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22

-out

다음날 시진은 풀어야 할 급박한 문제가 있는 듯한 괴로운 느낌과 함께 아침을 맞이 했다.

어제 자신에게 기댔던 그는 단호하게 몸을 돌려서 자신에게서 벗어났고, 그런 그를 품에 안았던 시진은 성급했던 자신의 행동에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시진은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다시 그 상황이 오더라도 시진은 그를 끌어안았을 것이고 그가 살아있음에 안도했을 것이다.

그렇게 막사에서 하루를 준비하던 시진은 의료팀의 막내인 치훈이 의료팀장이 자신을 찾았다는 말에 혹시나 그도 있을까 싶은 마음을 애서 누르면서 메디큐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타깝게도 메디큐브 안에서 윤슬의 모습을 찾지 못했지만 모연의 부탁에 받아든 약도를 가만히 보는데 그 순간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시진의 시선을 빼앗았다.

"이 지역에 마을이 있었던가."

"…아, 한선생도 이곳 위치를 아십니까?"

"간단하게라면 압니다만. 직접 가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한쌤이 혹시 유대위님이랑 다녀오실 수 있을까요? 저희는 건설현장에 나가봐야해서요."

모연의 말에 약도를 보던 윤슬의 시선이 모연에게로 옮겨졌고 모연은 윤슬이 자신을 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활짝 웃더니 분주하게 아이에게 전해줘야 하는 약들을 챙겼다.

그리고 윤슬은 어제와 달리 덤덤한 얼굴로 시진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럼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대위님."

"…예."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윤슬의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찝찝한 느낌에 시진은 억지 웃음도 지어보일 수 없었지만 윤슬은 그런 시진에게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모연에게 약들을 건네받았다.

시진은 먼저 메디큐브를 나와 차를 준비했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윤슬이 약이 든 가방을 들고는 메디큐브에서 나왔다.

윤슬이 차에 올라타자 시진은 부드럽게 차를 출발 시켰고 거친 길임에도 불구하고 윤슬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은 괜찮은겁니까?"

"어떤 게 말입니까?"

"멀미요."

"약 먹었습니다. 아마 반나절정도는 괜찮을겁니다."

"…그렇습니까."

그 뒤로 차 안에 정적이 흐렀는데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윤슬 쪽이었다.

"어제, 고마웠습니다."

"…괜찮았습니까."

"덕분에 견딜만 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음엔 안 도와줘도 됩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기대는 순간, 무너지는 건 접니다."

"기대는 걸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죠."

"…희망은 절망의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저기 가네요."

윤슬의 말에 의문을 토해낸 시진은 곧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앞을 가르키면서 말하는 윤슬의 행동에 차를 세우고 앞을 보자 현지인 꼬마가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고 그걸 본 시진이 클랙슨을 울렸다.

그러자 현지인 꼬마는 소리에 반응해서 돌아보더니 익숙한 차량임을 알아보고 꼬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꼬마를 차에 태운 그들은 블래키 마을로 향했는데 그 마을은 들어가는 길에 깍아지른 절벽들이 병풍처럼 서있고 통신망이 설치되지 않아 핸드폰 연결도 되지 않는 오지였다.

전쟁이 끝나고 난민들이 모여있는 마을은 움막촌에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모여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곳인 듯 했다.

전쟁이 지나간 곳이 맞는 것인지 마을 내에는 젊은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시진과 윤슬은 그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지 못 했다.

그저 이 마을에 온 목적인 꼬마의 엄마에게 처방약을 전해주고 악 먹는 방법을 현지어를 사용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윤슬의 모습에 시진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런 시진과 달리 윤슬은 평온한 안색으로 설명을 마무리 했다.

"이곳 말을, 할 줄 아셨습니까?"

"…예전에 배웠습니다."

"예전에, 말입니까?"

"자세한 건 기밀 사항이라서 더이상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시진은 윤슬의 입에서 나오는 기밀 사항이라는 말이 걸렸지만 자신에게도 익숙한 그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시진에게 기밀 사항을 다루는 것은 일상과 다름없었고 그 속에서 자신처럼 기밀 사항이 일상인 인물을 만나는 것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민간인이라 판단했던 인물에게서 흘러나온 그 말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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