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를 쓴다.

3.

첫 살인

페이지 by 깨작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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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데콰이즈 티아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모험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날부터,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각오가 되어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힘겨웠던 전투 끝에 상대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원체 겁이 많은 성격으로 그 순간 역시 떨리는 팔과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죄책감이니 죄의식이니 하는 것들은 ‘살았다!’는 마음에 너무나도 쉽게 묻혀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그 날 밤, 잠자리에 들 즈음이 되자 그제서야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의뢰였고, 상대는 도적이었으며, 자신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봐줬더라면 죽는 것은 자신이었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자라며 배운 윤리와 통념이 묻는 것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없었을까?’

사람이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헛된 고민임을 자각하고 있다 한들 마음 한 켠에 자리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책한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낮엔 그나마 나았지만, 잠자리에 들어야 할 밤이 되면 도무지 그 상념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오늘도 결국 잠들지 못한 데콰이즈는, 여관 객실에서 벗어나 ‘물에 빠진 돌고래’ 주점으로 나왔다. 밤이 깊은 탓인지 몇 몇 술주정뱅이들이 정신을 놓고 테이블에 엎어져 있을 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적당히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찬 바람 좀 쐬었다고 죄책감이 도망갈리는 없었으므로, 그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그 쓴맛에 표정을 찌푸리기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웬일로 술을 다 마셔? 데콰이즈.”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데콰이즈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말을 건 인물도 따라 놀라며 다급하게 ‘미안해,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라며 사과하기 바빴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목소리의 주인을 살펴보니, 종종 의뢰를 함께 했던 모험가 프루스 라리마였다. 자신보다는 연차가 있는 미코테족 모험가로, 나름대로 노련한 사람이다.

“프루스 씨.”

“일 끝나고 쉬러 오는데 마침 보이길래 불러봤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데콰이즈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있으면 프루스가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프루스는 누가 보아도 고민이 있는 듯한 얼굴을 턱을 괸 채 들여다보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하고 짧게 한 마디를 남겼다. 데콰이즈는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한 채 맥주만 홀짝이며 마셨다.

자신의 고민이 아직 새내기 모험가이기 때문에 갖는 고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 모험가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음에도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평생을 심약하고 나약한, 지켜줘야 하는 짐덩이로 살아온 그였기에, 여전히 자신이 의지 없는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침묵이 오래고 이어진다. 데콰이즈가 맥주를 거의 다 마실 때까지도 프루스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냥 두기에는 염려가 되었던 것일까, 말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데콰이즈로서는 눈앞에 누구라도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혼자 남으면 자제하지 못하고 끝도 없이 자책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몇 모금 남지 않은 맥주를 한 번에 모두 들이키고는,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전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프루스는 별 다른 말 없이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았다.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상대는 무장한 도적이었고, 그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 늘 싸우며 살아가는 모험가가 아무도 해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알고 있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해요.”

한심하죠, 그런 말로 말을 맺으며 데콰이즈는 멋쩍게 웃었다. 프루스는 그런 그를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

“프루스 씨도요?”

“나는 있잖아, 모험가가 되기 전엔 검은장막 숲에서 밀렵을 했어. 나쁘다는 자각은 있었고, 그러니 갈등이 생겨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없다고 생각했어. 모험가가 되고 처음 해친 사람도 밀렵꾼이었고……. ‘나쁜 짓을 했으니까 죽어도 별 수 없어, 나도 그런 각오로 살아왔으니까 당신도 그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합리화를 했어.”

프루스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면서 마음이 불편한 거야. 나도 밀렵꾼이었으니까, 대충 그 치들 사정이라는 게 어떤지 알잖아. 그리다니아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마땅한 직업도 없이 채집과 사냥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고. 나름 머리 좀 굴려보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싶어서 선택한 게 그 짓인데, 그게 정말로 죽어 마땅한 짓인가, 하고. 계속 고민이 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냥 계속 힘들어했어.”

“네?”

“알지, 모험가로 살려면 사람을 해쳐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와. 그렇지만 사람인 이상 사람에 공감하고 죄악감을 가지는 것도 어쩔 수 없잖아.

그런데, 그게 나쁜가? 우리는 사람인데. 모험가가 결국 사람 사회에서 계속 섞여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동족을 해쳤다는 죄책감을 갖는 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봐. 일하는 데에 걸림돌은 좀 되겠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거잖아.

……사실, 아직도 일을 위해, 살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냥 확실한 건, 이 고민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거야. 힘들어도, 방해돼도.”

프루스는 짧게 웃는 소리를 냈다. 개운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괴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힘들어 해. 가끔 우는 소리도 좀 하고.”

데콰이즈는 명쾌한 답변에 따라 웃고 말았다. 아무것도 해결 된 것은 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마음을 해결할 수 없다면, 자신의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라면.

외면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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