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 Le Ciel

[Sample] DX3 1차 "믿는다는 것"

TRPG 더블크로스 1차 커플 기반 작업 | 샘플 사용 허가에 감사드립니다.

TRPG 더블크로스 1차 커플 기반 작업 | 공포 6,666자


 

너무나 무서운 악몽을 꿨어요.

어두운 지부의 구석에서 사랑하는 이는 몸을 떨며 말했다. 잠이 오지 않아 뭐라도 먹을까란 생각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를 발견하고 료헤이는 기절할 뻔했다. 케이토! 괜찮아?! 누가 봐도 괜찮지 않아 보이는 모습에 다가가 붙잡자 누구인지 확인하고 한 첫 마디가 그것이었다. 

그 꿈에서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어요. 네, 료헤이형이 좋아하는 그런 하늘 말이에요. 세상도 너무나 평화로웠어요. 바로 어제까지 쫓고 쫓으며 서로의 목숨을 뺏는 피비린내가 지워지질 않는 싸움도 없었고, 희망이라는 광기 아래 사람들이 스스로 불꽃을 꺼뜨릴 필요도 없는 그런 세상 말이에요. 오버드와 비오버드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상. 그런 꿈같은 세상.

밤하늘을 담은 성야의 인도자는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본 것을 고했다. 그의 감정을 숨기는 웃음마저도 철저하게 무너진 채 주먹을 꽉 쥔 손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케이토. 료헤이는 떨림이 멈추지 않는 케이토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그 주먹을 풀어냈다. 창백한 손은 너무 힘을 줘서 마치 죽은 자의 그것과 같은 색을 띄우고 있어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장에라도 케이토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손에 난 상처를 우선 치료하고 싶었음에도 그렇게 할 수 없던 것은 케이토의 눈에 담긴 그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도 같은 감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는 케이토는 이렇게 쉽게 감정을 꺼내두는 이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한 이였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자신조차도 케이토가 자신에게 품는 감정을 알아차리는데도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카야우치 료헤이는 가운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상처가 난 케이토의 손을 감싸고 그 위에 제 손을 얹으며 살짝 힘을 준다. 익숙한 손길 때문인지, 아니면 온도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그제야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그 손길이 조금은 잦아지고 거칠었던 호흡도 조금은 안정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형”

“응, 나 여기 있어.”

 

괜찮아, 나 여기있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네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카야우치 료헤이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어둠을 담은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지었다.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나는 여기 있을 거야. 케이토. 올곧고 다정한 목소리는 그가 가진 온도와 같았고 그제야 케이토는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불규칙하던 심장과 호흡이 조금씩 규칙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후에야 료헤이는 케이토에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물었다.

 

“싸움도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만 있는 세상이라..그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데 왜 그렇게 무서워했어. 케이토”

“그건...”

 

조금이나마 되돌아왔던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와 호흡이 조금씩 흐트러진다. 이렇게까지 감정의 갈무리가 안 되는 건가. 이건 정신의 문제에 가까웠다. 지금이라도 역시 그만 이야기하게 해야 할까. 아니, 그건 일시적인 해결법이라고 바로 답을 내렸다. 아마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케이토는 계속해서 악몽을 꿀 것이고 이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무엇보다 케이토가 견디질 못할 것이다.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육체의 고통은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바르고 덧나지 않도록 치료해 새 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보며 상태를 알 수 있지만, 정신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기에 더 섬세해야 했고 더 신경 써야야만 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숨길 수 있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숨기고 불안에 떠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료헤이는 조용히 케이토의 등을 다독였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안정제는 다른 사람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와 온기라고 그러지 않던가. 그 방법은 옳았는지 케이토의 흐트러졌던 숨소리가 다시금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왔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세계에 모두가 있었어요. 나나세, 아사우치, 나루미씨. 사도우씨..거기에 리바이어선 마저도 이 길고 긴 싸움 속에 함께 했던 이들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바라고 바랬던 것들이 그곳에 있던 것을 알았어요. 잘 지냈느냐고 물으면서 요즘은 뭐하냐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물으면서-, 그러다 깨달았어요. 무언가 비틀렸다는 걸요.

