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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하려 열어둔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곱게 내려앉았다. 겸사겸사 같이 내려앉은 먼지를 후 불며 유시영은 말갛게 웃었다.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햇살은 따사로우니 이런 날 어디 놀러 가면 딱 기분 좋을 텐데.

 

“...출근하기 싫다.”

 

일하는 만큼 벌지 못하는 이 시대의 불쌍한 노동자 모두가 화창한 날씨를 보며 할 생각을 한숨과 함께 입으로 뱉은 그녀는 다 낡아빠진 가방을 챙겼다. 아무리 출근하기 싫다지만 직원 유시영이 사장 유시영과 나는 나와 대화한다를 시전하며 극적인 타결 뒤 휴식을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당장 월세만 해도 얼만지, 그놈의 가게 월세 때문에 가방 하나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고등학생 때 큰마음 먹고 산 가방은 그녀가 서른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 쓰는데도 망가진 곳 하나 없이 제 할 일을 잘해주고 있었지만, 세월이 세월인 만큼 낡은 티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냥 들고 다니기만 해도 사람들이 너 가방 안 바꾸냐는 말을 수시로 해댈 정도였으나 돈이 없는데 어떡하겠는가.

 

예전에 유행하던 만화의 곰돌이 캐릭터가 제 위용을 뽐내는 디자인은 한숨이 절로 튀어나올 만큼 촌스러웠고 색도 군데군데 빠져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방 입구에 삐죽이며 튀어나온 기이하리만치 알록달록한 색의 허브들이 시선을 분산시켜 주곤 했기에 그녀는 어쨌든 그 낡은 가방을 애용할 수 있었다.

 

온갖 색깔의 허브와, 포션 재료로 쓰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마감을 거친 몬스터 부산물이 묵직하게 들어찬 촌스러운 가방은 외견은 둘째치고 막 들고 다니기에는 정말 편했기에 유시영은 감히 자신과 십여 년이나 동고동락해 온 친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는 무도한 생각을 할 수가─ 역시, 없지는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바꿀까.’

 

프린팅 부분이 하도 너덜거려서 가방의 곰돌이는 곰돌이 캐릭터라기보단 곰돌이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원래는 완벽하게 동그랬을 눈 반쪽이 벗겨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변한 곰돌이를 똑같이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던 유시영은 이내 무의미한 눈싸움을 그만두고 등에 멘 가방만큼이나 낡아빠진 철문을 밀고 나섰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곧 여름이라서일까, 하루하루 더 푸르러지는 하늘을 무감각한 눈으로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은 서울 E 구역 비취 숲 던전 거리의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성한 풀이 자란 흙바닥과 관리를 하다 만 아스팔트 바닥이 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길거리를 십오분쯤 쭉 따라 걷다 보면 통일성 없게 쌓아 올려진 가게들이 잔뜩 모인 상가가 나왔다. 유시영의 가게는 그 상가 한구석에 있었다.

 

크기 자체는 작지만, 접근성이 크게 나쁘진 않은, 딱 혼자 하기 편한 그런 가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하기 시작해 거의 10년을 아끼고 모아 차린 그녀의 가게는 고맙게도 최근 단골이 늘어 점점 형편이 피고 있었다.

 

“유 사장, 지금 출근해?”

 

가게 열쇠를 꺼내고 있는데 곰살가운 성격의 강 씨가 반갑게 말을 건넸다. 그는 그녀의 포션 가게 바로 앞 건물에서 일하는 넉넉한 풍채를 가진 중년 사내였는데, 팍팍한 던전 거리의 여느 사람답지 않게 풍채만큼이나 인상도 인품도 좋은 사람이었다.

 

이웃의 친절한 인사가 출근이라는 고난 때문에 우울하던 유시영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게 했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꾸벅이며 강 씨에게 마주 인사했다.

 

“예에. 아저씨는 오늘 좀 일찍 나오셨네요?”

“으응, 강서 길드에서 오늘 잔잔바리 좀 푼다고 하길래 지금부터 가 보려구. 유 사장은 안 가봐도 되구?”

“저희 가게는 아직 부족한 게 없네요.”

“그래? 그래도 한번 가 보지. 오늘은 그 누구냐, KS 길드 이거도 온다던데.”

 

강 씨가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평생을 몸 쓰는 일만 해 온 그는 가끔 언어보다는 몸동작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었기에 유시영이 알아서 느낌으로 잘 알아들어야 하는 일도 제법 있었다. 처음에야 소통이 안 돼 버벅거리기도 했으나 그걸 1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는 대충 척하면 척이었다.

 

“차성운이요?”

“어어, 그래! 그 친구. 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좋아하던데. 공략 방송인가 뭔가, 테레비 말구 휴대전화로 보는 그거. 유 사장은 그거에 관심 없구?”

“아뇨, 저는 좀.”

 

유시영이 손사래를 쳤다. 차성운이 나오는 KS 길드의 스트리밍은 꽤 자주 보는 편이었지만 그녀는 화면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하긴, 유 사장 요즘 젊은 친구답지 않게 그런 거 관심 없어 보이기는 했어.”

“어우 아저씨, 저도 이제 서른하나에요. 어디 가서 젊다고 그러면 진짜 젊은 애들이 놀려.”

“유 사장 정도면 젊지 뭘!”

