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후기

비씨 다르테, 비씨 다모레

무슨 뜻인지 궁금하시다면 스크롤 최하단으로

비씨 다르테, 비씨 다모레

<이 순간, 둘에게 생명을> 크레페 커미션 작업 후기


같은 페어로 두 번째 신청해주신 분의 의뢰였고, 저번처럼 의상과 포즈를 자세하게 지정해주셨습니다.

또 묘사하게 될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 맥락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썰을 풀어주셔서 수월하게 이미지와 감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납작 쿵! 하자면 평범한 프러포즈 장면이지만…….

이전 작업으로 둘의 서사를 알고 있는 상태였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순간의 무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특별해 보였으면 좋겠어!! 라는 욕심을 한껏 껴안고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처음 그린 스케치.

최대한 받은 자료 그대로 그린 스케치고, 변주를 준 부분은 포즈와 배경입니다.

포즈 수정: 원래 한쪽 손을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던 여캐 M의 포즈를 놀란 듯 입가를 가린 포즈로 수정했습니다.

배경이 넓게 들어간 전신 그림의 특성 상 표정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감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몸짓으로도 놀란 반응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컨펌 파일 보내드릴 땐 소심해져서 다시 차렷 자세로 그리고, 이런 포즈는 어떨까요~ 하고 글로만 제안을 드렸었는데 감사히도 수락해주셨습니다.)

배경 수정: 배경은 웨딩샵이라는 설정이었고, 자료로 심플한 테두리 장식이 들어간 서양 건축풍 흰 벽 사진을 받았는데요.

  • 웨딩샵이라는 설정

  • 서양 건축 느낌

  • 너무 화려하지 않은 화이트톤 인테리어

이 세 가지를 핵심으로 두고, 좀 더 특별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배경 자료를 찾아 참고해서 그렸습니다.

사실 아예 야외로 하거나, 아래와 같은 장미창을 넣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요.

야외 설정은 웨딩샵이란 느낌도 안 살고, 신청서에 기재되어있던 상황의 자연스러운 느낌과도 맞지 않아서 탈락.

장미창은 아래쪽 격자창과 너무 안 어울리고, 웨딩이란 느낌은 풍기지만 성당이나 예식장 느낌이 훨씬 더 강해서 탈락.

또 다른 아이디어는, 세로로 화면을 2분할해서 각 캐릭터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전 작업에서 인물 표정 표현에 만족해주셨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좀 더 인물의 표정에 줌인해서 그릴 수 있으면 어떨까 했습니다만….

  • 표정은 잘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프러포즈라는 상황이 애매해짐(역시 프러포즈의 시그니처는 무릎 꿇은 포즈)

  • 딱 봤을 때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비교적 약함(즉, 둘이 함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싶음)

  • 별로 안 예쁨(…)

처음 떠올렸을 땐 괜찮을 것 같았는데……. 역시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나은 건 아니지요.

해서 결국 배경으로는 격자창을 고르게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인물을 그려넣은 다음 컨펌을 받았습니다.

아래가 컨펌 때 보내드린 파일.

큰 수정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완성까지 진행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ㅠ특별해 보이지 않아!!!!! 라고 외치는 제 자신의 욕심이었는데요.

근데 이걸 이제 와서 어떻게 하기도 참 어려웠습니다.

그림에 들어갈 내용은 다 정해졌고, 뭘 더 넣고 빼보는 시도를 할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한 가지 가능성을 느낀 건 바닥 조명을 사용한 빛 효과였습니다.

컨펌 단계에서도 바닥이 상당히 밝게 그려져 있는데요.

대리석 같이 매끈매끈한, 반사율 높은 석재 바닥이 빛을 은은하게 반사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그릴 땐 특별한 생각 없이…….

인물과 가까운 곳이 밝았으면 좋겠다

> 창 밖이 밝다는 설정이니까 벽을 밝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

> 천장보다는 바닥이 가까우니까 바닥을 밝게 하자

대충 이런 흐름으로 그렸던 것 같아요.

근데 가만 보니 바닥의 빛이 마치 떠오르는 듯한, 상승의 이미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서 잘 생각해 보니…….

장미꽃을 꽂은 화병의 실루엣도, 격자창의 방향성도 위를 마침 향하고 있는 겁니다.

해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빛을 이용해 상승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해보자! 라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건 제가 애초에 표현하고 싶었던 특별함과 맞닿아있는 동시에 둘의 서사와도 연결된 이미지였습니다.

상승, 그것도 실내 환경에서의 상승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력은 무조건 지면을 향해 작용하기 때문에 뭔가가 부양하는 현상은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지요.

그러니까 뭔가가 혼자서 떠오르거나 상승하고 있다면 그건 마법이고 기적인 거예요.

그리고 둘이 맞이하게 된 이 순간도…… …….

네. 그렇습니다. 너무 자세한 주접은 민폐가 될테니 줄이겠습니다.

서사가 진짜… 진짜 짱인데요… 너무 자세하게 떠들면 민폐일 테니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상승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열심히 완성하는 일만 남았지요.

인물, 배경을 차례로 마무리하고 마지막 빛 효과를 넣을 때는 적절한 브러쉬를 찾느라 시행착오를 좀 겪었습니다.

평소에는 빛먼지나 파티클 효과를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넣는 편이라, 위쪽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점도 마지막까지 신경쓰였지만….

위쪽에 빛 효과를 넣으면 아래에서 위로 솟는 운동성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에는 뺐습니다.

그리고…… 완성!



작업 중 틀어두었던 음악을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의 제목이기도 한 ‘비씨 다르테’는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입니다.

‘비씨 다르테, 비씨 다모레’는 ‘예술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예술과 사랑에 헌신한 여주인공이 비극적인 사건을 겪으며 신에게 어째서냐고 호소하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처음엔 가사가 없는 버전으로 들었고, 나중에서야 가사를 찾아봤는데…….

절묘하게 M의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뇌절이라면 죄송해요

이런 비극이 어떻게 토스카만의 것이겠어요.

하지만 어떤 기적이 필연처럼 찾아와 둘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니…….

M, 생일 축하해요.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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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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