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샘플

[커미션 전문 샘플] Mission Impossible

커뮤 기반 자캐 NCP 2인 - 센티넬버스AU

글창고 by 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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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안내: https://glph.to/c2uu7d

자캐 / 자컾 샘플:

인물: 2인(기본)

작업 기간: 2주(기본)

글자 수: 8,198자(7,500자 신청)

신청 타입: B. 짧은 씬+키워드


Mission Impossible

w. 목화

 

 

 

“아스, 아스. 있잖아. 내가 이제 와서 제안할 게 좀 있는데.”

재빠르게 속삭이는 연화의 목소리가 퍽 다급했다. 지프차가 미친 듯이 덜컹거렸다. 포장되지 않은 산길을 마구 달리는 건, 아무리 지프차라도 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조수석 천장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바짝 기댄 연화의 낯은 평소보다도 더 하얗게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작전을 조금 수정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생각해?”

우지끈, 쾅. 지프차 옆으로 사정없이 부러지는 나뭇가지와 튕겨 나가는 돌멩이들이 살벌한 소리를 냈다. 연화는 제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 날 잘못 잡았네. 이를 꽉 깨물었다. 화가 난다거나 한 건 아니고, 상하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지프차 안에서 혀를 깨물고 죽긴 싫은 탓이었다.

“뭘 어떻게 수정하려고?”

“그, 조금만 안전 운전을 해본다든가, 아님 그냥 날아간다거나…….”

“도로도 제대로 없는 길에서 안전 운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 적어도 우리가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겠지이?!”

쾅, 덜컹, 지프차의 앞바퀴가 허공으로 들리며, 연화의 목소리 끝이 뒤집혔다. 와, 천장에 머리 박을 뻔했네. 박았다면 최소 뇌진탕에, 운이 좋지 않았다면 목뼈 골절로 죽었겠지. 연화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현장에서나 느껴볼 법한 공포를 현장으로 출동하는 길에 느껴보긴 또 처음이었다.

“인력 부족이라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능력 섣불리 쓰지 말자고 한 건 너잖아.”

“그야, 암만 우리 둘로 충분한 규모의 현장이라 해도 출동하는 데 능력 남발했다가 전투 도중에 가이딩 필요하면 곤란하니까!”

“그럼 뭐 어떡하라는 말인데?”

“지금 와서 생각이 바뀌었단 말이야…….”

끼익, 쿵. 아셀라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안전벨트에 몸을 맡긴 연화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제가 오늘 제 절친한 친구의 손과 발에 의해 숨을 거두는 일만은 없게 해주세요. 쟤 운전 이따위로 하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왜 운전석을 넘겨줬을까. 그냥 내가 운전할걸. 아니면 부장님한테 죽어도 우리 둘만으론 자동차 타고 이동 못한다고 우겨보기라도 할걸. 연화의 머릿속으로 뒤늦은 후회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연화, 저기 봐.”

지프차의 시동이 빠르게 꺼졌다. 잔뜩 낮아진 아셀라의 음성에 연화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꺼진 탓에, 체감하지 못했던 어둠이 순식간에 지프차 안을 가득 채웠다. 운전석에서 신속하게 안전벨트를 풀어헤치며, 아셀라가 자동차 앞 유리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화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아셀라의 손끝이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절벽을 따라 깔린 도로 아래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부둣가가 보였다. 컨테이너 박스 사이사이로 주차되어있는 자동차 몇 대의 헤드라이트와 작은 손전등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셀라와 연화가 거친 산길을 가로지르며 마침내 다다른 현장이었다. 연화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오는 길에 죽진 않았네.

“네 소원대로, 이제 날아가도 될 것 같아.”

“그냥 날아가야 하는 때가 돼서 날아가는 것뿐이잖아.”

속삭이면서도 투닥거리는 건 잊지 않았다. 운전석 문을 열고 아스팔트 도로 위로 뛰어내리는 아셀라를 따라, 연화도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조수석 보닛에서 여분의 탄창을 챙겨 다리에 찬 홀스터에 넣은 후 바깥으로 나오면, 아셀라가 가드레일 위에 우뚝 서 부둣가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컨디션 어때?”

“괜찮아, 요즘 가이딩 꾸준했고.”

“우리 둘뿐인 게 마음에 좀 걸리네.”

“인력 부족이라는데 어떡해.”

아셀라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섰던 연화의 두 다리가 허공으로 붕 떴다. 연화가 몸에 걸친 방탄조끼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건조한 바닷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마구 헤집고 지났다. 바닷바람에서 짠내가 맡아졌다. 연화가 아셀라를 돌아보았다. 이리저리 휘날리는 녹색 머리칼 아래로 시퍼렇게 뜨인 은빛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가드레일 위에 서 있던 아셀라가 연화와 함께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가, 아래로 추락했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부둣가 한가운데로 날아 내려오는 두 사람의 손에,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장전된 권총이 들려 있었다.

 

-

 

촤악, 공중을 향해 흩뿌려지는 붉은 피가 뜨거웠다. 얼굴에 튀는 끈적한 액체에 연화가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직접 현장에서 구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빼앗아 들었던 기다란 장도를 쓰러진 남자의 곁으로 대충 던져놓고, 피 묻은 손을 탈탈 털었다.

불쾌하고, 힘들고. 슬슬 현장 정리가 될 법도 한데,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를 놈들이 계속해서 회칼이나 쇠 파이프 등을 들고 덤벼들었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빛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무기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척 봐도 센티넬이 아닌 제게만 그런다면 그저 겁대가리가 없는 초짜들이겠거니, 싶은데 100m 밖에서 봐도 S급 센티넬인 아셀라에게까지 그렇게 덤벼대니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슬슬 번거로워서 짜증나기도 하고…….’

