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운저미
HoloX + Holo Council 망상 1
이 글은 HoloX + Holo Council 망상으로부터 기초한 글이며, 공식 설정과 많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그/그녀 구분 없이 ‘그’ 만을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몇번 째 반복되는지 모를 평온에서 불온함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카자마 이로하였다. 기척을 느끼자마자 검을 뽑아들었지만 검이 향하는 곳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있었던 건지도 불분명했다. 앞선 동작들이 1초도 되지 않아 이루어졌음에도 상대를 놓쳤다는 것이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 일 이후로 선의인지 악의인지 모를 찝찝한 기척을 남기는 횟수가 잦아져 일부러 모른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경호원은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간부에게 이를 상담하기로 했다.
" 루이 언니, 최근에 불온한 기척 같은 걸 느낀 바 있소이까? "
" 음... 그렇게까지 기척을 내는데 모르는 게 어렵지 않으려나. "
영수증을 확인하던 타카네 루이는 장바구니를 고쳐들며 대답했다. 입은 대답했으나 여전히 눈은 분주했다. 빠진 것 없이 샀는지 확인하고서야 그 눈은 경호원을 향했다.
" 카자마는 그것이 우리에게 악의를 품은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소이다. 짐작가는 것조차 없으니 판단하기 어렵구료. "
" 나도 그래. 아직 우리에게 뭘 바라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우리 말고는 집요하게 쫓는 대상도 없는 모양이고. "
두 사람의 걸음은 서서히 느려지더니 이윽고 어떤 문 앞에서 멈춰섰다.
' 비밀결사 HoloX '
타카네 루이는 이 팻말이 있는 시점에서 비밀결사 실격이란 말이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이윽고 따져도 소용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문고리를 돌려 열자 지하로 향하는 길지 않은 계단이 나타났고, 익숙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우리 왔어. "
" 도착했소이다! "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며 건넨 인삿말이 끝나기 무섭게 높은 톤의 따지는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 늦.는.다.고 ~ !! 이 몸이 배고파 죽는 꼴을 보고싶은 거냐?! "
방금까지 소파에 누워있었던 듯, 긴 머리가 부산했다. 총수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짜증을 부렸다.
" 사람은 그 정도로 안 죽는다니까. "
" 이 몸은 외계인이거든?! 특별규칙 적용 대상이거든? "
" 네이, 네이~ 그러시겠죠ㅋ "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청소부가 웃음 섞인 비아냥을 걸고 넘어지자, 경호원은 두 사람이 혹여 다투기 시작할까 서둘러 말을 꺼냈다.
" 두 사람 다 진정하시오. 루이 언니에게 상담할 것이 있어서 얘기하다보니 조금 늦었소이다. "
" 무슨 얘기?! 설마 코요를 빼놓고 사랑 얘기를 !? "
방금까지 책상에 있던 분홍색 귀가 쫑긋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 새 경호원의 눈앞까지 달려와서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경호원을 바라보고 있자, 부담스럽기 시작했는지 경호원은 한걸음 물러섰다.
" ...크흠, 그런 이야기는 아니오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 심각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 그렇소. "
"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해. 이로하가 상담해왔을 정도니까 한번 들어봐 주겠어? "
옆에 있던 루이를 통해 모두의 동의를 구한 카자마 이로하는 모두를 집중시키는 간부의 수완에 감탄하며 그간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의심을 모두에게 얘기했다.
" 아... 그거 말하는 거지? 검은 그림자같은… 덩어리? 아무튼 그거. 며칠 전부터 꾸준하게 쫓아오길래 한번 추격해서 단검을 던졌는데, 맞자마자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흩어졌어. “
짐작가는 게 있었던 듯, 클로에가 기억을 상기하며 말을 이었다.
” 생물이라기엔 뭐랄까… 손맛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
뭔가 이상했다. 간부도 경호원도 모습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음에도 청소부는 ‘형태’에 관한 말을 꺼냈다는 것이.
” 아니 잠깐, 잠깐. 클로에 공. 그것의 모습을 보았소이까? “
” 확실하게 본 건 아니고. 대충 모양 정도만 흐릿하게 봤어. “
기억을 쥐어짜내듯 인상을 찡그리던 클로에의 말을 끝으로, 그 자리의 모두는 미리 말을 맞추기라도 한듯 조용해졌다. 카자마 이로하, 사카마타 클로에의 동체시력과 타카네 루이의 눈으로도 좇을 수 없다는 것은 상대가 범상치 않은 무언가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모두의 생각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 아무래도 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 코요 생각도 그래.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의견이지? ”
“ 그렇소. ”
“ 응. “
사카마타의 말 이후로 부쩍 말이 없어진 채 생각에 빠진 총수를 제외하면 모두의 동의를 얻었기에, 이는 즉시 긴급회의의 안건이 되었다.
