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문학인

WHILE THE BIRDS SING ON TOP OF THE BLOSSOM BRANCH...

새들이 분홍빛 가지 위에서 재잘거리는 사이, 1화


MARILYN THEOBALT

마녀는 어느날 봄, 적당한 시간대가 된 때에 글라브리아의 번화한 도시를 찾았다. 시골에서만 한참 보던 버섯과 나무 이끼, 불그스름한 돌이나 녹빛 물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 곳. 잘 정렬된 바닥 돌이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채이면서도 흙먼지 하나 일렁이게 만들지 않는 장소. 그러니 마치 모든 도구와 사물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 놓인 곳이 바로 그 도시, 수도, 글라브리아의 꽃. 글라브였다. 지나갑니다. 실례할게요.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인 곳에서 제 존재감 알리고자 몸을 비집고 다니며 움직인다. 호텔에서 보낸 편지 중 답변이 온 것은 포스턴이라는 친구에게서였는데, ‘POSTON’ 중에서 ‘POST’라는 이름을 따서 포스트라고 나름대로 애칭까지 지어준 사이였다. 뭐. 이런 건 긴장되어서 떠오르는 나불나불 주절주절 생각이니 모쩌록 독자들은 마녀와 함께 몸을 떨며 이 새로운 공기를 만끽해주길 바란다.

고개 치켜들면 빽빽하게 빛 들어올 곳이 막힌 숲이나 훤히 뚫려 굴뚝에서 나오는 빵 연기나 뭉게뭉게 올라올 법한 장소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없고, 전해들은 것에 비해 도시는 더 시시하다. 걸음걸이마다 딱딱 소리가 나는 구두 같은 걸 신으며 신사인 척 지나가는 사람은 드물었고, 자세히 보면 모든 길목의 옆마다 널부러져 잠을 청하는 술주정뱅이나 실직자, 구두닦이 아이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년소녀의 주머니, 아가씨들의 괘씸한 시종이 훔친 보석 따윌 훔쳐가려고 보는 잽쌉쌉이들이 있었다. 잽쌉쌉이들- 이 발음 힘든 건 뭐냐고? 실제로 도시에서 이 도둑질 꼬마들이 자신들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아. 이건 또 어쩌다가 알게 됐냐면 기차 안에서 마주한 웬 아이가 잽쌉쌉이에게 아끼던 오팔 목걸이를 잃어버린 아이였는데, 그 옆에 있던 사람은 보호자가 아니라 베이비시터라고 하더라 카더라 어쩌구 저쩌구.

이리저리 지나간다. 바쁘디 바쁜 워커맨들은 노래 하나 흥얼거리지 않으며 도로를 지나친다. 흙벽돌 바닥이 타다닥 탁 소릴 내며 구르는 맛도 없다. 여기는 낯선 장소다. 마녀는 모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의 눈향기나 풀 향이 어렴풋이 나는 가방, 신발 끈, 혹은 정돈이 덜 된 머리카락과 두툼해보이는 주머니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걸음이 빨라진다. 잽쌉쌉이들이 쫓아올 것도 두려웠고, 결정적인 게 있다면 이 도시에선 도와달라는 외침이 도통 먹히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집에 다다른 마녀는 문을 두 번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누가봐도 사람 드물고 차가 쉬이 지나가지도 않으며, 노부부가 평화롭게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된 곳의 집값은 으레 비싸기 마련이라는 것을 마녀도 알고 있어서였다. 사실 포스턴은 정말 큰 신문사의 사람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시무시한 덩치를 보아하니 몸을 쓰는 직군… 잠깐. 그렇게까지 반사 신경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머리 안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있다 보면 문이 열린다. 우와, 여전히 덩치가 크구나!

“마릴린 테오발트… 그러니까, 마리. 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이죠, 포-스-트-턴!”

“포스트, 포스턴. 원한다면 페이퍼와 펜슬이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우선 들어오시죠. 날씨가 막 풀려서 더우셨을 겁니다.”

“제가 기차 타고 오면서 눈 이야기를 하는 꼬마들도 있었는데 말이죠.”

