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 Le Ciel

[Sample] DX3 1차 "연애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TRPG 더블크로스 1차 커플 기반 작업 | 샘플 사용 허가에 감사드립니다.

TRPG 더블크로스 1차 커플기반 작업 | 공포 5,400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필승서!]

평소라면 눈이 닿지도 않을 핑크빛의 책이 더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마 어린 칠드런 아가씨와 가진 티타임에서 나온 이야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늘의 오하아사 1위! 선생님을 위한 한마디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하네요!” 새로운 시도라. 흥미로운 눈으로 절 바라보는 나나세의 눈빛에는 그저 언제나처럼 가볍게 웃으며 글쎄요, 지금부터 생각해볼까요? 라고 뭉퉁그려 답하며 넘겼는데 말이지. 칸죠 케이토는 당시 상황을 잠시 추억하듯 잠시 되짚다가 옆에서 재잘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거 그렇게 잘 맞는다더라”

“정말?나도 남친한테 해볼까?”

“한 번 해보고 나한테도 알려줘”

“이 언니가 해보고 알려준다~”

 

그런 가벼운 대화 후 책을 들고 카운터로 향하는 손님들에게 시선이 한 번. 핑크빛의 책에 다시 시선이 멈췄다. 칸죠 케이토의 연애에 대한 지식은 대체로 누군가를 보고 답습한 것들이었고 그 대상은 당연하게도 카야우치 료헤이다. 애초에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 사람만을 담았고 타인의 연애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연애의 개념을 단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니 언젠가 밑바닥을 보이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그는 자신의 밑바닥이 보인다해도 그것마저 보이지 않게 차고 넘치는 사랑을 내려줄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홀로 내리붓는 사랑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다. 그것 역시 제 연인-아직도 이 단어는 조금 간질간질하다-을 보면서 느낀 것들이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던 칸죠 케이토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이 책을 사야할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고민할까, 이제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인데. 그리고 다시금 스쳐지나가는 목소리. 이것이 새로운 시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망설임없이 그 책을 집어들었다.

 

*

 

“케이토, 다녀왔어.”

 

F지부의 지부장이자 병원장, 카야우치 료헤이의 귀가시간이 새벽이 아닌 저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오늘은 UGN 지부장 미팅으로 조금 늦은 귀가라고 할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 연인을 위해 지나가는 길 예쁘게 핀 제라늄이 눈에 들어 서프라이즈를 목적으로 산 꽃을 등 뒤로 숨기며 귀가를 알렸다.

 

“다녀오셨어요, 형”

 

그리고 규칙적이고 단정한 걸음으로 절 맞이하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시선이 닿는 위치에서 반듯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서있는 연인이 있었다.

 

“응, 조금 늦었지? 미안해, 지부장들 미팅이 조금 늦게 끝나서-”

 

그렇게 말하며 구두를 벗고 현관으로 발을 들이는 카야우치 료헤이를 보던 칸죠 케이토는 책에서 본 것을 실천할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언제쯤이 좋을까. 애초에 이게 효과가 있을까? 라는 의문들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정도냐면, 그래 노이만으로 각성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 의문과 연산의 끝은 절 보며 맑게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무너졌다. 지난 20년동안 표현하지 못한 말들의 수를 헤어보자면 저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을 것을, 이제와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말을 못하고 그대로 또 다시 삼켜버리면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 없지않은가. 길고 긴 시간을 지나고 난 후에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한 발자국을 내디뎠는데 여기서 자신만 다시 그 자리에 서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의 입이 열렸다.

 

“...형...그..밥부터 드실래요? 아니면 목욕?..아니면- ”

“맞아, 오는 길에 제라늄이 예쁘게 피어서 사왔-”

“.....그......저는...”

 

툭, 카야우치 료헤이의 손에서 제라늄 꽃다발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이어진 정적. 놀라다 못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를 료헤이의 표정까지. 지독할정도로 상상하고 싶지 않던 상황이 그대로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아, 짧은 침음소리를 뱉은 칸죠 케이토의 심정을 말해보자면 괜한걸 했다-로 일축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런건 어울리는 사람이 해야지, 자신처럼 목석같은 사람이 하기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짓인걸. 노이만도 아니면서 이럴 때의 연산은 쓸데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 결과를 내놓는다. 부끄러움,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분명 그가 보기에 제 표정은 말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동시에 이 정적이 지독할 정도로 불편했다. 언제나 대화의 주축이 되는 것은 료헤이였다. 자신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을터인데 지금은 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한 편으로는 약간의 원망조차도 고개를 드밀기 시작한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줄 수 있는 말일텐데도 그것조차 해주지 않음에. 하지만 그것조차 익숙하게 속으로 씹어삼키기로 한다. 당신이니까, 내가 지독하게 사랑하는 당신이니까. 감정을 침잠시킨 후 고개를 들고 이제 웃으며 말하자. 농담이에요.

 

“...밥은 해놨어요. 금방 준비할테니 옷이랑 갈아입고 와요. 형”

 

언제나처럼 웃으며 빠르게 등을 돌렸다.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괜찮다고, 침잠시켰던 감정이 다시금 올라오는 것만 같아서, 이 추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탁, 강한 악력이 제 팔을 붙잡았다. 그 힘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다. 붙잡은 힘, 하지만 절 배려하듯 억지로 돌려세우지 않는 다정함. 형? 의문을 띄우며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이어지는 말에 칸죠 케이토는 잠시 숨이 막혔다.

