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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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전역 신청서에 내 이름 석자를 적고 공식적으로 전역 처리가 되고 나서 2년 정도가 흘렀지만 나의 일상은 변함없었다.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을 하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잠을 자고 말이다.

"선배!"

익숙한 목소리에 멍하니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던 나는 상체만을 일으켜 세워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내가 생각한 이가 서있었다.

"아니. 밥 좀 먹고 오라고 보냈더니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음, 그냥 누워있었는데."

"밥은 먹은거 맞아요?"

그리 말하면서도 익숙하게 나에게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커피와 함께 빵을 건네는 모연의 행동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몸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도 식욕이 없는 탓에 입안에 무엇인가를 넣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워진 나에게는 점심식사를 거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내 주치의께서는 전혀 아닌 것인지 이렇게 매번 챙겨주는 탓에 나는 항상 미안해하면서 그 권유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충 빵을 입 안에 집어 넣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나면 모연은 가만히 자신의 옆에 앉아있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네. 먹는 거 봤으니까 이제 가봐야죠. 외과장님한테 콜 들어오기도 했고."

"왜 너한테?"

"부탁하신 게 좀 있어서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나는 조용히 모연을 배웅한 뒤 욱신거리는 다리를 가만히 내려다 봤다. 얕은 한숨과 함께 다리를 느리게 펴서 스트레칭을 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콜 들어온 것도 없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난간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문득 느낌이 쎄한 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가는 쪽을 바라봤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장례식장 쪽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들이 입은 복색은 장례식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보안요원을 부르기엔 아직 무언가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기에 직접 가볼 생각이었다. 달리는 것에 제약이 있다보니 걸어서 그 근처까지 가자 이미 두명이 집단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상태가 심각해보여 제지하려던 나는 순간 나타난 이들로 인해 잠시 멈춰서서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봤다. 일단 그들의 개입으로 인해 폭력이 멈춘 것도 있고 그들이 구타를 당하던 이와 아는 사이인 듯 싶어서 무슨 상황인지 지켜보던 나는 곧 칼을 꺼내든 이들을 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던 나는 개입했던 남자 두 명 중 한 명의 도발에 모든 이들이 칼을 꺼내드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폰을 꺼내 보안요원을 지원 받기 위해 연락을 했다.

"아, 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임서준이라고 합니다. 여기 장례식장 뒷쪽인데 폭력 현장을 발견해서 말입니다. 빠른 조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원은 대략 열두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통화를 하면서 걸음을 옮겼기에 통화를 끊은 순간 나는 그들 사이에 설 수 있었다.

익숙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나는 칼을 휘두르는 이의 손목을 꺽어 칼을 떨어트린 뒤 명치를 세게 쳐서 한 명 한 명 기절시키켰다. 그러던 나는 더이상 움직이는 상대가 없어지자 멍하니 내 쪽을 쳐다보는 이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누구, 십니까?"

"해성병원 의사입니다."

"아니, 그건 보면 압니다만."

얼떨떨하다는 얼굴로 묻는 이에게 더이상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민하던 나는 곧 몇명의 보안요원들이 와서 기절한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에 인사를 하고는 방금까지 구타를 당하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일단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간단하게 상태를 체크한 나는 멀뚱히 서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네."

"제가 이쪽을 부축하겠습니다."

점퍼를 입은 남자는 상태가 가장 심해보이면서도 아는 사이로 보였던 쪽의 염색모를 가진 쪽을 부축했고 세미정장 차림의 남자가 검은머리 쪽을 부축했다. 그런데 부축하면서 일어나는 자세에서 위화감을 느낀 나는 그 남자를 유심히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응급실로 돌아가자 어째서인지 모연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아까 폭행으로 인해 쓰러져 있던 두 사람 중 염색모를 하고 있던 쪽은 응급실에서 두번이나 도망을 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 폭행을 한 대상이 부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던 그들이라고 단단하 오해를 하고 있었다.

"강쌤 저 사람은 저 환자를 도와준 입장입니다. 제가 직접 본 거니까 믿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선배가 직접 봤다고요? 옥상에 계속 계셨던거 아니였어요?"

