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군가의 멸망은 누군가의 낙원.
글자를 배운 이후로는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아다가 닥치는대로 읽게 되었다. 세상에 남은 것이라곤 오염된 생물들과 썩은 땅, 그리고 사실상 멸종한 것이나 다름없는 인간들 뿐이었으니,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옛 문명에 대해 적힌 글들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장 바깥의 생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구시대의 문명이란 터무니없고 믿을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지만, 적어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이 쌓인 쓰레기나 쳐다보는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순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 날은 낡고 헌 책이 쓰레기장으로 잔뜩 밀려 들어왔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비슷했다. 구시대에는 많이들 믿었다는 종교의 성서와 닮은 것이었으나 뒤로 갈 수록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미래에 다가 올 멸망과 구원에 대해 주장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종교의 교리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척 봐도 이것이 사이비 종교의 예언서 따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언서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인간들, 계속 그 따위로 살면 신께서 노하시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니 똑바로 좀 살아라.’가 되겠다. 현시대와 크게 다를 것도 없이 구시대 역시도 온갖 범죄와 악행이 만연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이 변치 않고 계속 이대로 약탈과 착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면 곧 멸망이 다가올 것이고, 그를 피하기 위해서는 신의 사자인 교주를 따라 종교에 귀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오염되어 멸망했고, 그 멸망의 내용조차 예언서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이제 와서 그 종교에 믿음을 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보다도, 그들이 망상했던 멸망의 내용에 시선이 갔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멸망한 세상에는 빛이 가득할 것이라고 했다. 오로지 빛, 아무것도 없이 새하얀 공간. 인간도, 문명도, 선행도, 악행도, 모두 빛에 감싸여 사라지고 영원히 정체된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다. 문명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인간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며,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밝기만 한 세상이. 그 무엇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멈춰있으니 멸망이라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나는 그것이 제법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느낄 ‘내’가 없으니 괴로움도 행복도 없다. 배를 곯을 일도 없고, 위협을 당할 일도 없으며, 오염병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행복할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괴롭지도 않은 세상이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전쟁인 세상에, 이만하면 정말로……. 정말로 평화로운 세상이 아닌가? 불행은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배우기 어려운 삶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멈춰있다면. 겪은 적 없는 행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괴롭지 않은 상태를 짐작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기에.
현실을 잊고 싶을 때면 새하얀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 속에 묻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러면, 지금 직면한 문제고 불안 따위는 다 덧없게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누군가가 두려워했던 멸망은 누군가에게 낙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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