비밀결사의 구성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회의 준비를 이어나갔고 각자의 자리에 앉는 것으로 준비는 끝이 났다.
“ 그럼 지금부터, 정체불명의 추적자에 대한 회의를 열겠습니다. ”
루이가 노트북을 열며 회의 개시를 알리고, 코요리는 코코로를 통해 루이의 노트북 화면을 프로젝터로 띄웠다.
“ 우선 각자의 목격담이나 느꼈던 바를 좀 정리해서 모으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코요리부터 할까? ”
총수의 자리를 향하려던 루이의 손은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옆자리로 옮겨갔다.
” 정체불명의 적의라고 했지? 음… 나는 그런 건 최근에 느낀 적 없어. 라프의 경우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밖을 잘 나가지 않으니까 주로 활동범위가 밖인 사람들이 타겟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 “
루이는 노트북을 두드리다 잠깐 고민하더니 아까 클로에의 말을 듣고 떠올린 이상한 점을 짚었다.
” 클로에는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것처럼 묘사했지만, 이로하와 나는 그렇게 구체적인 형태는 보지 못했어. 오히려 불쾌한 ‘의지’에 가까웠다고 할까…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점은, 왜 클로에에게만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것처럼 보였냐는 거지. ”
“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나 이로하면 몰라도, 루이 언니가 이런 걸 놓쳤을 거라곤 생각 못하겠단 말이지~. ”
오래 앉아있어 찌뿌둥했는지 스트레칭을 하던 클로에가 루이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는 마저 떠올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아, 맞아. 칼을 맞춘 이후로 점점 더 형태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덩치가 조금 커진다거나 어떨 땐 인체의 한 부분처럼 보인 적도 있어서 좀 기분 나빴다고 할까… “
그 때, 생각을 마친 총수가 루이를 바라보자, 총수의 의도를 알아챈 루이는 헛기침으로 모두를 주목시켰다.
“ 이 건에 대해서는 혼자 따로 조금 알아보러 다니겠어. 그동안 홀록스의 관리는 루이에게 맡길 거다. ”
루이는 라프와 눈을 잠깐 맞추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같았으면 이런 말에 장난을 걸었을 터였지만,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총수에게 감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말을 마친 총수는 그 길로 계단을 올라 아지트를 나섰다. 총수다운 모습이 낯설어서였는지,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루이를 제외한 모두는 의아했다.
“ 총수에게 권한 일임도 받았으니, 본격적으로 이 일에 대해서 대책을 짜고자 해. “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할 것 같았는지 이로하가 질문해왔다.
“ 라프 공을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 것이오? 저런 적이 없었으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오만… ”
총수와 긴 기간을 함께 해온 간부에게는 당연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장면이었기에 당황하는 것도 . 루이 또한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로하의 질문에 기꺼이 대답했다.
" 옛날의 라프는 보통 저런 느낌이었어. 너희랑 함께하게 된 뒤로는 이런 모습이 처음이라… 아마 익숙한건 나 뿐일테지만,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저러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평소에 보던 거랑은 너무 달라서 연구 의지가 불타오르는걸… 역시 나중에 해부하게 해 달라고 해야… "
" 그래서 우리 계획은? "
클로에는 코요리의 나쁜 버릇이 나오자 질렸다는 듯 더 이어지지 않도록 얼른 말을 가로챘다.
" 음... 이런 건 어때? 우리가 지금 확인해야 하는 건 ... "
루이의 제안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플랜 세우기는 그 날 자정이 넘어서야 끝을 맺었다.
회의의 결론은 이랬다. 상대가 정체불명의 적이기에 적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여태 기척을 느낀 적이 있는 루이, 클로에, 이로하는 평소처럼 지내되 상대를 지켜보다 적의가 느껴지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다만 주변의 피해가 우려되거나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범주를 넘은 경우 즉시 자리를 이탈해 모두와 합류할 것을 약속하고 코요리의 경우는 혹시 모를 흔적을 찾아 분석하기 위해 상대를 한번 맞췄던 클로에의 나이프를 회수해 연구하기로 했다.
회의가 있고 나서 몇 주 후까지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평소대로의 일상에 조금 신경쓰이는 구석 하나가 더해졌을 뿐이었으니,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긴장감은 자각없이 느슨해져 갔지만 모두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이변은 딱 한 달째에 나타났다.
