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ily Ever After?

Happily Ever After? (1)

배세진 NCP 드림 할로윈 기념 AU

271 by hampun

발걸음에 스치는 흰 가운이 부드럽게 좌우로 흔들린다. 세진은 연구소 안을 천천히 걸었다. 층고가 높은 연구소에서는 세진이 걷는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창문 밖에서 스며든 빛은 연구소의 어둠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세진의 시선은 무언가를 찾는 듯했으나 동시에 아무것도 찾지 않는 듯했다.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다는 듯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무심하게 훑어봤다.

세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가장 구석에 위치한 방 앞에서 몇 초 정도 가만히 있었다. 그 몇 초 후에는 평범하게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주기가 일정한 노크 소리. 세진은 방 너머의 반응을 기다렸다.

손목의 시계를 한 번 확인한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커튼을 모두 걷어둔 방은 연구소의 복도보다 더 밝았고, 세진의 눈에 들어온 존재는 역광 아래 홀로 어두웠다. 인간의 형상. 그 누구도 아닌 세진만의 작품.

“…….”

“…….”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세진의 시선은 인간의 모습을 한 그 존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을 견디다 못한 존재는 그제서야 입을 뗐다.

“…왜?”

단 한 음절뿐이었음에도 세진은 미소지었다.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세진 역시 단 한마디만을 말했다.

“따라와.”

소현은 그날, 세상의 빛을 처음 마주했다.


Happily Ever After?


세진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했다. 하나의 공식처럼, 원리처럼, 규칙처럼 이해를 했을 뿐이다. 그에게 있어 감정은 밀어두면 밀리는 것에 불과했고, 비합리적인 소모품과도 같았다. 논리와 입증만이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 자신을 계속 따라오는 도중에 걷는 방법을 학습했고, 자신이 미리 주입한 신경 구조 산식 덕분인지 의사소통에도 별다른 부족함이 없었다. 왜인지 내내 눈치만 보고 있긴 한데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 편이 다루기는 더 쉬우니까. 자기 주장이 강할 필요는 없다. 세진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결과물’이므로. 그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훌륭한지에 대한 것은 그가 사회에 보급되었을 때 다루어도 충분했다.

세진은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확신했다. 세상은 자신의 승리라고.

소현은 세진이 그러했듯, 가만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밝은 그의 눈동자, 자신이 무엇을 하든 “그래.” 하고 반응하는 것까지.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서히 활동범위를 늘려갔다. 처음에는 방 안을 돌아다녔고, 방 안에 놓인 물건을 옮겨도 봤다. 세진은 소현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소현은 머릿속에 세진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방임주의. 방 밖을 벗어나 연구소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우연히 세진을 마주쳤을 때에는 깜짝 놀라 발을 헛디뎠다. 세진은 그런 소현을 붙잡아 자신의 서재로 데려갔다.

“연구소의 지도야.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

“그럼 세진이는?”

“나는 주로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에 있어. 늦은 밤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괜찮아.”

소현은 생각했다. ‘찾아와도 좋다’는 건, 내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럼 나는 세진이 있지 않은 곳에 가도 좋다는 의미겠지. “그래.” 세진에게는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진이 나를 만들었으니까.

세진은 그런 소현을 보며 머릿속에 그에 대한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다.

자율성, 독립성.


세진은 검지손가락을 살짝 굽혀 자신의 아랫입술에 대었다. 책상 위에는 소현에 대한 연구 일지가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예상 밖의 결과였다.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생명체는 의외로 변수가 많았다. 단순한 프로토타입이긴 하지만 이리 되어서는 안 됐다. 누군가는 소현을 보고 ‘프로토타입의 성공’이라고 칭할지도 모르나, 이건 세진의 계획이 아니었으므로 의미가 없었다.

소현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왜? 어째서. 나의 관리 아래에서 자랐다면 나와 비슷한 성향을 띠는 것이 옳다. 그가 원한 것도 ‘자신과 비슷한 인간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인간과는 구분되는 기질’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진짜 인간’의 대체물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순간 자신-인간-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소현이 자신처럼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자란다면, 그 자체로 세진의 삶에 녹아든 불가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소현은 자신이 무엇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세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소현의 질문은 연구에 대한 실패를 의미했다.

소현과 함께한 지 수 개월이 지났다. 소현은 수시로 세진에게 ‘질문했다’. 아동•청소년 수준의 단순한 호기심부터 시작해서 세진 자신의 분야에 대한 물음까지 누가 보면 아주 우등생이라 할 법한 성장이었다. 그러나 세진은 더 이상 소현에게 답을 줄 수 없었다. 세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새로운 계획이 그려지고 있었고, 소현은 단지 그를 위한 초석에 불과하는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그는 소현이 점차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단순히 그가 인간의 사춘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일탈이 아닌 소현의 가치관 문제였기 때문에.

이는 세진의 연구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음을 뜻했다.


소현이 도주했다.


세진은 소현의 빈 방을 한 번 쳐다보고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을 마주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현의 도주는 세진의 계산 범위 안의 일이었다.

세진은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소현의 연구 일지를 집어들었다.

클립보드에는 소현이 쓰고 간 쪽지가 붙어있다.

세진은 그의 쪽지를 읽지도 않고 책상 어딘가로 그것을 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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