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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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쉬는 날이어서 급할 것 없이 몸을 일으킨 나는 가만히 휴대폰에 남은 문자메시지 기록을 내렸고 그러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네볼라〕
장난 같은 그 이름은 내가 처음 특전사 람다 팀에 배정 받았을 때 팀장이었던 그의 콜사인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쓰지 않을 그 이름. 본명이 신성운이어서 성운이라는 단어는 콜사인으로 썼던 그.
문득 오늘 따라 그가 떠올랐다.
유시진. 특전사로 추정되는 군인. 83년생으로 자신보다 8살이나 어린 청년. 하지만 위험한 임무에 동원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이. 육사 출신으로 추정됨.
그리고, 그와 비슷한 입장이었던 자신의 팀장. 네볼라, 신성운.
자꾸만 떠오르던 과거의 모습이 점차 유시진으로 인해 지워져 가는 것에 나는 한동안 팀장님의 문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진짜 특전사로서 스스로의 목적과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해줬던 자신의 팀장은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했던 기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유시진이라는 사람 하나로 인해 뒤로 밀려나는 것에 나는 불안하고 초조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에게 다른 이의 환상을 씌울까 봐.
유시진이라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 비해 내 삶에 큰 의미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피해를 입힐까 봐 두려웠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큰 실례인 문제일 테니까.
나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해나갔다.
죽은 이는 살아있는 이가 기억하기에 사라진 것이 아니지만, 살아있는 이는 살아있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낼 테니까.
두 눈을 슬며시 떴을 때에는 휴대폰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 문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나는 그에 간단하게 답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괜찮습니다.」
씻고 나오자 새로운 문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뒤에 찾아가겠습니다. 점심은 밖에서 먹읍시다.」
밖에서 먹자는 말에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어내던 나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다음 알겠다는 답을 남긴 뒤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는 말린 뒤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쌀쌀한 날씨에 맞게 가벼운 티에 가디건을 걸친 뒤 그위에는 자켓을 걸쳤다.
바지는 심플하게 면바지로 입은 나는 신발은 편하게 운동화로 골랐다. 애초에 집에 있는 신발이라고는 운동화랑 구두 뿐이었지만 말이다.
미리 멀미약을 챙겨 먹은 다음 휴대폰을 챙겨서 집을 나서자 벌써 문 앞에 그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을 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되삼키면서 그에게 걸어갔다.
"아직 약속 시간이라기엔 이른 거 같은데 언제 오신 겁니까."
"아, 얼마 안 됐습니다. 오늘따라 길이 안 막히더라고요."
태연하게 그리 말하는 그의 모습에 뭐라 답할 수 없었던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익숙하게 미소 지으면서 자리를 비켜주면서 앞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굳이 열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안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굳이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말릴 필요를 못 느낀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그리 말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런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어보이면서 알겠다고 답하는 그의 모습은 차마 뭐라 답하기 애매했다.
그렇게 나는 그가 추천한 가게까지 조용히 갈 수 있었는데 내가 멀미가 심한 것을 아는 그가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일지는 몰라도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는 가벼운 클래식이 흘러서 정적을 피할 수 있었다.
도착한 가게는 퓨전한식을 하는 가게였다. 메뉴를 봐도 어떤 게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서 추천을 해달라고 했더니 가장 처음으로는 갈비 메뉴를 골랐고 그 다음으로는 같이 곁들여서 먹을 샐러드를 골랐다.
샐러드 다음으로는 필라프와 파스타도 시켰다. 그렇게 나온 메뉴들 모두 맛있었는데 샐러드가 삼삼하긴 했지만 드레싱 자체가 좀 독특해서 계속 손이 가는 맛이었고 다른 세 가지의 경우에는 무난하게 맛있었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오자 그는 나를 데리고 카페로 갔는데 그는 따뜻한 카페 라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런 날씨에 차가운 거 마시면 춥지 않습니까?"
"음… 춥긴 하지만 제가 뜨거운 건 잘 못 마셔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차가운 거 마십니다."
"그 고양이 혀, 이런 거 말입니까?"
"음, 그렇게 말하시고는 하더라고요. 아마 맞을 겁니다."
"그렇군요. 고양이 혀라니 처음 보는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저 다들 주변에 익숙해져가면서 티가 안 날 뿐 이런 케이스는 많을 겁니다."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를 때는 다른 느낌이죠."
그 말에 나도 수긍을 하면서 피로한 탓에 저절로 나오는 하품을 손 안으로 감추면서 두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제대로 못 주무신 겁니까?"
"아아… 뭐,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그건 혹시 저와 관련 있습니까?"
"…그럴 것 같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민하는 듯 싶은 얼굴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나는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그런 나의 행동에 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그의 행동에 웃어버렸다.
쑥맥 같은 그런 그의 반응이 처음 인상과는 꽤나 달라서 웃어버린 것이었지만 그 순간 웃어버린 나의 행동이 신경쓰였는지 불퉁해보이는 그의 표정에 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음을 삼켜야 했다.
"…그만 웃어도 될 것 같지 말입니다."
"푸흡…. 알겠습니다. 그런데 유시진씨, 내가 당신에 대해서 판단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그게 저한테 유리하게 작용하는 거라면 무조건 답해야죠."
"그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유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뭔가요, 그 질문은."
"유시진씨, 당신과 나는 누가 언제 먼저 떠나도 이상할 것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도 나와 가까워지고 싶습니까?"
내 말에 그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고 그에 나는 그가 덧붙이는 말에 이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답해야 하는 겁니까?"
"아뇨. 유시진씨가 말했던 시간은 아직 며칠 남아있습니다. 그 답을 지금 할지, 아니면 모든 시간이 끝난 그 날 할지는 그쪽의 자유입니다."
"…그럼 나중에 답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 뒤로 우리 두 사람은 다시금 평소대로 돌아갔고 나는 그 속에서도 고민에 잠긴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두 눈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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