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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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이틀간 메디큐브는 물론 모우루 중대에는 별다른 사항없이 평화로운 한 때를 보냈는데 그런 평화 속에서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무라바트의 경호팀장이 윤슬을 찾아온 것이었다.

윤슬은 그의 등장만으로 날카로운 분위기가 되었고 그런 윤슬의 분위기에도 경호팀장의 행동은 변치 않았다.

"[의장님께서 닥터를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또한, 이번 수술에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하십니다.]"

"[…분명 내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말을 전했었는데, 귀에 문제가 생기신 듯 싶습니다. 대체 주치의께서는 뭘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

"[그 때 분명 말했었습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 당신의 얼굴 또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명령을 받은 바 수행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양해부탁드립니다.]"

무라바트 경호팀장과 이야기하는 윤슬의 얼굴은 굳어있었지만 그의 눈 만큼은 서릿한 분노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 탓인지 경호 팀장은 살짝 고개를 내린 상태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를 막아선 것은 바로 이 모우루 중대의 책임자 자리에 있는 시진이었다.

"[원치도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만약 거절하신다면 기다리라고 명령 받았습니다.]"

단호하면서도 깔끔한 대답에 시진은 잠시 할말을 잃었는데 그의 그런 기색을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의 뒤로 물러나게 된 윤슬이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어깨를 붙잡고 옆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유대위님은 빠지셔도 되십니다."

"미안하지만 제가 여기 의료진 경호임무를 맡은 모우루 중대의 중대장이라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목숨을 잃는 수가 있습니다."

"예?"

덤덤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은 탓에 순간 제 귀를 의심한 시진이 휙하고 윤슬을 쳐다봤지만 윤슬의 눈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군인은 언제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임무 도중 찾아오는 죽음에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동행을 허락한다면 가겠습니다.]"

윤슬의 말에 가만히 서있던 경호팀장이 시진을 잠시 쳐다보더니 납득한다는 얼굴로 비켜서서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에 윤슬은 저릿해져 오는 왼손을 두어번 쥐었다 펴면서 차에 올라탔고 시진은 말없이 윤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호팀장의 안내에 따라 무라바트에게로 이동하는 동안 모우루 중대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윤슬이 초대받은 곳은 5성급 호텔 스위트룸이었는데 미리 경호팀장이 이야기한 것인지 시진의 등장에도 무라바트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닥터 닐.]"

시진은 무라바트가 윤슬을 칭하는 호칭에 잠시 그를 쳐다봤지만 무라바트에게 시선을 고정한 윤슬에게는 시진의 궁금증을 풀어줄 여력이 없어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의장님.]"

"[그 날 이후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지만, 닥터에게는 아니겠군요.]"

"[예.]"

"[그래요. 그 때의 일은 어떻게 하더라도 갚을 수 없는 빚이니까요….]"

"[아뇨, 갚으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의장님. 전 그 날 세상의 반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을 용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태도에 용서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비슷한 일을 저지르시는 걸 봤습니다.]"

처음엔 무라바트에게 고정되었던 시선이 점차 경호팀장에게로 넘어간 윤슬은 그저 굳은 얼굴로 무라바트의 곁에 서있는 경호팀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금 무라바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에겐 당신도 저 경호팀장도 모두 같은 목숨일 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환자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짓은 다시 안 하셨으면 합니다.]"

"[…그건 내가 잘 말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더이상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만, 제 사람들에게 또 다시 그런 모습이 보인다면 저 또한 곱게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전 당신으로 인해 제 모든 사람을 잃었고 저라는 존재가 끔찍하게 여겨졌는데, 당신은 이렇게 태연하게 저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 참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윤슬의 얼굴에는 아픔과 슬픔이 뒤섞여있었고 그것을 본 무라바트는 더이상의 말문을 열지 않았다.

"[이번 일로 인해 지금의 내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한다면, 난 다시는 내 사람들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전부 없애달라고 요청할 것이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합니다. 전, 언제나 당신의 요청에 거부할 생각이 없습니다. 닥터 닐.]"

"[제가 당신에게 요청할 일이 생긴다는 것은, 제 사람들에게 위험이 닥쳤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부디 제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있어주세요.]"

"[의장님께서도 부디, 건강하셔서 다시는 뵙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목례로 인사를 한 윤슬은 몸을 돌려서 룸을 빠져나갔고 시진 또한 경례로 인사를 하고는 윤슬의 뒤를 따라 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룸에 남겨진 무라바트는 그저 슬픈 눈으로 윤슬이 떠난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과의 인연 탓에 주변 이들을 잃고 본인은 모진 고문을 당했었던 과거를 무라바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무라바트에게 윤슬은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린 은인이면서도 자신으로 인연으로 인해 잃은 것이 많은 아픈 손가락에 속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폭격 속에서 간신히 목숨만이 붙어있는 상태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끝으로 무라바트는 더이상 그를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깨어나자 보인 얼굴이 그의 얼굴이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겉모습은 매우 평번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은 착각도 했었던 무라바트는 이후 회복을 하면서 경호팀장에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자신은 그에게 제대로 사과를 전하지 못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은 그에게 사과를 전하지 못 했다.

앞으로도 그는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 직감한 무라바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은 그에게 두번이나 아픔을 줬지만 단 한번도 그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없었다.

그에게 무라바트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는 의사라는 이유로 무라바트를 살렸으며, 군인이라는 이유로 무라바트를 보호하고 지켰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존재도 아닌 이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그가 바로 윤슬이었다.

그는 의사라는 이유로 또 다시 그의 목숨을 붙여놓았지만 더이상 그는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보호하고 지킬 의무는 없었다.

그렇기에 무라바트는 그에게 또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안 좋은 미래를 위해 대비할 생각이었다.

자신을 세 번이나 살려주고 두번이나 죽을 뻔 했던 은인을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해 모두 삭제 요청하고 함구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예.]"

무라바트는 자신이 앉아있는 휠체어를 창가로 끌어서 가만히 창 밖을 바라봤지만 그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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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윤슬은 총구 앞에서 이미 무라바트의 수술을 집도 했던 적이 있으며, 무라바트의 안전과 관련되어 납치되었다가 그 사건에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이때 무라바트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이후 한국군이 구출임무를 수행해서 윤슬을 구해냈지만 이미 어머니는 사망한 이후였습니다. 정신이 무너지려는 윤슬을 붙잡은 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군인은, 목숨으로 사람을 지키고,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고, 우리는 그런 운명을 받아들였단다. 그러니, 딛고 일어서렴.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우리 아들-" 마지막은 무라바트 의장의 납치로 인한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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