 

료헤이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모두가 있는 세상. 각자 잃어버리거나 혹은 포기할 수밖에 없던 평온했을 일상의 단편들이 케이토의 꿈속에 있었다.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해 누군가를 속이는 것이 아닌 친구들, 그리고 오빠와 함께 카페에 가거나 투닥거리던 나나세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아닌 캠퍼스의 교정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던 아사우치, 마탄이 아닌 사람을 감동시키는 노래를 부르던 나루미, 회사에서 야근을 밥먹듯이 시킨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야, 그래도 잠은 6시간은 자더라. 하면서 툴툴거리는 사도우. 거기에 같은 성을 쓸 수 없지만 소중한 혈육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는 리바이어선마저도 존재했다. 분명 기뻐해야 마땅할 꿈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평온을 인식하는 과정 속, 케이토는 그 꿈만 같던 일상 속에서 비틀림을 인식한 것이었다. 그 비틀림이란 건 무엇을 뜻하는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료헤이는 비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알 수 있었다. 설마. 그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케이토는 료헤이와 눈을 맞추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끄덕임은 마치 절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틀림은 종이에 베인 손과 같아요. 몰랐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 눈치챈 순간부터 쓰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에요. 네, 그걸 눈치챈 거에요. 저는. 그 세계에 모두가 있었지만, 단 한 명이 없었어요...형만이 그 일상 속에 없었어요. 단순히 자리를 비운 것도 아니었어요. 형은 어딨냐고 그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형을 기억해내지 못했어요. 처음부터 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하지만 가장 말이 안되는 게 뭔지 알아요?

 

문장이 이어져 나갈수록 눈이 마주쳤던 케이토의 고개는 점차 아래로 향하며 목소리마저도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필시 그 순간 느꼈던 절망과 슬픔의 무게일 것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절망과 슬픔이 그를 짓눌러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고 물먹은 솜처럼 그 무게를 불리고 불려 바닥에 처박은 것이다. 케이토. 료헤이의 부름에도 케이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의 품 안에서 몸을 떨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케이토의 모습은 너무나 작았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여서-

 

“..제가, 형을-”

 

문장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 뒷말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제가 형을 잊었다는 거에요. 분명 그 말이 나왔을 것이다. 카야우치 료헤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칸죠 케이토에게 악몽 그 이상의 것임을 가장 잘 알기에 료헤이는 더는 케이토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이 절망과도 같은 자학을 마냥 듣고 있을 수 없어서. 손을 뻗어 바닥을 향한 얼굴을 잡아 절 보게 했다. 형? 억지로 고개를 든 케이토의 얼굴에는 결국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료헤이의 행동에 그 눈에 당혹감이 어려있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말은 오해의 여지를 줄 뿐임을 알고 있었다. 영특한 이들에게 대화와 문장은 가장 좋은 표현의 수단이자 협상의 도구였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상처입히는 칼날이 되었을 때는 그것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고 카야우치 료헤이는 이럴 때 해야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해 케이토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올렸다.

말캉하면서도 까끌하다 못해 약간의 피의 비린 맛도 느껴졌다. 악몽 때문에 자신을 용납지 못하고 불안증세가 일어났던 것이리라. 필요한 것은 확신이었고 안정이었다. 료헤이는 뜯긴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흠칫, 떨리는 몸이 손에서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강압적이라 느끼지 않도록, 열리지 않는 입술 위에 몇 번이고 제 입술을 포개 케이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주면 고개를 살짝 비틀어 완전히 입술을 포갰다. 고른 치열을 훑어내고 데이면 뜨거울 것만 같은 온도의 살덩이가 입안을 부드럽게 건드린다. 입천장을 문지르고, 혀를 옭아매며 서로의 숨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타액이 섞여 삼켜졌다. 케이토의 호흡을 조절하며 료헤이는 몇 번이고 케이토와 입을 맞추고 제 숨을 넘겨주었다. 자신을 밀어내려는 그 손길을 무시하면서. 닿은 피부에 열이 오른다. 형, 료헤이형, 파르르 눈썹이 떨리며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손은 결국 료헤이의 옷자락을 있는 힘껏 쥐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키스가 이어질수록 케이토는 그를 잊었다는 죄악감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몸을 뒤로 내뺐고 료헤이는 용납지 않겠다는 듯 케이토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끝까지 따라갔다. 한껏 움츠렸던 등이 딱딱한 벽에 닿고 나서야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인지하고 나서야 두 사람 사이의 긴 은사가 끊어졌다.

 

“케이토”

“..흐으..형..”

