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넝마주이.
기억의 시작은 쓰레기장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이를 가늠하면 5살 즈음, 건강한 아이는 아니었는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빌빌댔으며, 말도 서툴렀다. 살아남기에는 한 없이 나약한 존재, 어쩌면 자신을 이곳에 갖다버린 누군가가 바랐을 것처럼 오래 지나지 않아 쓰레기들과 함께 썩어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다.
하지만 나는 살았다. 쓰레기를 주워가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넝마주이라고 소개했다. 쓸만한 폐품들을 주워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 또한 쓰레기장에 버려진 쓰레기나 다름 없었으니 그가 주워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 나도 곧 팔아버릴 것이냐고 더듬더듬 물으니, 그는 한가로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사 갈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쓰레기장 한 구석의 판자집으로 데려와 통조림에 든 토마토 스프를 내어주었다. 오래되어 보였지만 소박하게 토마토 맛이 나는 스프였다.
그는 제법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선한 인물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최소한의 온정이 있고 동정심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 죽어가는 어린 개체가 쓰레기와 함께 썩어가도록 내버려두기엔 죄책감이 드는 정도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덕분에 나는 자주 굶고 종종 위험에 처하긴 해도 죽지는 않고 10년을 더 살았다.
넝마주의의 뒤를 쫓아다니니 자연스럽게 쓸만한 쓰레기와 가망없는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하늘 높이 쌓인 쓰레기의 산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는 요령을 배웠다. 어느 날은 드물게 상태가 괜찮은 책자 같은 것을 가져와 글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외에도 그가 알고 있는 구시대의 이야기나 다른 지역의 소문 같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는 쓰레기를 줍는 넝마주이가 아니라 선생님에 가까웠겠다.
그를 한 번이라도 선생님이라 불러보았다면 좋았을까. 그는 내가 16살이 되던 해에 전염병으로 죽었다. 다른 지역에 있다는 의원을 찾아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으나, 병이 전염될 것을 두려워한 이들이 들여보내주지 않고 쫓아내었다. 다시 거처로 돌아가기도 전에, 그는 힘이 다해 그 자리에서 영영 눈을 감았다.
그의 시체는 쓰레기장의 구석진 곳, 인적이 드물고 찾기 어려운 곳에 묻어두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쓰레기가 쏟아지는 곳에서 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 조금이라도 원형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훼손된 모습을 발견하면 우울해질 것 같아, 한 번도 묘를 찾지 않은 탓에 정말로 보존이 되어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팔고, 생활물자로 사용한다. 전 세대의 넝마주이가 죽었으니 자연스레 살아있는 쓰레기장의 주민이 넝마주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넝마주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 내 이전에도 넝마주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더 희미하게 잊혀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종종 눈을 감고 그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을 줍고, 가르치고, 돌보았던 넝마주이에 대해. 쓰레기장에서도 버리지 못한 인간성에 대해.
선생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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