“글라브리아는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지만… 네, 그래도 길어서 계절이 다른 곳이 있으니깐요. 멘스터 부교(*북동부 쪽의 철로 된 다리) 위쪽 지역은 이제야 눈이 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짐은 여기다 둘게요! 누가봐도 제 자리 같네요. 그나저나 포스트, 완-전 집 잘 꾸미셨는데요? 역시 손재주 좋은 사람 답다니깐. 이 단 향은 또 뭔가요? 오, 세상에. 저기 방이 제가 쓸 곳인가요?”

“질문은 하나에 한 번만. 제 머리 셋업은 당신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답을 하자면, 이렇게 되겠지요.”

마녀는 포스트의 손동작을 지켜본다. 외투를 벗어달라고 요청을 한 그는 이를 고이 접어 소파의 한 켠에 올려다 두었다. 마치 마녀의 자리라고 안내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마녀 본인도 알아차리기 전에 조르르 가서 앉았다. 그러면 예정된 것인 것 마냥 폭신한 베개가 품으로 들어왔고, 마녀는 기꺼이 끌어 안았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상투적인 형태의 편안함을 제공해주웠다. 전체적으로 붉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가구와 은은한 노란빛 불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달큰한 향까지 나니, 여기가 일시적인 지상 낙원이 아닐까. 마녀는 그리 생각했다. 포스트는 우선 훤히 보이는 주방으로 가서 불을 달칵, 소리가 나게 껐다. 가스까지 꼼꼼하게 잠근 후 그는 주걱으로 거대한 냄비를 휘휘 저어두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방향과 향으로 추측하자니…

“딸기 잼이죠!”

“마가린을 양쪽 면에 바른 식빵에 갓 만들어진 따끈한 딸기잼을 발라, 꿀을 탄 시원한 우유와 함께 마실 예정입니다.”

“너무 배부르고 동그래지는 식단 아닌가요? 포스트는 당뇨 걱정 안 해요?”

“아직 그런 거 걱정할 나이 아닙니다.”

“글라브리아 국민의 평균 수명에 대해선 연구한 적 있구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1918년 기준으로 68살입니다.”

“틀렸어요. 1920년 최근 갱신된 연구 자료에 의하면 68세는 수도의 특정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였으며, 산간지역과 평균 나이를 비교해본 결과 최대 20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고 판단을 내리게 됐어요!”

“말인 즉슨?”

“포스턴은 이제 슬슬 먹는 걸 조심해야하는 나이란 말이죠.”

“하지만 잼은 맛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딱 철에 맞게 에르베던(*과일을 맛있게 배출하기로 유명한 지역)산 딸기로 만든 것인데도요.”

“잼은 맛없는 딸기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맛있는 딸기를 잼으로 만들면 얼마나 환상적이게 변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요.”


소파에 앉아 이젠 북실해진 베개-인형-여튼 쥐어뜯는 무언가 같은 것을 주물럭거리고 있던 마녀는,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휘말렸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제 짐이 있는 방향으로 척척 이동한다. 하지만 집의 주인이 마녀를 위해 제공하는 꿀을 탄-우유, 아니. 그런 당뇨 유발 음료가 아닌 수색이 분홍빛으로 예쁜 가향차와 두툼한 식빵 조각, 연기폴폴 나는 잼이 제공된 걸 보고 무력하게 식탁에 착석한다. 포스턴은 사람을 꾀어내는 것에 익숙하군요! 마녀는 외치며 식빵을 냉큼 입에 가져다 붙인다. 과찬입니다. 포스트는 예의 바르게 가슴팍 위에 손 올려 정중한 커트시를 선보인다.

“우선 저, 머무를 곳이 필요해요! 그래서 찾는 걸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여기서 머무르십시오. 저는 침대가 무려 두 개나 있는 사람입니다. 편지에 적힌 바와 같이… 저는 어차피 식사를 만들고 나가는 사람이니 식량 걱정을 할 것도 없습니다.”

“너무 환상적이고 좋은 조건이라 더 꿍꿍이를 유추하게 되어버려요! 어째서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건지 알려 줄 수 있으신가요?”

