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카사네 유지로 대학AU
악몽을 꿨다, 그렇다고 해서 운다거나 놀랐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였으면 분명히 침대를 박차고 나가 누나의 침실에 찾아가 밤새도록 놀거나 부모님의 침실에 찾아가 부모님의 사이를 차지하고 잠을 청했을 텐데 성인이 된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지. 대학 생활로 스트레스가 쌓였나? 강도 높은 웨이트와 풀 조깅으로 스트레스는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스트레스는 풀어도 금방 쌓이는 법이라 자신도 별 수가 없었다. 안광 없는 붉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다. 하긴 요즘 생활을 보면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이상하지. 교수님들이 주시는 조별과제는 장대비처럼 쏟아지고, 조원들은 잘못 걸렸고, 거의 독박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 밤새 커피를 마셔야 했다. 이 자식들 이름을 다 빼버릴까 보다…. 이젠 커피를 마셔도 잠이 오는 지경인데, 팀플이 끝나려면 거의 2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발표까지만 잘 끝내면 되는데 이 조원들이 잘할 것 같지가 않다고. 혼자 해도 괜찮은 과제라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겠으나, 협동심을 기르라는 교수님의 말에 따라 전부 조별과제가 되었다. 온리 조별과제. 스트레스가 쌓이니 꿈자리도 뒤숭숭하다. 아, 미치겠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무시한 채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쉰다. 내가 왜 사범대에 갔을까, 조별과제 하나 못 하는 조원들이 교사가 된다고 판을 치는데….
“유지로, 깼어요?”
“아, 죄송해요. 깼어요?”
더 주무세요, 선배. 다시 침대에 누운 후 선배의 몸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등을 토닥인다. 차마 악몽을 꿨다고는 할 수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악몽을 꿨다고 하면 분명 걱정하실 테니까, 선배가 방의 온도며 잠자리를 다 살펴 주었는데도 악몽을 꾸니 그 노력에 보답하지 못하는 기분이다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사실 잠은 오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곤히 들려오는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본다. 아, 역시 잠이 안 오는데…. 협탁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와 밝기를 최대로 줄인 후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세 시. 휴대폰을 챙긴 채 선배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유지로, 어디 가요? 나지막한 목소리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잠이 안 와서요, 남은 과제만 하고 다시 올게요. 주무세요. 침대 근처에 놓여져 있던 담요를 챙긴 채 침실을 나서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PPT 만들고, 대본 짜고. 커피 머신을 켜 커피를 내릴까 고민했으나 소리가 너무 클 것 같아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테이블 앞에 앉았다. 노트북 켜고, PPT 제작 사이트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만들기 시작한다. 아, 벌써 하기 싫어. 꾸역꾸역 PPT를 만들었다. 마우스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이걸 다 해치우면 악몽도 안 꿀까? 생각하며 연신 마우스를 딸깍거린다. 일단 전부 뒷전으로 넘기고 잠이나 자고 싶은데, 대학생이 된 후 자는 시간이 훅 줄어들었다. 수강신청도 애매하게 실패해 식사 시간이 길지 않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운동도 겨우 하고 있고. 체력 덕분인지 신체적으로 죽겠다 싶은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PPT 만들고, 대본 짜고, 아침에 단톡방에 파일을 보내주면 내 할 일은 끝이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아, 짜증나. 사실 대본까지 짜 줘야 하나 싶지만 조별과제를 한다고 열린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PPT의 내용을 이해할 리 없고, 대본을 짤 수 있을 리 없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PPT는 다 완성해 가고, 대본도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슬슬 감이 잡히는 상태였다. 진짜 다 끝나가는구나, 나중에 푸딩 세 개 먹어야지. 창문을 보니 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 먹고 푸딩 먹어야겠다. 대본은 대충 쓰자, PPT 제작에 지친 나머지 대본에 신경을 기울일 힘도 없었다. 알아서 하라지.
“지금까지 과제 한 거예요?”
“아, 선배….”
언제 왔는지 거실로 나온 선배를 보자마자 눈에 안광이 돈다. 저 너무 짜증나요, 조원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를 끌어안는다. 아, 이 안정감….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선배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는다. 저런, 하는 목소리에 칭얼거리기만. 칭얼거릴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칭얼거리게 된다. 저…. 너무 힘들었는데 이따 푸딩 세 개 먹어도 돼요? 은근슬쩍 사심을 채워넣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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