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ily Ever After? (2)
배세진 NCP 드림 할로윈 기념 AU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존재가 세상의 빛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세진은 두 번째 창조물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창조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은 듯했다. 그는 소현과 달리 완벽하게 세진의 목적에 부합하는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세진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걸맞은 존재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창조물은 소현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였다. 창조물은 세진의 요구에 군말 없이 따랐고, 세진이 원하는-예상하는- 반응을 보였다. 비로소 통제 가능한 ‘인간이 아닌 인간’을 마주한 세진은 그의 존재에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낀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애착. 오래된 실험 도구에 대한 애정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그것이 흔히들 예상하는 인간적인 감정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세진은 그만의 방식으로 창조물에 대한 ‘나름의’ 친밀감을 형성했다.
세진의 연구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성과는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한편으론 인륜을 저버렸다며 그를 비판하는 이들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런 반응을 거뜬히 넘어버릴 만큼 인류사의 한 획을 긋는 결과를 보임으로써 그는 칭송받았다.
이거지. 세진은 읊조렸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고, 옳았기에 이런 반응이 도출된 것이며, 그 증명은 제 옆에 있는 창조물이 대신할 것이다.
“만족해?” 창조물이 입을 열었다.
이런 말동무는 언제든 환영이야.
“당연하지.” 세진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Happily Ever After?
세진은 그날 소현의 연구 일지를 다시 꺼내들었다. 책장에는 어느덧 후발 주자의 연구일지가 더 많아졌다. 소현의 연구일지는 창조물의 것에 비하면 훨씬 간소해보였다.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다르지 않은데도. 세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소현이라는 처분 대상이 그림자처럼 남아있었다. 회수하지 못해서? 아니면, 내가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을 남겨서? 모든 정답을 찾아냈음에도 소현이라는 오답을 처리하지 못해서?
소현은 도주한 이래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지내면서 배워온 것들을 뒤로 미루고 인간들 속에 부대껴 보편적인 인간의 방식을 습득했다. 어렴풋이나마 과거의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정체성을 깨달은 그였지만, 자신이 세진의 실패작으로 간주된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했다. 그가 원했던 건 결국 지금의 내가 아닌 것인가? 꽤 오랫동안 세진을 봐왔다 여긴 소현은 여전히 세진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진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화가 났다. 도망친 자신을 붙잡지도 않았고, 찾지도 않았으며 수 년간 방치했기 때문이다. 거두는 것까지가 세진의 일이 아니던가. 자신을 잊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자신을 흉내내는 두 번째의 자신을 보자 세진을 찾아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졌다. 나는, 내가, 나를… 만들어지지 못한 문장의 화살은 모두 세진을 향했다. 두 번째의 나는 너의 마음에 들었어? 너의 친구가 될 수 있었어?
아마도 세진은 이렇게 답하겠지.
“그걸 왜 궁금해 해?”
연구소는 여전히 조용했다. 서늘한 공기는 마치 그의 눈빛과도 같아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과거로 돌아온 듯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이 연구소만은 그대로인 듯했다. 소현은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발짝에 과거를 회상하고, 두 발짝에 세진과의 대화를 떠올렸고, 세 발짝에는 참지 않고 쏟아낸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네 발짝에는, 다섯 발짝에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으며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어느 것들보다도, 소현이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세진이 답하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답을 찾았는데 너는 어때. 너에게 나는 무엇이야?
오늘은 그 답을 꼭 듣고 마리라.
소현은 머릿속의 지도를 꺼내들었다. 어느 날 세진이 쥐어준 연구소의 구조도.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에 주로 있으니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 세진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의 난 이 연구소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세상이 연구소인 줄 알았는데. 소현은 세진의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이 시간에는 서재에 있을 시간이기 때문에… 그의 일과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의 서재에 다다랐을 때,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역시 여기에 있구나. 차가운 빛을 자아내는 조명이 살짝 흔들린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문이 안쪽에서 벌컥 열렸다.
소현의 시선은 그대로 아래에 머물러있었다. 갑자기 열린 문에 반응할 틈도 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에 모든 사고가 멈추었다.
세진의 두 번째 창조물이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커튼을 모두 걷은 세진의 서재는 자신이 서있는 연구소의 복도보다 밝았다. 희미한 빛이 그의 방을 비춘다. 그에 대비되게, 세진은 역광을 오롯이 맞아 어두운 덩어리로 보였다.
어둠 속에서 세진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세진은 천천히 자신의 창조물의 무너진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소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체 왜?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
그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소현은 뒷걸음질 쳤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그의 시선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무감한 눈빛은 아니었다. 어느 날 마주했던 눈빛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마치….
자신이 예측한 결과가 현실이 되었을 때의 희열.
“돌아왔네.”
세진이 소현에게 건넨, 두 번째의 첫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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