" 결과를 냈어. 모두 연구실로 모여줘."
갑작스런 방송이었지만 멤버들은 별 불평 없이 연구실로 모였다. 조금 지친 기색으로 모두의 앞에 선 코요리는 지난 한 달간 거의 연구에만 몰두했던 결과물을 내보였다. 웬만한 일에 지치지 않는 코요리가 이 정도로 티를 내는 건 정말 힘들었을 때 뿐이었기에 연구의 난이도를 짐작하게 했다.
" 우선... 이 자료를 봐줄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성과가 없는 것에 가까운데...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 있어. "
코요리가 손으로 코코로에게 지시하자 코코로가 코요리의 연구 자료를 전사했다. 허공에 전사된 홀로그램에는 클로에의 단검과 도표가 띄워져 있었다.
" 이 단검에서 뭔가를 추출해낸다는 것 자체가 엄청 힘든 작업이었어. 마치 단검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된 것처럼 말이야. 같은 실험을 몇번이고 진행했는데 실험 결과가 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바뀌더라구. 그리고 진행할수록 아무것도 추출되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고... 나는 이걸로 단검에 남은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걸 알아냈어. 그대로 실험을 진행했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 얻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서 곧바로 상태 고정 작업을 시작했어. "
코요리가 코코로를 곁눈질하자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 상태 고정을 하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어. 마요네즈를 한 박스나 비울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지... "
마지막 문장을 듣고 모두의 집중력이 팟, 하고 흩어졌다.
" ... 그 정보 필요없지 않아? "
" 중요하거든! 마요네즈의 마부터 즈까지 다 중요하거든! 특히 한 박스나 비웠다는 건 "
클로에가 코요리의 역린을 건드렸다. 혹여 티격태격하다 연구내용의 본질을 밤이 다 되어서야 듣게 될까봐 이로하는 말꼬리를 가로챘다.
" 코요리 공이 마요네즈를 그 정도로 먹었다는 건 보통이 아닌 연구였다는 이야기이오. 클로에 공. 코요리 공, 혹시 그 다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소이까? "
루이가 엄지를 이로하에게 척, 내보였다. 이로하가 나서지 않았어도 아마 루이가 간부로써 개입했겠지만, 수고를 덜어줘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 물론! 역시 알아주는 건 이로하 뿐이라니까! 엣헴. 아무튼, 이 숫자를 봐줘. "
코요리가 가리킨 홀로그램의 구석에는 빨간 글씨로 99.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 이 형체는 아직 정체 불명이야. 하지만 구성 성분은 점점 쿠로땅을 확실히 닮아가고 있었어. 솔직히 이 결과도 다시 실험하면 변동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코요가 내린 결론은 이래. 이 물체는 우리를 멀리서 관찰하고 때로는 도발하면서까지 우리에 대한 '데이터'를 얻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끝은 아마도... "
" ...우리 그 자체,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겠네. "
코요리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번 더 소리높여 경고했다.
"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로 위험한 물체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누가 우리를 겨냥했는지도,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도 몰라. 본인일수도 있는 수상한 비밀단체의 멤버가 밖을 돌아다니며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닌다, 가 가능성이 0이 아니게 되었어. HoloX의 연구원으로써, 지금 당장 이 물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걸 추천해. "
코요리의 경고를 귀에 담으며 간부는 생각에 빠졌다. 우리 HoloX의 목적은 에덴의 별을 손에 넣는 것. 결코 이 별의 것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다. 라프는 이 별의 침략에 무력을 내세우지 않았어. 총수의 결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프는, 총수는 그런 존재다. 루이는 총수가 부재인 지금, 간부로써 총수가 했을 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 코요리, 수고했어. 조금 쉬러 가도록 해. 남은 회의는 우리 셋이서 "
" 아니, 넷이다. 이 몸을 왜 빼는 거냐? "
허공에서 말이 들린 순간, 테이블 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노이즈가 생기더니 총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 라플라스 ...? "
아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 이 존재는 라플라스 다크니스가, 우리의 총수가 아니다. 총수의 껍데기를 쓴 무언가다.
상대를 봄과 동시에 네 사람은 망설임 없이 전투에 진입했다. 코요리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아지트의 방범 장치를 이용해 주변에 방벽을 세웠다. 클로에의 단검은 정확히 급소에 꽂히고, 이로하의 챠키마루는 깔끔하게 목을 베어냈다. 루이의 호크아이는 전력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있었다.
" 훌륭한 연계다. "
베는 느낌이 없다. 클로에가 검은 그림자에게 칼을 맞췄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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