“케이토, 나 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의 뺨을 부드럽게 쥐고 눈을 마주쳤다. 눈물은 멈췄지만 남은 눈물 자국이 안쓰러워 그것을 지우고 싶어서 흔적을 따라 손을 문질렀다. 눈물이 고인 눈, 키스로 붉어진 얼굴, 정돈되지 못한 호흡으로 절 바라보는 케이토의 모습에 료헤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케이토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괜찮다고 달래줘도 모자랄 판에 절 보는 케이토의 모습에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정말 글러 먹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케이토-, 그저 꿈일 뿐이야”

“...하지만, 형..”

“네가 날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널 잊지 않을 거니까 괜찮아. 둘 중 하나라도 기억한다면 우린 다시 서로 기억해낼 거야.”

“...내가, 정말 형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해요.”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

“꿈이라는 무의식 속에서도 날 기억해낸 네가, 날 기억하지 못 할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걸.”

 

카야우치 료헤이는 칸죠 케이토와 마주 보고 웃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칸죠 케이토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웃는 얼굴이었다. 믿음이 있기에 보일 수 있다. 믿을 수 있기에 저 웃음을 사랑한다. 그의 미소는 그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다음을 생각해낼 수 있는 희망이었고 다른 사람을 따르게 하는 그 미소였다. 케이토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세상이 당신이 괜찮다.라고 하는 말 한마디와 미소에 흔들림이 멈추고 굳건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두려운 가설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UGN에서 없어선 안 될 인물이었다. 자신이 꾼 악몽과는 다르게 현실은 언제 어디서 잘못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었다. 싸움과 다툼이 끊이질 않고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 전장을 누비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였다. 그리고 레니게이드는 활용에 따라 누군가의 기억조차 지울 수 있는 거대한 힘이기도 했다. 이런 세상에서 정말 형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다시 욱여넣었다. 이것마저 당신에게 부담이 될까 봐. 아니, 사실 이 상황 자체가 그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설킨다. 어떻게든 잘 풀어내려고 손을 뻗은 엉킨 실은 손을 대면 댈수록 엉망으로 꼬여서-

 

“..케이토, 그만 생각해”

“......”

“넌 너무 생각이 많아서 문제야.”

 

뭐, 그게 네 장점이기도 하지만. 료헤이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며 부정적인 생각으로 꼬여버린 생각의 실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 엉킨 곳을 풀어내고 괜찮다는 듯이 웃으며 이마를 맞대왔다.

 

“내 수호를 네게 준다고 했잖아. 네가 날 잊는다 하더라도, 네 곁에 있을거야. 네가 날 기억해낼 때까지. 내 수호를 받은 널 지키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거니까”

“..료헤이형”

“그러니까 케이토. 너 자신을 상처 주는 건 거기까지만 하자”

 

다정한 사람. 따뜻한 이. 그런 형을 내가 욕심내도 괜찮나요? 이미 욕심내고, 또 욕심내어 그의 수호를 받았으면서도 이 세계에 필요한 형을 내가 욕심내도 되는 걸까요. 칸죠 케이토는 그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철저하게 이기적이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학이 결국 그것을 꿈의 형태로 보인 것이다. 그 자학마저도 스스로 차단해 꿈속에서 그의 존재 자체를 잊도록.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다. 그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그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주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쳐낼지 선택할 수 없는 거울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칸죠 케이토의 심상 세계에서 거울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짙은 심연. 가장 깊고 끈적이면서도 부정적인 감정들. 이것들이야말로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1순위의 과제였다. 이 감정을 제대로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몇 번이고 꿈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고 절망할 미래를 구현화 할 것이고 그때마다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걱정을 끼칠 것이다. 그것은 싫었다. 해야할 일이 많은 그에게 그런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짐이 되려고 그의 수호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형”

 

케이토는 료헤이의 목에 손을 둘러 얼굴을 가까이했다. 아직도 작게 떨리는 몸의 떨림을 어떻게든 억눌렀다. 믿어야 했다. 언제나 그를 믿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혼자가 되는 미래가 두려워서, 당신을 잊어버릴 미래가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던 것을 마주 봐야만 했다. 당신이 날 떠나지 않을 것임을, 당신이 내게 준 수호를, 그 모든 것을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칸죠 케이토’ 자신을 믿어야만 했기에 케이토는 료헤이를 보며 그 어떤 꾸밈없는 얼굴로 입술을 맞댔다.

 

“...키스해주실래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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