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후기

쇼 머스트 고 온 네버 스탑

김치찌개와 김치전의 싸움

쇼 머스트 고 온 네버 스탑

<이 순간, 둘에게 생명을> 크레페 커미션 작업 후기


크레페에 해당 타입을 개장하고 가장 처음 신청해 주셨던 분께서 두 번째로 맡겨주신 작업이었습니다.

그땐 받은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던 글 연성을 바탕으로 장면을 구성했는데, 이번에는 CoC 시나리오의 개요를 자료로 받아서 그 세계관 속의 페어를 담아내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작업에서 두 인물 외에도 인물급의 중요도를 갖게 된 요소가 있었는데요. 바로 배경이었습니다.

공간적 배경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있었고, 거기에 시나리오에서 언급되는 요소들과 함께 CoC 특유의 분위기도 녹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주문 받은 상황에 맞춰 떠오른 이미지는 명확했기 때문에 스케치는 금방 완성했습니다. 엇갈릴뻔 했는데 서로를 알아보고 멈춰서서 아이컨택을 하는 장면. 각 인물의 특성상 놀란 모습에도 “어!”와 “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 그 점도 메모해 두었네요.

처음에는 영화 포스터를 생각하고 세로로 긴 화면을 쓸까 했는데, 세션카드로 사용할 목적도 있다는 답변을 듣고 가로로 바꾸었습니다.

둘 사이의 간격도 어느 정도로 할지 고민하다가, 둘 사이에 텍스트 같은 게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이를 좀 띄우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전체적인 컬러 설계도 이때 간단하게 정해두었는데요. 각 캐릭터 디자인의 포인트가 되는 핑크, 민트와 함께 둘에게 공통적으로 들어가있는 블루블랙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예,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습니다. 자기가 계획에 발등이 찍혀서 문제지요…

아, 안 예뻐…….

계획대로 전체적인 배경은 블루블랙과 엇돌지 않을 쿨그레이로 칠했고, 민트색 빛 효과와 핑크색 포인트까지 줬는데 안 예뻐…….

그리고 딱히 CoC 같은 광기도 안 느껴지고, 현실감이 엄청 생생하냐면 그것도 아니야 애매해…….

필요한 건 통일감. 그리고 확실한 장르성(광기를 표현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을 묘사할 것이냐).

색의 문제라는 건 확실했기 때문에 배색 비율에 변화를 주는 쪽으로 수정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정확히는 민트색의 비율을 확 높여보기로 했습니다. 아예 ‘민트색 그림’이 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요.

그 결과 확실히 이전 그림에서 느낀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야호!

하지만 문제는 이걸 신청자님께서 받아들여주실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전에 신청해주신 적이 있으신 분이라 걱정이 더 되었던 것 같아요. 그 그림과는 너무 스타일이 달라져서…….

우리집 김치로 만든 건 맞지만… 김치찌개를 맛보시고 재방문 해주신 분께 김치전을 서빙하면 안 되는 건데…….

근데 이건… 이건 이게 맞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두 종류의 스케치를 모두 보내드렸습니다.

사실 저는 이 두 스케치를 하나로 추려서 보여드리는 게 제 역할이고 제가 하는 일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처 하나로 추리지 못한 두 개의 스케치를 보내드릴 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mm )

하지만 김치찌개를 맛본 적이 있으신 분이니, 아무리 제 눈에 김치전이 맛있어 보여도 손님 마음에 안 들면 냅다 김치찌개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부끄럽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진행을 했네요.

컨펌 결과, 감사하게도 김치전을 받아주셨고 논의 후 김치찌개까지 추가 주문해주셨습니다.

즉 민트색 그림과 민트색 빠진 일상톤 그림,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또 험난했습니다.

민트색 그림이야 마음에 드는 스케치가 나왔으니 완성만 하면 되는데, 일상톤 그림은…….

저 안 예쁜 그림을 어떻게 디벨롭해야 어디 내놔도 부끄럽진 않을 정도로 완성할 수 있을지…….

이 걱정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 묘수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일단 주어진 스케치에 따라 캐릭터 선을 따고 배경 선을 따고 캐릭터 채색하고……. 어 근데 여캐쪽 흰색 의상이 배경이랑 너무 구분이 안 되는데?! 해서 가디건 색깔을 바꾸고 나니 인물이 모두 명도를 낮게 가져가니 배경은 높게 해야겠다는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아!! 그리고 처음으로 무테로 배경을 그렸어요. 확실히 캐릭터와 배경이 좀 더 잘 구분되어 보이긴 하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그릴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캐릭터들이 푸른 색조를 가져갔고, 배경, 특히 화면 가운데 있는 포스터 속의 여자가 노란색을 가져갔으니 배경도 노란색이 너무 튀지 않는 난색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오가는 엑스트라를 추가해서 마무리. 여캐 쪽 머리카락과 인체 비율은 한번 수정을 거쳐 완성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그림을 바탕으로 민트색을 끼얹는 보정 작업까지 해서…… 두 장 모두 완성!



이번에도 작업하며 들은 노래를 첨부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민트색 보정 작업 내내 루프로 틀어두었어요.

개인적으로 TRPG를 플레이하지는 않지만, 하시는 분들을 정말 부러워하긴 합니다.

기발한 설정, 약속된 클라이막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가지고 여럿이서 즐길 수 있는 정말 재밌는 장르니까요.

특히 CoC에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미지의 존재들에게 시험당하거나 놀아나는 듯한 스릴은 독특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를 접해본 경험이 플레이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요.

그림의 배경으로 삼은 공간은 현실에 있는 장소지만, 그토록 잘 알려진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시험에 들게 될 둘의 행보를 상상하는 게 무척 재밌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둘이 어떻게 될지, 지금도 궁금하네요.

미지의 무대 위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던가요?

맞은 결말에 후회는 없나요, K?

즐거운 플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랬는데 이미 플레이 하셨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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