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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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의 수술이 진행되는 그 시각 대한민국에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 등이 최악의 사태를 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남우르크 정부군이 모우루 중대로 특공여단을 보내려 했던 것이 무라바트 경호 팀장의 연락에 취소됐다는 것과 무라바트 의장의 수술을 집도하는 임서준에 대해 언급되었다.

국방부에서는 군의관이자 특전사였던 그를 알고 있었지만 기밀사항이었기에 말할 수 없는 존재였고, 외교부에서는 당당하게 무라바트 경호 팀장에게 이기고 들어가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수술이 끝난 뒤 서준은 모든 의료진을 물린 채로 홀로 무라바트 의장의 곁을 지켰는데 이 과정에서 유시진은 밀착 경호를 이유로 함께 했지만 서준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닥터 닐. 의장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경호팀장이 말문을 열어 질문을 던지자 무라바트의 상태 체크를 끝낸 서준이 보조의자에 앉아 무라바트 의장을 응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회복 속도는 생각 이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고 이 속도로 회복한다면 깨어난 후 며칠 내로 가볍게 움직이는 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 자리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에게는 불행이었지만,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나 봅니다.]"

평소의 무표정과 달리 싸한 분위기 탓에 그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감정이 그리 평온치 않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경호팀장은 서준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아니, 당연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무라바트 의장의 존재로 인해 서준은 한 해 동안 세 번의 목숨을 위협 받았으며, 혈육인 어머니를 잃을 뻔한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서준은 본래 팀을 나와 다른 팀에 배정되어야 했으며, 그의 어머니는 의병 제대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그의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서준이 그를 온화하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니까,

"살아―. 살아서, 그렇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떠나버리세요."

짓씹듯이 내뱉은 말을 알아들은 이라고는 그의 곁을 지키던 이들 중 시진 뿐이었지만 시진은 잠시 그에게 시선을 주었을 뿐 다시금 태연한 척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경호팀장은 서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가 한 말이 무라바트를 저주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서준이 저렇게 그를 증오하면서도 결국은 의사라는 명분에 맡게 그를 살려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온을 가장한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서준은 이를 악물고 버텼고 시진은 지켰으며, 의료진은 걱정과 함께 서준의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무라바트 의장이 의식을 찾고 바이털 수치도 정상적이면서 별다른 합병증도 일으키지 않은 덕에 메디큐브에는 몇몇을 제외하면 웃음꽃이 피어났다.

뒤늦게 도착한 무라바트의 주치의는 서준에게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며 고마워 했지만 서준은 덤덤하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함께 움직이라는 말을 하고는 넘겨버렸다.

경호팀장처럼 무라바트 또한 서준을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식을 되찾은 무라바트는 서준을 보고 놀란 기색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지만 아직 말을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이 아니였기에 서준에게는 어떠한 말도 전해질 수 없었다.

"[이게 당신한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예요(This is your last chance). 무라바트 의장님.]"

그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만둔 무라바트는 그저 미안함으로 물든 눈으로 서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무라바트 의장의 이송을 위해 남우르크 정부에서 헬기가 보내졌는데 그 자리에서 서준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그저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헬기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해산하였는데 서준만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그 자리에 남은 인물이 두 명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시진과 모연이었다.

시진은 그에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먼저 모연이 서준의 정신을 깨우고 이끌었기 때문에 시진은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 몸을 돌려 세운 시진은 본진에 보고를 하기 위해 부대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와, 죽다 살았네. 나 진짜 서른일곱 살 인생 객지에서 막 내리는 줄 알았다."

어느새 메디큐브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 중 상현이 테이블에 엎어지면서 하는 말에 뒤따라 들어온 자애가 그의 옆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환자 살아서 의사 살렸네."

"진짜 다행이에요. 우리 집이 좀 살지만 이건 어떻게 수습될 사이즈가 아니거든요."

"그럼 임쌤은 대체 어떤 분이신거예요?"

"그러게요. 이번에 임쌤이 나서자마자 모든 게 해결되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치훈과 민지의 질문은 메디큐브 안에 있던 의료진 중 어떤 사람도 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임서준이란 비밀로 점칠되어 있어서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실력만큼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신뢰했으며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의 그런 비밀스러움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그 비밀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엎어져 있던 상현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붙였다.

"그것보단 내가 진짜 수술실에서 그렇게 떨어본 건 외과 인생 통산 세 번째인 것 같다."

"첫 번째랑 두 번째는 언젠데요?"

"얘네 어머니 수술할 때랑 아는 사람 수술할 때. 얘네 어머니 수술할 때는 뭐 하나라도 잘못될까 긴장했고, 아는 사람 수술할 땐 내 실수로 이 사람이 죽을까 봐 긴장했지."

상현의 말에서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인물들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모르는 이들은 상현이 두려워할 정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다들 지친 상태라 더이상의 수다보다는 쉬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연의 이끌림에 메디큐브에 들어가려던 서준은 그 말을 듣고 멈춰섰고 모연은 그런 서준의 행동에 그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강선생님도 떨었습니까?"

"언제요? 이번 수술에서요? 아니면, 선배가 피투성이가 되서 실려왔을 때요?"

모연의 태연스러운 얼굴과 말투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서준은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본 그녀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떠올리면서 자조적으로 웃었고 그 모습에 모연은 서준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물론 선배가 그런 모습으로 실려올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지만 지금의 저는 그저 선배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웃지 말아요. 나도, 송선배도, 괜찮으니까요."

"…미안합니다."

"미안할 필요도 없고요. 환자는 의사에게 잘 나아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어보인 모연의 모습에 서준도 마주 웃었고 그런 서준의 얼굴에 모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메디큐브 안에 있는 의료진 속으로 섞여들었다.

그런 모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서준은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 피곤해져 오는 느낌에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의료진이 막사 내에 돌아오지 않는 시간동안 짐이 도착한 것인지 서준의 이름이 적힌 캐리어가 짐을 놓아두었던 곳 바로 옆에 놓여있었지만 지금 당장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던 서준은 캐리어를 정리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공간이라고 인지한 곳에 몸을 눕힌 이 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서준이 쉬는 내내 막사 내부에는 조용하고 평온한 기류가 흘렀고 그 기류에 떠밀리듯이 서준은 조용히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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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1. 총상을 입은 피랍 대상 무라바트 구조 및 긴급수술 담당의 (피치 못할 긴급사안이어서 수술했지만 수술 내내 총구가 머리에 겨눠진 상황이었음) 2. 병으로 인해 긴급 수술을 위해 임무를 위해 나왔던 임서준이 긴급 사안으로 불려감 집도의로 수술함 (이 때 본인들이 불러놓고 본인들이 위협을 가함) 3. 무라바트 요청으로 경호임무를 할당받음 - 임서준의 정보가 적대세력에 넘어가면서 군의관이었던 어머니 납치 - 임무 도중 정보 전달 받음 - 무라바트 안전한 장소로 안내 후 구조 임무 투입 - 의도적으로 임서준만 납치 후 뒤로 빠진 적대세력 - 고문을 통해 무라바트의 약점과 위치 등 정보를 끌어내려함 - 이 과정에서 어머니 다리 망가짐 - 그리고 이후 무라바트 쪽에서 지원 병력을 붙이면서 임서준과 어머니 구조 적대 세력은 일부 제외 전부 격파됨 - 이후 임서준은 팀 이동을 하게 됨 - 그리고 반년 뒤 적대세력에 의해 팀원 전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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