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BL] 노인과 청년 / 백업

[태후/BL] 노인과 청년 (前) 08

-out

출국 전날까지 워커홀릭마냥 일하던 윤슬은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은 게 분명한 모연에게 끌려가다시피 병원을 벗어났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윤슬의 집이 모연의 집과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단독주택형 빌라 단지로 되어있는 집이었는데 신혼부부나 전문직 독신 남녀가 주로 거주하는 편이고, 집집마다 작은 화단을 낀 마당이 있었지만 단지 내 관리직원이 해주기에 거의 한달만에 돌아온 윤슬의 집앞은 생각이상으로 깔끔했다.

"오늘 꼭 쉬고, 내일 아침에 같이 가요. 또 밤새지 말고요."

"…."

모연의 충고 아닌 충고에 어색하게 웃어보인 윤슬은 한숨을 내쉬는 모연에게 끝끝내 답하지 않았고 모연은 그런 윤슬의 행동에 그러려니 하면서 내일보자는 인사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가버렸다.

달칵-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휑한 집안이 보였는데 얼마나 휑했냐면 기본적인 가구인 냉장고와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물품도 없었기 떄문이었다.

방금 이사온 것 같은 집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을 가르면서 안쪽 방으로 들어간 윤슬은 그제서야 불을 켰고 그러자 침대와 작은 수납함이 놓인 방이 밝게 빛났다.

그리고 방 안에 딸린 문을 여니까 그 안에는 옷장과 문 하나가 더 있었다.

윤슬은 망설임없이 그 안에 딸린 문까지 열었고 그 안은 싸늘함이 감도는 욕실이었다.

욕실에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간 윤슬은 욕조에 물을 틀어서 채워지는걸 가만히 보다가 입고있던 옷을 벗어서 욕실 앞에 놓여져 있던 바구니 안에 넣었다.

그러자 팔꿈치 무릎 관절 부위를 제외한 왼쪽 전신이 엉망으로 물든 게 드러났는데 윤슬은 그런 흉터가 아무렇지도 않은지 욕실 문을 닫고는 수증기로 가득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샤워기를 틀어서 가볍게 샤워를 한 뒤 욕조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여전히 김이 폴폴 올라오는 욕조 안이었지만 윤슬의 안색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참 뒤 욕조에서 나온 윤슬은 욕조의 물이 빠지는 동안 가볍게 샤워를 하면서 샴푸도 했고 세수를 하고 양치까지 끝낸 다음 욕실을 빠져나왔다.

젖은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 윤슬은 젖은 머리를 털어내면서 말렸고 가볍게 스킨 로션까지 바른 뒤에 가벼운 실내복을 꺼내 입었다.

평소에 긴팔과 긴바지에 익숙해진 윤슬은 당연하게도 긴 옷들로 챙겨입었는데 그 덕에 윤슬의 몸에 있던 흉터들이 전부 가려졌다.

마르다 만 머리를 한번 더 털어낸 윤슬은 그 순간 울리는 진동음에 휴대폰을 집어 들어서 화면에 떠있는 알림을 눌러서 내용을 확인했다

『 준비됐어. 언제 올거야? 

                  -발렌타인- 』

짧은 영문들로 이루어진 가만히 내용을 응시하던 윤슬은 곧 익숙하게 타자를 쳐서 전송을 눌렀다.

『 내일 출발해. 갈 때 연락할게.

                          -0- 』

그리고 나서 답장으로 짧게 [OK] 이라는 문구만 돌아왔지만 윤슬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이 화면을 끄고는 한쪽에 있던 캐리어를 쳐다봤다.

안에는 가서 필요할 물건들이 들어있었고 그 옆에 놓인 스포츠백에는 급하게 필요한 물건들이 따로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가방 안에는 윤슬에게 가장 중요한 약들도 들어있었다.

그 날 이후로 탈 것에 약해진 윤슬은 탈 것을 타면은 심한 멀미를 하는 탓에 약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오는 걸로 끝나지만 심할 때는 구토에다가 두통 그리고 평형감각 상실 등의 이상현상을 느끼기도 했다.

그 탓에 윤슬은 이번 봉사일정이 고될 것이라고 느꼈다.

치료를 하면 나아질 수 있는 증상이라고 판정은 받았지만 아직까지 치료받지 않은 채로 방치했던 윤슬은 이번 일정이 끝난다면 치료를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윤슬에게 우르크라는 장소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추억이 깃든 곳이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은 더이상 함께할 수 없었다.

혼자가 되어버린 지금, 윤슬은 서랍 안에 고이 들어있을 물건을 떠올리고 감았던 눈을 느리게 떠서 고개만을 돌려 서랍을 쳐다봤다.

작은 서랍은 수납을 하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장식용이라는 느낌이었지만 그 서랍이 열리고 안에 들어있던 물건의 크기가 윤슬의 손안에 찰 정도로 작다는 점에서는 안성맞춤이라는 느낌이었다.

서랍에서 꺼낸 남색 주머니를 몇번 손 안에서 굴리던 윤슬은 서랍을 닫은 뒤 주머니를 서랍 위에 올려놓았고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다시금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다신 꺼낼 일 없을거라 생각했던 물건이었지만 다시금 그것을 손에 쥔 윤슬은 그것을 가져가기로 결심했다.

추억이 묻혀있는 그곳으로 추억의 물건을 들고, 윤슬은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결심이었지만 윤슬에게 만큼은 그 결심은 매우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윤슬의 결심은 누군가에게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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