강 씨가 껄껄 웃었다. 그는 그래도 한번 가 보는 게 좋다, 가서 요즘 던전 안쪽 상황 시장 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몇 번 더 함께 가기를 권했지만, 유시영의 거듭된 거절에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계속 마음이 쓰이는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다가 그녀의 빨리 가라는 손짓에 허허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전에 듣기로 유시영 나이대의 딸이 있었댔나, 아무튼 그런 사정이 있어서인지 홀로 분투하며 가게를 꾸려가는 그녀에게 퍽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강씨는 어리바리해서는 가게 내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여자가 상가 건물을 기웃거릴 때부터 가장 많이 신경 써주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었다. 오늘만 해도 던전으로 바로 가는 거면 그녀의 가게 방향으로 올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들러 알려주려고 온 것일 테지.

 

“나중에 커피라도 사드려야겠어.”

 

단 것을 좋아하시니 뭔가 달달한 커피로. 그녀는 언제 출근에 우울했냐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에 열쇠를 끼워서 맞췄다.

 

찰칵, 기분 좋은 소리가 나며 몇 가지 보안 마법이 풀렸다. 가볍게 문에 힘을 주어 열자, 풀냄새와 옅은 한약 냄새 비슷한 것이 유시영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건조한 허브들과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조합식을 찾아가며 만들어 낸 특제 포션들이 죽 들어찬 그녀만의 작은 가게는 이 던전 거리에 잘 동화되어 있었다. 무난하고 특색 없이, 하지만 반듯하게.

 

잠시 뿌듯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곧 가방을 두고 대걸레를 들었다. 크게 넓지도 않은 가게를 가볍게 쓸고 닦으며 손님맞이를 준비하는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청소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가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하루의 시작이었다.

 

***

비취 숲 던전 거리가 온통 시끌시끌하다.

 

KS 길드의 라이브 공략 방송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번 공략을 그 차성운과 함께하기 때문에 온통 난리인 거겠지.

 

“대단하긴 해.”

 

유시영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 비취 숲 던전 거리의 포션 장사는 아침저녁에 특히 바쁘고 점심에는 한산했다. 그래서 그녀는 차 한잔과 샌드위치를 두고 스트리밍까지 보며 여유롭게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공략 라이브는 대단했다. 온갖 함정을 기기묘묘한 동작과 스킬들로 피하고 부숴가며 쾌속 전진하는 KS 길드 에이스 파티의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채팅이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파티원들이 멋진 모습을 한 번 보여줄 때마다 그 사람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도배가 되는 것은 예사였다.

 

“우와.”

 

그중에 유독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름이 있었다.

 

-성운이형!!!

-형 여기!! 여기!! 헬프!!

 

작은 화면 안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외쳐댔다.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굵직한 나무 거인이 금방이라도 연약한 인간들을 짓눌려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나무 거인이 실제로 짓누른다고 해서 저 사람들의 괴상한 내구도를 생각하면 조금 다치기는 할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이 방송을 보는, 유시영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던전 안의 헌터들은 예전처럼 하루하루 목숨을 내놓고 살지 않았다. 큰 변화가 없는 던전 속 괴물들과 달리 헌터 업계의 전체적인 수준은 올랐고, 스킬을 보조해 주는 무기와 방어구의 수준 역시 같이 발전했으니까. 게다가 주먹구구식으로 던전을 배정하고 체급을 나누느라 났던 사고들도 지금에 와서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체급이 F급이었는데 스킬 포텐셜만 보고 S급으로 배정해 던전 안으로 보내 놓았다가 첫 공략에서 시체가 되어 나오는 그런 일은 어쩌다 한번 보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콘텐츠용으로 송출되는 방송일 경우, 어지간히 회사가 맛 간 게 아니라면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강화하는 게 당연했다. 이 공략 방송만 해도 화면에 잡히지 않는 힐러 계열 안전요원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KS 길드의 스트리밍 안에서 위험해 보이는 상황은 정말 위험해 ‘보이기만’하는 거였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이걸 얼마나 빠르게 공략하느냐였으니.

 

거기에, 이번 공략에는 ‘그 헌터’가 함께했다.

 

─피잉,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나무 거인이 조각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냥 원래 그런 나뭇조각이었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리고 그 위로 뛰어내린, 한 사람.

 

깔끔하게 정돈된 검은 머리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둥근 안경을 쓴,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였다. 손에 쥔 게 특색 없는 긴 검이 아니라 서류 가방이었다면 당장 서울 B 구역으로 출근하는 샐러리맨 사이에 섞여도 위화감이 없었을 것이다.

 

칼에 묻은 점액질을 털어 날리며 뒤를 도는 모습이 우아했다. 조금 전까지 KS 길드의 에이스들 둘을 막아섰던 나무 거인은, 이 샐러리맨 같은 모습의 남자 앞에서는 이쑤시개나 다름없었다.

 

-와, 성운이 형 지렸다.

-그런 말 쓰면 안 돼, 지호야.

-아, 맞지 깜빡했다. 성운이 캐리 쩐다라고 해야지.

-지호야...

 

남자는 팀 막내의 말투를 가지고 타박하다 카메라를 발견하곤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대외 활동이 없었던 그가 드디어 화면에 제대로 잡히자, 채팅창이 순간 멈출 정도로 난리가 났다. 채팅창에는 이제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차성운.

 

스물여덟. 작년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헌터’ 8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 그가 화면 너머로 인사했다.

 

“쟤는 눈이 더 나빠졌나….”

 

유시영.

 

서른하나. 이제 곧 서른둘이 되는 영세한 포션 가게 사장. 그녀는 어릴 적 옆집에 살았던 동생을 향해 화면 너머로 닿지 않을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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