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50

-out

시진과 대영이 떠난 이후 메디큐브에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스스로 격리 조치를 내린 모연은 명주와 함께 아직 잠들어 있는 진소장과 수술실에 갇힌 상태였고, 모연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윤슬도 스스로에게 격리 조치를 내렸기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다.

상현도 컨디션 난조로 격리 위험이 높은 상태다 보니 자연스레 의료진 사이에는 불안감이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료진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사를 위해 혈액 샘플과 함께 떠났던 시진과 대영이 굳은 얼굴로 메디큐브로 복귀했다.

대영은 거침없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더니 그들의 등장을 알아차린 명주를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았다.

놓으면 그 자리에서 사라질 것만 같다는 느낌으로 대영은 명주를 끌어안았지만 격리된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명주는 그토록 원했던 대영의 품임에도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곧 시진의 아픔이 담긴 눈빛과 대영의 이상현상에 대해 담긴 의미를 눈치챈 명주는 힘없이 두 손을 늘어트렸다.

"…나구나."

그 말을 들은 대영은 더 명주를 끌어안았고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시진과 모연은 당사자들이 아니기에 착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좀 무섭다…. 선배, 이 사람 좀 데리고 나가줘요."

"안 나가. 여기 있을 거야. 여기 너랑 있을 거야."

"난 확징자고 서상사는 점촉자라 따로 격리해야 합니다. 의사로서 진단이고, 군인으로서 명령입니다. 나가십시오."

대영이 억눌린 음성으로 말하자 명주는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단호하게 대영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시진이 대영의 어깨를 두드리자 대영을 이를 악 물고 뒤돌아서 수술실을 나갔고 뒤로는 명주의 작은 울음소리가 따랐다.

대영은 보급창고 안에 격리 되었으며, 좁은 보급창고 안을 쉬지 않고 서성이면서 울화통이 터지고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의 아버지인 윤중장의 핑계를 대면서 비겁하게 도망치려고만 했던 자기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았고, 당장이라고 창고 문을 부수고 나가 명주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에게 상처줬던 모든 순간들이 영화필름처럼 지나가는 그 순간이 지옥과도 다름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상념이 깨진 것은 정식으로 격리 해제 조치가 내려져서 마스크에 보호장구를 찬 모연이 시진과 함께 들어서서 채혈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명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내뱉은 대영은 모연의 답을 기다렸지만 모연은 대영의 팔뚝에 고무줄을 감으면서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사망률이 50퍼센트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에볼라 같은, 에볼라보다 나을 게 없는 병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하지만 자식 잃은 대호처럼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영의 기세에 모연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네. 맞아요. 근데 윤중위처럼 젊고 건강한 환자들의 사망률이 매우 크게 낮아져요. 연역력이 좋아서요."

"그렇게 애매하게 말고, 죽습니까…? 삽니까…?"

"의학에는 100퍼센트가 없어요. 그래서 의사들은 통상 가능성이 높다, 낮다, 매우 높다, 크게 낮다, 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사망률이 매우 크게 낮다란 살 수 있다에 매우 크게 가깝다란 뜻이니까요."

"하…… 감사합니다."

채혈을 마친 대영이 마른세수를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잠시 바라보던 모연은 깊은 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벽에 기대서 있는 시진을 향해 대영이 말했다.

"이런 시기에 저까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무사히만 나옵니다. 사고 쳐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주십시오."

"명주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아직 환자 아니고 의삽니다. 진소장 체크하랴 자기도 체크하랴 바쁘니다. 서상사는 괜찮습니까?"

"전 괜찮다고, 제 걱정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뭘 전해줍니까? 지금 명주가 물어보라고 시켰다고 넘겨짚은 겁니까? 내가 묻는 겁니다. 내가! 걱정되고 궁금해서!"

시진의 말에 대영이 시진을 어이없다듯이 쳐다보자 그제서야 픽 웃어보인 시진은 무전기를 툭 던져주며 말했다.

"통신 면회 하십쇼."

"…고맙습니다."

"전파로도 감염되면 얼마나 좋아. 갑니다."

시진이 마지막 농담을 최루탄처럼 휙 던지고 밖으로 나가자 대영은 무전기를 켰고 키자마자 명주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기는 윤명주. 서대영 상사 들리면 대답합니다."

"…수신양호."

-"어? 서대영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 마냥 웃음소리와 함께 넘어온 말에 대영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식사는 했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명주의 물음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반대쪽 어두운 벽만 바라보던 대영은 곧 들리는 명주의 말에 울컥 치솟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바보, 대답 알려줬구만."

"……보고 싶습니다."

-"……식사는, 했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압니다."

"웁니까?"

"혹시 기억납니까? 우리 두 번째 봤을 때 내가 입었던 그 흰 원피스. 그때 나한테 그랬지 말입니다. 컨셉이 처녀귀신이녀고. 갑자기 생각이 나면서…… 그게 복선이었나 싶고…… 지금 죽으면 진짜 처녀귀신인데…… 너무 억울하고……"

"천삽니다. 윤명주는 제 인생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천사였습니다. 알아두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머리 속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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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Nil 창작자

    전 편에서 왜 윤슬은 검사하지 않느냐는 코멘을 보고 저도 플롯을 짜면서 많은 고민했던 부분이었기에 설명하려고 합니다. 기존에 저는 윤슬의 바이러스 감염에 관련하여 두가지 선택지를 두었습니다. 감염되느냐, 되지 않느냐. 된다면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감염이 되어야 하는지, 감염 확인 방법은 어떤 타이밍이 좋을지, 감염 후에는 어떤 증상을 보일지, 진소장의 발작 상황에서는 어떤 대처를 할지. 하지만 이북을 읽고 플롯을 정리하면서 제가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고 그것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 되서 결국 이런 전개를 선택했습니다. 이 전개를 선택하면서 나오는 의문은 바로, 왜 윤슬은 먼저 채혈해서 검사를 하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유1. 작중의 인물들은 일단 진소장의 바이러스 여부가 확실해야 대처 방안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판단. 이유2. 작가는 윤슬의 확진 여부가 먼저 공개될 경우 이후의 전개가 매우 많이 달라지는 상황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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