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태후/BL] 죽지 못한 이의 삶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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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가는 길에 씻으러 간다는 상현과 마주친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만 따로 지정한 시간의 끝무렵에 씻기로 했다. 상현을 보낸 뒤 숙소로 들어온 나는 피로한 몸을 베드에 눕힌 다음 조용히 정적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후덥지근한 낮과 달리 서늘한 공기가 은근하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마치 답답하던 속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선배, 다들 씻었어요. 선배만 씻으면 돼요."

"알겠습니다."

미리 말해주었던 대로 모두가 씻고 나서 상현이 나에게 알려주러오자 베드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갈아입을 옷과 기타 용품을 챙겨서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에 도착한 나는 상현의 말대로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탈의를 했다. 샤워장 이용 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시간에 압박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탈의실에 놓인 서랍장 안에 입고 있던 옷과 갈아입을 옷을 정리해서 넣어둔 나는 바로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샤워장은 임시용으로 만들어둔 것치고는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그리 생각하면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어내던 나는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쪽을 반사적으로 쳐다봤다가 의외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아―, 지금 씻으시는 겁니까?"

"예, 유 대위님이야 말로 지금 씻으시는 겁니까."

"예, 뭐…."

"전 금방 나갈테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에게 말한대로 물로 헹구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나는 그에게 시선을 떼고 물을 몸에 뿌렸다. 직장동료인 의료팀에게 내 몸을 보이기엔 몸의 상태가 그리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따로 시간을 맞춰서 들어온거지만 굳이 내가 타인에게 들키는 것을 꺼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내 행동은 전혀 다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의 상태를 본 것인지 굳은 것처럼 서있는 그의 행동에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짐을 챙겨 바로 샤워장을 나갔다. 물기를 닦아낸 뒤 옷을 갈아입은 나는 곧장 숙소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굳이 내 몸의 흉터를 보고 충격받은 그를 다독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3년 정도인가? 그 시간은 나 스스로도 내 몸의 흉터가 그리 보기 좋은 것이 아님을 인지하기 충분했고 그렇기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타인에게 내 흉터를 보일 일은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연히 보게 되는 그들의 상황까지 내가 배려하고 신경쓰기엔 내 삶도 그리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애써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그게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더 나은 선택지일테니까. 그리고 이런 내 상태를 알고 나면 내가 왜 그렇게 거절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차피 이제와서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어? 선배! 저녁 안 먹었죠? 비빔밥 어때요?"

숙소에 들어가서 수건을 널고 옷을 정리해서 넣는데 상현이 갑자기 문 쪽에서 나타나더니 묻는 말에 거칠지 않은 어투도 거절했다. 식욕도 없을 뿐더라 지금 무언가를 먹는다면 다 토해낼 것 같은 울렁거림은 기분을 극렬하게 바닥으로 내리 꽃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말해봐야 걱정이나 살게 분명했지만 나의 상태를 애써 감추며 한 번 더 권하는 상현에게 괜찮다고 답한 나는 그대로 베드에 몸을 눕혔다.

이곳에 오는 것에 불만은 없었지만 막상 오니까 피로함이 상당했는지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나는 이 봉사일정이 스스로에게도 꽤나 힘든 일정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무사히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할 것이 당연했기에 마는 애써 머리 속을 비워내며 두 눈을 감았다.

내일은 군인들의 건강 검사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날부터는 해성에서 지원하는 발전소 쪽 검사가 진행될 것이다.

바쁜 일정은 아니었지만 한가로운 일정도 아니었기에 휴식은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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