“저는 마리와 함께 호텔에서 지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 시간의 몇 배 만큼이나 되는 대가를 치룰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론 부족해요. 무엇보다 다음엔 뭐죠? 포스트가 자선사업에 흥미를 지니고 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날카롭습니다, 마릴린. 마리. 그렇지만 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히 여기는 사람일 뿐이에요. 내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는 사실에 그렇군요, 정도의 답을 곧바로 내뱉는 사람은 1900년대에서 찾기도 드물고요. 나도 날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질책하지 않는 사람도…”

“포스트는 정말 이름 답게 말이 길단 말이죠. 하지만 인정해요. 특수성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이를 반기는 곳에서 숨을 쉬고 싶겠죠. 네가 그 적합한 대상자였던 것이고요. 이해했어요. 그래서 방은 저 구석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방을 주실 건가요, 아니면 저 푹신한 소파? 사실 저 소파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 소파의 베개인지 쿠션인지 모를 것이 타격감 있게 손에 탁탁 잡혀서 좋거든요.”

“소파는 당연히 안 드립니다. 문이 닫힌 방, 저기 있지 않습니까. 저기가 안방인데, 저길 드리겠습니다. 제 짐이야 워낙 밖에 다 나와있고 대부분 다 회사에 처박힌 탓이 가져갈 것이 별로 없습니다. 마는, 마리는 이제 집도 구하고. 편지에 따르면 대학도 알아볼 생각 아니십니까. 분주해지고 짐이 많아질테지요. 나중에 뺄 때 짐 싸는 법을 도와드릴테니 편히 쓰셔도 괜찮습니다.”


이제 절반의 절반도 안 남은 식빵과 호호 불어 먹어야만 하는 달콤한 잼은 마녀의 전유물이 되어 양 뺨 가득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당뇨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란. 마녀 건너편의 포스트가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뭐. 실제론 마녀를 제대로 먹일 일주일 치 식단에 대해서나 고민하고 있었다.)

마녀는 짐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포스트와 말을 나누다가 툭, 데구르르. 하고 호텔에 남았던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다들 연락은 되고 있어요? 내겐 답이 온 편지 한 통 없었는데. 포스트가 가장 빨랐는데!”

“그야 저는 활자에 파묻혀 사는게 업인 기자이니깐요.”

“기자였어요? 무력집단의 일원이 아니라요? 헐.”

“마리야말로 숲 속의 마법을 부리는 마녀가 아니라 현대 과학으로 무장을 한 통계학자일 줄 몰랐는데.”

“이봐요, 포스트.”

“저도 산골 마을에서 살아본 적 있습니다. 뭐라 하지 마시죠.”

“저보다 많이요?”

“치사하게 나이를 가지고 승부하는군…”

이제 잼 나이프 끝에 남은 딸기 덩어리 까지 마녀가 핥아 먹은 뒤였다. 간식 제공 서비스는 어땠냐는 질문에 마녀는 당당하게 양 손을 쫙 펴서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표식을 제공했다. 비록 그 손가락 끝에 버터와 잼, 식빵 부스러기가 묻어있었지만 말이다. 뭐. 어떤 스코어판엔 체점자가 실수로 흘린 피넛버터가 발려있을 수도 있으니!

“뭐, 우선 저는 릴리랑 연락을 취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원을 하게 됐는데…”

“애샬이랑 포드 씨는요?”

“애샬 힐과는 놀랍게도 옆 회사 사이입니다. 글라브 수도에서 회사 모여있는 곳은 거기서 거기인데, 그 인근 담배 피는 구역에서 마주쳤습니다. 포드 청년과는 아직 연락이 닿고 있지 않아 찾아갈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잠깐. 포스트 담배 피워요?”

“요리를 갓 한 저의 손바닥에 맹세할지언데, 당신이 오기 2주일 전 부터 일시적인 금연 및 구강 세척과 방 환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디봐자. 그 말 지킬 수 있죠? 저 지금 방 문 열어요?”

“말괄량이 마리 같으니라고. 지금 손에 잼 묻었다는 건 알고 하는 겁니까?”

“당연하죠! 담배피우는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오려면 이 끈적거리는 걸 잡아야만 하는 거죠.”

“영악하군…”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