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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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과 윤슬이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연락을 위해 잠시 마을을 벗어났던 시진은 이쪽으로 향해 달려오는 차 안에 있는 이의 얼굴을 알아보고 다급하게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시진이 마을에 도착하는 것보다 차가 마을 앞에 멈춰서는 게 빨랐다.

차에서 내려선 이는 바로 아구스였는데 그는 퇴역한군인으로 뒷세계에서 잔인하기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 마을에 온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 마을의 아이들이 그가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빨강 장미를 데리러 왔던 그는 익숙한 군용 지프차가 마을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비뚜름하게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것을 본그의 부하들은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도깨비 마을에 있는 작은 신전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아구스 패거리의 존재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모연이었다.

윤슬은 잠시 아이들을 데리러 잠시 자리를 비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보호자세요?]"

"[손님이 계셨네?]"

모연이 아구스를 경계하면서도 이곳을 찾아온 어른이라는 점에서 물었지만 아구스는 삐딱하게 선 채로 흥미롭다듯이 다른 말을 했고 모연은 그런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전 한국에서 온 의사입니다. 마을 아이들 몇이 홍역에 걸렸어요. 이 아이들을 우리 야전 병원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좋은 일 하시는 분이 이렇게 아름답긴 쉽지 않은데.]"

아무리 윤슬과 소녀가 거래를 했다고는 해도 이곳의 주인이라고 칭해지는 이로 보이는 존재가 온 이상 말없이 데려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 생각한 모연의 질문은 싸그리 무시하면서 말하는 아구스가 아릇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모연은 순간적으로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그래서 몸을 움츠리고 물러서려는 순간 자신의 앞으로 두 남자의 등이 나타나 모연에게서 아구스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시켜 주었다.

"[또 보네 캡틴? 하필 이런 곳에서? 닥터까지 말이야.]"

"아는 사이예요…?"

아구스가 두 사람 모두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윤슬은 말하지 않았고 시진이 아구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라이언 일병."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이야기를 떠올린 모연은 그들의 반응과 아구스에 대한 첫인상으로 그들의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임을 눈치챘다.

그 순간 느답없이 총성이 울렸고 그와동시에 모연의 몸을 윤슬이 감싸안았고 시진과 아구스의 부하들이 총을 꺼내들어 서로에게 겨눴다.

하지만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은 아구스였으며, 그에게 총을 쏜 것은 윤슬과 거래를 하기로 했던 소녀였다.

윤슬은 모연을 시진의 등 위에 세우고는 단번에 소녀에게로 달려가 소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면서 소녀가 들고 있던 총으로 아구스 부하들에게 겨눴다.

"[내가 분명 가만히 있어달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못 죽일 것 같아서….]"

"[그래. 맞아. 죽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 살아있어. 그래서 의사인 우리는 네 짓으로 인해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저 악당을 치료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야만 하는 상황이 됐지.]"

아까와는 달리 단호하면서도 싸늘한 윤슬의 말에 소녀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채로 부들부들 떨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윤슬의 등이 누구보다도 든든했기에 아구스 패거리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곧 당연하다듯이 외치는 아구스 부하 중 한 명의 말을 들은 소녀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거기 의사 뭐해! 빨리 와서 뭐든 해!]"

의사라는 이유로 그들은 치료를 강요받았고 치료를 해야만 했다.

그 말이 향한 것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눈 윤슬이 아닌 시진의 등 뒤에 서있는 모연이었는데 모연은 당연하게도 이 상황이 무섭고 달갑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새기면서 발전소 구조 현장에 있을 때도 모연은 자신의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지만 누가봐도 악당임이 분명한 인간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 앞에서는 선듯 그를 살리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그를 살림으로서 더 많은 이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그를 외면하고 살리지 않으면 져버릴 수 밖에 없는 의사로서의 긍지.

모연은 그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살려요. 당신은 의사로서 당신의 일을 해요. 죽여야 할 상황이 생기면, 죽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그때 모연의 귓가에 시진의 단호한 음성이 닿자 점차 현실로 끌어올려진 모연은 그제서야 주변 상황을 두 눈에 담았다.

시진과 윤슬은 자신과 소녀를 보호하면서 아구스 패거리와 대치중이었고 아구스 부하들은 허둥지둥 경계를 하면서도 자신의 대장인 아구스를 살려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윤슬과 시진은 그런 대치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무표정이었지만 모연은 불안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출혈에 의한 쇼크예요. 안으로 옮겨야 해요."

