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봄이 와도 되는가.
철님 리퀘
w. 녹
평소와는 다르게 아침부터 준비가 부산스러웠다. 늦잠을 잔 건 아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아주 이른 시간부터 입고 나갈 옷가지들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문제는 서동재라는 남자가 아무리 섬세하다고 해도 삼십 분이 넘도록 넥타이와 카라핀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어이없다 못해 헛웃음까지 자아졌다. 그렇지만 별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날 유독 마음에 드는 것을 덥썩 집어서 별 생각없이 하고 나갔을 것들을 신중하게 고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제 어린 애인이 제 취향을 썩 달가워 하지 않는 듯 해서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골라보려 무딘 애를 쓰고 있던 셈이다. 그렇지만 너무 밋밋하고 평범해서 재미가 없는데. 살풋 찡그려진 미간을 펼 생각도 못하다가 뒤늦게 시계를 확인하고 서둘러서 넥타이를 하나 집었다. 오늘도 혼나면 어쩌나. 생각은 그렇게 해도 입가에 자연스레 웃음이 번졌다.
검사 일을 하는 것 치고는 드물게 오후 일정이 비었다. 정확히는 비우기 위해서 바로 전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런건 사소하다. 평소라면 비어버린 시간에 지검에 붙어서 뭔가 일이 없을지 뒤집어 엎고 다녔겠지만 그것도 예전의 일이 됐다. 적어도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게 됐다. 오후로 막 접어들었을 시간에 자켓을 챙기고 지검 건물을 나서는 발걸음이 묘하게 들떴다. 알아보는 이들은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꼈으나 이제는 적응했다. 그도 그럴게 어린 애인 자랑을 얼마나 하며 또 얼마나 아끼고, 만나러 갈 때마다 신이 나 하는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간첩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검 건물 코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 움켜쥐고 시간을 확인하는 김철의 손이 불긋하게 물들어 있었다. 지검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지, 그건 또 시선이 쏠린다고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장갑을 사줘야 하나. 괜히 마음이 쓰여서 성큼성큼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두터운 외투에 자신이 사준 목도리는 꼼꼼하게 잘 둘러서 원래도 예뻤지만 괜히 기특하고 더 예뻐보였다.
"검사님! 벌써 나오셨어요?"
"네가 이렇게 기다리는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여유란 여유를 다 부리면서 나오냐? 코 빨간 것 봐. 감기 걸리는 거 아냐?"
"감기 걸리기는요. 절 어떻게 보시고요. 안 아프고 튼튼하니까 걱정 마세요."
바보처럼 헤죽 웃어버리는 모습에 새삼스럽게 가슴 한 구석이 간질 거리면서도 무겁게 짓누르는 게 느껴진다. 이 어린 애를, 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데다가 아직 그가 자랑하고 다닐 구석도 없을 만큼 이룬 게 없는 자신으로 괜찮은 걸까. 어딜 가서 그럴듯한 대학을 나온 것들보다 모자란 것이 없다고 스스로 늘 생각하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얻어낸 것이 없으니 얘기가 달라진다. 입 안이 써져서 표정이 굳어지니 오밀조밀 예쁘게 생긴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검사님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또 누가 괴롭혀요?"
"응? 아냐. 누가 날 괴롭힌다고 그래."
믿지 못하겠단 얼굴로 동그란 뺨이 찐빵처럼 부풀어버리니 자신도 모르게 얼굴 표정 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네. 언제는 내가 욕심이 없던 적이 있던가. 이미 네가 없으면 안되게 됐다. 무겁게 짓눌리던 마음이 네 얼굴을 보고 단숨에 가벼워지는 걸 느꼈는데, 내가 이제 와서 어떻게. 추위에 발갛게 된 그의 양 뺨을 양 손으로 덮어 문질렀다. 나도 네가 없으면 안되지만 당장 자신이 없으면 장갑을 끼지도, 추위에 얼어버린 뺨을 녹여줄 손도 없다. 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두고.
"아무것도 아냐. 우리 철이 보니까 까먹었지 뭐야. 따뜻하게 국밥이나 먹으러 갈까?"
"다 먹고 붕어빵도 먹어도 돼요?"
"오늘은 찐빵 먹고 싶은데. 붕어빵 먹을까?"
"그럼 찐빵 먹어요. 저 찐빵도 좋아해요."
부제. 네가 없는 일상은 이미 일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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