화면에는 수많은 부재중 전화 알림과 문자 알림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확인하려던 윤슬은 곧 울리는 벨소리와 함께 뜨는 화면에 가만히 터치하려던 손가락을 멈췄다.

[아버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던 윤슬은 망설임없이 통화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윤슬이냐."

"…예. 잘 지내셨어요?"

-"아들이 지진 현장에서 연락 한통 안 줬는데 어떻게 아비가 잘 지냈을거라 생각하는거니."

"…죄송합니다. 구조현장에 있었던 터라 연락할 틈이 없었어요."

-"…그래.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다친 데는 없고?"

"괜찮습니다."

윤슬의 답에 그의 아버지, 석운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곧 조용히 말을 이었다.

-"강모연 교수랑 같이 갔다 들었다. 치료 잘 받으렴."

"마침 강선생님이 저를 베드에 눕히고 갔습니다."

-"역시 그 교수가 네 주치의라 다행이구나."

"…하하."

정말 맘에 들었다는 듯한 석운의 말에 윤슬은 허허로이 웃었고 그 뒤로 석운과 윤슬이 소소한 안부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 배치된 모우루 중대에 특전사팀이 있는 듯 하더구나. 사령관인 윤중장에게 연락이 왔었다."

"…사령관님이 무슨 일로 말입니까."

석운의 말에 한박자 늦은 대답을 한 윤슬은 곧 덤덤히 말을 이어나가는 석운의 말에 귀기울였다.

-"이번에 지진 현장에서 네가 의료팀으로서 함께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지만 무엇보다 네 소식을 듣게 되서 나에게 연락한 듯 싶더구나. 네가 나에게 연락을 했을리 만무하니 말이다."

"여전히 저를 너무 잘 아시는 분입니다."

윤슬은 픽 웃으면서 석운의 말에 답했고 석운 또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을 너무 잘 아는 후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직 사령관 출신인 석운의 말에 윤슬은 온전히 웃을 수 없었다.

그가 은퇴를 하기 직전에 특전사 소속이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같은 부대 소속일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고뇌와 어머니의 결심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윤슬은 이렇게 종종 그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홀로 알고 있는 윤슬은 태연한 척 말을 이어나갔고 당연하게도 석운은 그런 윤슬의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애들한테 연락 좀 하고."

"…알겠어요. 아버지도 건강하세요. 귀국하면 한 번 들릴게요."

-"그래. 조심하고."

"예."

그렇게 전화를 끊은 윤슬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부재중 목록과 문자목록을 차례대로 확인했는데 그 안에는 그의 가족들의 연락이 가득했다.

덤덤하게 그 목록들을 다 확인한 윤슬은 첫째인 가은과 둘째인 기찬, 그리고 막내들인 별아와 별하에게 각각 문자를 보냈다.

자신의 무사함과, 그들의 안부를 묻는 인사, 그리고 귀국하면 본가에 찾아가겠다는 연락을 모아서 적은 문자를 말이다.

-[가은 누나 : 너는 괜찮다고는 하겠지만 주변 이들은 안 괜찮을테니까 너무 참지 말고 귀국하면 꼭 연락줘]

-[기찬이 형 : 그래.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귀국하면 보자.]

-[별아 : 아니 오빠의 괜찮다는 전혀 괜찮다가 아니잖아!! 하지만 이번만은 믿어줄게 그러니까 건강하게만 돌아와 본가에서 기다릴게. :)]

-[별하 : 이제라도 형한테 연락와서 다행이야 진짜 더 연락이 안됐으면 내가 우르크로 갔을지도 모르거든 하여튼 다음에 시간나면 전화줘 문자말고 ㅍ"ㅍ]

각자의 개성 넘치는 문자들에 간단하게 답장까지 하고 나서 휴대폰을 꺼버린 윤슬은 숨을 토해내듯이 내뱉으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생의 길로 넘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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