망설임 끝에 모연이 말문을 열자 시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구스 패거리를 향해 말했다.

"[선택해. 총 내려놓고 알으로 옮길지, 이대로 둬서 그냥 죽게 할지. 참고로 난 후자를 권해.]"

시진의 말은 아구스 패거리에게 선택하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그렇기에 부하들은 아구스를 업어 작은 신전 안으로 들어가 아구스를 바닥에 눕혔고 모연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응급수술을 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런 모연에게 허튼 짓하면 죽을 줄 알라며 머리에 총을 겨누자 그런 부하의 머리에 또 다른 총구가 겨눠졌다.

서늘하게 식은 금속의 온도에 부하는 움찔하면서 시선을 돌렸고 그 곳에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윤슬이 싸늘한 눈초리로 부하를 노려보면서 방아쇠 위에 검지를 올리고 있었다.

"[그 전에 네 녀석 머리부터 날아갈거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총 치워.]"

부하는 아구스처럼 기세에 눌리는 인간을 처음 만났고 그에 몸을 움츠리고 총을 거둔 뒤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윤슬이 들고있는 총의 총구와 시선은 단 한 번도 그 부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모연은 더이상 위축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아구스는 환자일 뿐이고, 그 부하들은 보호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줄 남자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그녀의 등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연에게 더이상의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환자를 치료할 뿐이었다.

응급키트에는 당연하게도 수술을 위한 마취제도, 진통제도 들어있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잠시 고민을 했던 모연은 말없이 메스를 소독한 뒤 아구스의 환부를 쨌다.

"[아파! 진통제는 놓고 하는 거야?]"

잠시나마 기절했던 아구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면서 외치자 모연은 정말 겁이 없어진 것인지 덤덤하게 말했다.

"깜빡했네. 실력 좋은 의사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연의 과감한 손길이 핀셋을 들더니 환부를 헤집어서 총알을 빼냈고 그 과정에서 아구스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온 몸을 바르작거리면서 소리쳤다.

"[군인들이 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이라도 애들 모을까요?]"

밖에서 대치중이던 시진의 무전을 따라 들려온 군인들의 목소리를 들은 탓인지 밖에 서있던 부하들 중 한명이 신전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하자 아구스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군인들이 오고 있으면 후퇴를 해야지.]"

"[하지만,]"

"[상대는 한국군 특수부대야. 용병 시장에서 제일 비싼 북한 애들이랑 싸우도록 훈련받은. 늬들 상대 아니야. 돌아가자.]"

부하의 말을 다 자르고 말한 아구스는 다른 부하의 부축을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의 환부에는 파스형 거즈가 붙어있었지만 금세 물드는 거즈의 상태로 그의 상처 치료가 완전히 되지 않았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아구스가 소녀를 향해 시선을 돌릴 려는 순간 윤슬이 그의 앞을 막아섰고 결국 소녀에게 아구스의 시선은 닿지 못했다.

"[헤이 닥터. 그럼 다음에 보자고.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매우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야.]"

"[…닥치고 꺼져.]"

윤슬은 처음으로 그들의 앞에서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지금 화가 나있는 상태였는데 그것은 지금 상황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구스가 말한 윤슬의 친구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윤슬의 말에 아구스는 픽 웃으면서 몸을 돌렸고 윤슬은 그가 차를 타고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총을 내리더니 깔끔하게 분해했다.

"[어때?]"

"[…뭐가?]"

"[너의 그 복수심 때문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한다면 더이상의 할말은 없어. 네가 우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알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니까. 하지만 거래에 응한 건 너라는 걸 잊지마.]"

"[…미안해.]"

"[사과를 하라고 한 말이 아냐. 네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너는 초조했겠지.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나빴다는 소리야. 아구스는 이 행동으로 너를 인식했고 너를 확실히 죽이려 들테니까.]"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말하는 윤슬의 모습과 그 말에 담긴 내용에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분노를 삼켰다.

지금의 소녀에게는 아구스에게 복수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아구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힘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자신을 도와주겠다 하는 이들을 떠나 벗어날 궁리를 해야만 했다.

아구스를 아는 이들, 그들이 과연 자신의 몸을 의탁해도 되는 이들인지 확신을 할 수 없었자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이 있을거라고 소녀는 굳게 믿었다.

아무리 자신들을 지켜준 이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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