"아, 그 옥상에서 우연히 이상한 느낌인 사람들이 보여서 확인할 겸 갔다가 저 환자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안요원들에게 연락해서 정리했으니까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모연은 그 남자를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시선을 하면서도 알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섰다. 저 눈빛을 보아하니 분명 환자의 처치가 끝나면 확인하러갈 심산인듯 싶었다.

그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를 향해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확인할 것 같긴 하지만 증거는 충분하니까 문제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혹시 왼쪽 옆구리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내 말에 그 남자는 순간 놀란 눈을 했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음, 그건 왜 물으시는, 아니 근데 거길 다친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까 부축하시고 나서 여기까지 걸어오시는 폼이 이상하시길래 물어본 겁니다. 뭐 괜찮으시다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 말하고 업무를 하러 가려던 나는 나를 붙잡아 오는 손길에 멈춰섰다.

"아…. 그럼 혹시 상처 좀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까부터 아픈 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알겠다고 답한 나는 일단 접수하고 와달라는 말을 하고 나서 체크할 차트들을 확인했다. 그 중에서 오더를 내렸던 내용을 정리한 뒤 접수를 하고 돌아온 유시진 환자를 데리고 외상처치실로 이동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예상했던대로 유시진 환자의 왼쪽 옆구리 부근에는 칼에 찢긴 듯한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봉합했던 상처가 격한 움직임과 함께 벌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상태를 확인한 나는 봉합했다가 상처가 벌어지면서 이물질이 되어버린 실을 제거한 뒤 재봉합을 하기로 헀다.

"다행히 재봉합 후에 관리만 잘 해주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봉합하겠습니다."

드레싱을 할 준비를 하면서 그를 향해 상의를 들어올린 뒤 누우라고 말한 나는 일부러 그의 몸에 남은 익숙한 흉터들을 무시했다.

스스로의 몸에도 남은 그 흉터들은 결국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와도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이쪽은 과거이자 현재인 듯 싶었지만.

묵묵히 실을 제거한 뒤 봉합을 하던 나는 문득 그가 하는 질문에 느리게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의사 선생님은 무슨 운동 했습니까?"

"무슨 의미십니까?"

"아니. 아까 전에 싸우시는 거 보니까 엄청 깔끔하시던데 따로 운동하신건가 싶어서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봉합하는 부위를 응시하면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없습니다."

그 말대로 나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훈련을 받아 몸에 익은 것들로 인해 그리 보이는 것 뿐이었다. 그저 그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움직임이었으니까.

"그렇습니까. 꽤나 깔끔한 데다가 익숙해보여서 운동을 따로 하신건가 싶어서 궁금했던 건데 없다니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

묵묵히 봉합을 마무리를 한 뒤 드레싱까지 끝낸 나는 망설임없이 장갑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봉합 끝났습니다. 실밥은 일주일 뒤에 뽑으시면 됩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 소독 꾸준히 하시고 격한 운동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혹시 소독하러 여기로 와도 됩니까?"

"……가까운 곳에 거주하시는 건 아니시던데 근처 병원으로 가시면 됩니다."

"음, 그래도 여기로 오고 싶다면 와도 됩니까?"

"오시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응급실은 비용이 다른 곳보단 높은 편인데 거리도 멀고 비싸고 효율도 없는데 소독만 하러 해성병원까지 오신다니 이해가 안 되는 분이시라는 생각만 듭니다."

내 말에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이 웃음 소리를 내뱉으면서 웃는 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담아 응시하자 그는 곧 웃음을 거두면서 말을 덧붙였다.

"상관 없습니다. 저는 그쪽한테 치료받고 싶어서 물어본거니까요."

"…예?"

"뭐라고 해야할까. 그냥 앞으로 알고 지내고 싶어서 말입니다."

"……."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자 그쪽에서 먼저 손을 뻗어왔다.

"저는 유시진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하아, 저는 임서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독은 군병원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응급실은 기본적으로 응급상황 우선이기 때문에 소독만 하러 오시는 거라면 오셔도 시간 낭비하실 겁니다."

"그 정도 낭비쯤은 괜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무리입니까?"

"…하아, 마음대로 하시죠. 일단 약처방 해드릴 테니 수납하시면서 처방전 받아가시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질린다는 느낌으로 그가 겉옷을 들고 베드에서 일어나 외상처치실을 나가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트레이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오더를 정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응급실은 언제나 바쁜 곳이기에 쉴 시간은 더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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