 

“.....케이토, 그..”

“....”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카야우치 료헤이는 한참 생각하던 답을 입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그의 플랜이라고 한다면 귀가 후 인사하는 연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가볍게 포옹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인 후, 함께 식사하며 오늘 있었던 별거없을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준비한 케이토를 대신해 설거지 후 함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한 마디의 파괴력이란 실로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한마디에 머릿속에 구상하던 그 모든게 백짓장이 되어 새하얗게 되어버렸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떨어뜨려버린 꽃까지. 문제는 정신을 차렸을 때의 상황이었다. 귓불까지 새빨갛게 변한채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는 고개와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쥔 손, 그리고 무언가를 삼킨 듯한 얼굴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이라고 말하는 그 표정에 숨이 막혔다. 상처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제 연인은 자기표현을 숨기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숨기고 괜찮아요. 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 순간을 놓쳐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놀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나 담백한 표현을 하던 케이토의 새로운 변화였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한 그가 사랑스럽지 않을 리가. 그걸 말해줘야만 한다. 그는 알아야만 한다. 너의 그런 모습들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나는 너의 그 모습들이 너무나 좋다고. 한 번에 거리를 좁혀 새하얗게 질린 손을 잡아 당겨 절 보게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시야란. 남들보다 하얀 얼굴에 눈가와 뺨을 물들이는 붉은 빛이 더 선명했다. 이대로 심장이 터져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식사는..조금 있다가 해도 될까?”

“....”

 

아, 이어지는 말에 작은 탄성이 이어졌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고 침묵은 길지 않았다. 붙잡은 손을 조심히 움직여 손을 맞잡았다. 유독 닿은 자리가 불에 덴 듯 뜨거웠고 마주치는 시선에 심장이 남아나지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감정을 숨기려고 하면 이렇게 한순간에 거리를 좁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손을 잡아당기는, 그러면서도 저에게 허락을 구하듯 물어오는 그의 상냥함과 다정함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씩 당신이 내게 주는 이 온기들이 어쩔 수 없이 주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당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네게 주는 것은 타인에게 주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확신시킨다. 혼자 감정을 채울 때 몰랐던 것들이 함께 공유하면서부터 계속 당신이 긍정해주길 바라는 이 욕망을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나라도 괜찮나요? 그렇게 물으면 당신은 분명 무슨 질문이 그래, 케이토니까 당연한거야. 라고 대답해주겠지.

그리고 빈 손을 뻗어 뺨에 닿았고 마주치는 시선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자신에게 대답해준 사랑하는 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살짝 발돋움해 가볍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서 미소지었다. 그의 품에서 나던 레몬향은 언젠가부터 민트향이 나고 있었다.

 

“...국이 식겠네요.”

 

벽면에 비치는 두 개의 그림자가 하나가 되었고 이내 현관에 켜져있던 조명이 팟, 소리를 내며 꺼졌다.

 

*

 

“아!!!!!!!하지말라고요 좀!!!!!!!!!!!!!!”

 

다음 날, F지부에선 언제나처럼 다이치의 신경질이 담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건 지부장 카야우치 료헤이가 아끼는 칠드런을 향한 진한 애정표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유독, 평소보다 더 달라붙었다는게 조금 다른 것이었겠지만.

 

“뭐야, 오늘 지부장 왜 저렇게 뺀질뺀질해?”

“그래? 평소보다 기분좋아보이시는걸?”

“평소에도 하이했는데 오늘은 더 한 것 같아서. 내가 준 비타민 먹었나?”

“....렌야, 비타민에 뭐 넣었어?”

 

대답없이 뜻모를 웃음만을 짓는 동생을 보며 불안함을 이로감출 수가 없는 이나이였다. 그런 둘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 케이토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케이토선생님”

“지부장이 오늘따라 더 하이-한 것 같아서~뭐 잘못먹었나 하고.”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나이의 물음에 미소를 띄운 얼굴로 다이치를 껴안고서 오늘도 부족함 없는 칭찬과 애정을 표하는 연인을 보던 케이토는 그저 웃으며 글쎄요, 애정표현에 있어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표현해주는게 지부장이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실상 틀린 말도 아니어서 이내 납득한 얼굴을 한 이나이와 미묘한 얼굴로 저를 보는 렌야를 향해 웃어주고서 먼저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탁,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아 느릿하게 숨을 뱉으며 의자에 기댔다. 오늘 조금 힘들긴 하지만-..책상의 가장 아래, 마지막 서랍을 열어 어제 샀던 책을 꺼내들었다. 과할정도로 눈에 띄는 디자인의 핑크색의 책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필승서. 볼 때는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더 만족감이 높았다. 그러고보니 서점에 이 책 말고도 비슷한 책들이 꽤 있던 것 같은데, 다른 책들도 사서 해보는 것도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상 위에 놓인 제라늄 꽃이 든 화병을 바라보다 만족스럽게 눈을 감으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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