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윤대협이 안나오는 대협정환

 나는 바보같이 굴었다.

 

 우리 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나였고

 우리 관계를 정정한 것도 나였다.

 먼저 떠난 것도 나였다.

 

 

 

 정환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비행기 안에서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봤다.

그때 이 관계의 끝이 내 탓만은 아니라고 여겼다. 이륙하는 비행기 창으로

땅이 보였다. 내가 있던 땅과 네가 있을 땅이 그렇게 멀어졌다.

 

 모르는 언어,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것투성이에 떨어지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거짓말 않고 널 생각한 일은 일주일에 몇 번 되지 않았다. 그것마저 아주 잠깐,

자리를 잡아갈 때쯤 정환은 다시 그 날을 떠올렸다.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지. 

사람들이 붐비는 공항에서 그렇게 조용했던 건 우리뿐이었을지도 모르고

 

 “정말로 가는 거예요?”

 

 그 날 너는 침착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너는 침울해 있었던 거였지. 침착한 게 아니었다.

 

 “그래.”

 “그렇구나.”

 

 1분 정도 아니면 5분 정도 우리 사이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나마 이때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널 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바짝 들어 공항 천장을 보던 너, 그러다 고개를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너, 마지막엔 고개를 숙인 너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기억나지 않았다면 다른 건 몰라도 더 슬펐겠지.

 

 “정환이 형.”

 

 - 탑승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13시 45분 ━으로 가는 ━━항공

 

 다신 마주치지 않을 것처럼 시선을 돌리고 있던 너는 아주 짧게 이쪽을 쳐다봤다. 좀 더 시간이 길었더라면, 좀 더 내가…했더라면, 평소와 달리 빛나는 눈동자를 의심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제는 뒤늦은 후회에 불과했다.

 

 “잘가요. 형.”

 

 잘 지내라거나 아프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아니 그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헤어지잔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한 건 이 모든 게 자신의 허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불완전하게 벗겨진 허물을 들키고 싶지 않은 치기였다. 

 정환은 대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대학 진학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미래에서 대협과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둘은 어리고, 서툴러서…서로 상처 주기도 했으니까 점점 자신이 옆에 없는 윤대협을, 윤대협이 없는 자신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집 안에서 나온 유학 얘기는 정환에게 있어 해결책으로 보였다. 그래서 정환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관계의 유보를 말했다.

 

 윤대협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이건 가겠다고 통보하는 게 아닌지.

이정환도 윤대협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 멀리 보라고 더 나중을 생각하라고 말하자 윤대협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얼굴로 알겠다고 잠시 시간을 달라 했다.

그리고 그를 본 것이 출국 날이었다.

 

 그때의 정환은 관계의 유보가 아닌 관계의 끝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잡아주길 바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먼저 말했더라면 달랐을까? 넌 내 미련을 알았을까?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을지. 끝없이 부끄럽고 끝없이 슬퍼졌다. 그 날의 기억은 이제 정환의 허물로 남았다. 벗겨진 허물을 치우지도 못하고 낱낱이 보여줬다는 점이 그를 괴롭게 했다.

…여전히 좋아하는 게 미안해서,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도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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