연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자리를 비우고 이놈들이 어디서 끝도 없이 몰려나오는 건지 수색해 그곳을 막아버리면 오히려 더 깔끔하고 일찍이 끝날 수도 있는 일인데. 현장에 투입된 게 고작 저를 합해 2명이 전부이니 그마저도 선뜻 하기가 두려운 것이었다.

연화가 팔로 얼굴에 묻은 피를 아무렇게나 닦아낸 후,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만약을 대비해 본부에 연락해 놓는 게 안전하겠다 싶었다. 암만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이 정도의 병력이라고는 전해 듣지 못했는데. S급 센티넬과 가이드 두 명이면 충분히, 그리고 쉽게 해결하고 올 수 있는 일이라고만 들었다. 본부에서 측정한 현장 규모도 겨우 B등급에 불과했단 말이지. 제 옆에서 작은 칼을 들고 덤비는 남자의 허벅지를 총으로 쏘며 연화가 반대쪽 손으로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메일 내용을 입력하던 연화의 곁으로, 아셀라가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착지했다. 아셀라의 사방으로 오합지졸 무기를 든 적들이 종잇장처럼 떠밀려 저 멀리 날아갔다. 본부로 보낼 메시지를 무사히 작성하고 전송 버튼까지 누른 연화가 미간을 좁혔다. 이거 봐, 순수 전투력으로만 봐도 밀리는 건 아닌데. 아셀라도 연화와 크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연화를 향해 뒤돈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대가리로 보여?”

“대가리라니, 아스, 말 좀…….”

“아니, 이상하잖아. 저것들, 아무리 썰고 베도 겁먹는 기색 하나가 없어.”

꼭,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놈들처럼. 아셀라가 연화와 자신의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은색 눈에 반짝이는 빛이 감돌더니, 이내 부둣가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그곳에 서 있던 거구의 장정들을 한꺼번에 바닥으로 고꾸라트렸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털면 뭐라도 나올까 싶어서 일부러 하나하나 상대해 주고 있는 건데, 뭐 대단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해, 안 그래도 본부에 이것 때문에 연락해 놓긴 했거든.”

“……할 줄 아는 거라곤 탁상공론밖에 없는 놈들이.”

나지막한 불만의 목소리에 내심 공감하며, 연화는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오늘 전달받은 임무는 부둣가에서 무기를 든 사람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니 현장을 급습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내용이었다. 현장 상황이 종료된 후 본부에 연락하면 용의자들을 이송할 인력과 차량을 보내준다고 했고.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었던 터라 순순히 출동했을 뿐인데 어째 현장에 머물면 머물수록 알게 모르게 찝찝함만 더해지는 중이었다.

“이런 데서 숨겨뒀던 최종 보스 나오면 웃기겠다.”

“지가 싸우는 거 아니라고 막말하네……”

에이, 난 항상 네 걱정뿐인걸. 예쁜 얼굴에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하는 내용이 썩 유쾌하지 못했다. 그리고, 연화의 웃지 못할 농담에 아셀라가 못마땅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연화를 흘기던 참이었다.

“아.”

“……미안.”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착각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화와 아셀라가 슬그머니 뒤돌았다. 분명, 한 10초 전까지만 해도 여기 되게 어둡지 않았나? 아셀라가 눈썹을 들썩였다. 순식간에 사방이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손전등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시야가 훤히 확보되었다. 연소할 것이라곤 아셀라와 연화가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았던 적들밖에 없는데, 불은 활활 매섭게도 타오르는 중이었다.

전투 내내 굳게 닫혀있던 카니발 안에서 검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셀라가 고개를 돌렸다. 불 속성 센티넬에 A+……, 아니, S인가. 진짜 웃기긴 한다, 이런 데서 최종 보스 나오니까.

“아니, 진짜 나올 줄은 몰랐지!”

“말이 씨가 된다는 것도 몰라!”

“말조심하라는 얘길 너한테 듣게 될 줄은 몰랐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살기와 위협에, 아셀라가 재빠르게 연화를 챙겨 허공 높이 날아올랐다. 위쪽에서 보니 더 가관인 것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 뭘 들여놓았던 건진 몰라도, 불이 붙으니 슈팅스타처럼 펑펑 잘도 터진다. 폭탄인지, 가스인지. 한없이 높이 올라와 있으니 냄새를 맡기도 어려웠다.

“본부, 나오세요. 본부!”

아셀라가 난데없는 S급 센티넬의 출현에 휴대전화에 대고 다급히 본부를 부르짖는 연화를 돌아보았다. 아래쪽에 있는 놈이랑 붙으면서 연화를 챙기기엔 딱 봐도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기야 하지만, 그만큼 적의 동태나 의도를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너 나 어디 떨어뜨려 놓을 생각 하고 있지.”

“……10분, 아니, 5분만.”

“웃기지 마. 안 돼.”

“아니, 내가 널 챙길 여력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

“너 전에도 나 어디 떨어뜨려 놓고 혼자 상대하다 죽을 뻔한 거 기억 안 나? 절대 안 돼.”

아셀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제가 죽을 뻔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때 연화가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고 힘들어했는지 알아서. 감히 다시 한번 더 그러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저 미친 센티넬의 불장난을 끝내려면 언제까지고 하늘에 머물 순 없었다. 열받은 센티넬이 자칫하다 불을 던져 이곳을 조준하려 하기라도 한다면 괜히 불이 튄 곳까지 피해가 번질 가능성도 있었고. 아셀라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부두의 불길이 점점 크기를 키워갈수록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내려가자.”

“내려가기야 할 건데…….”

“내 몸은 내가 지켜. 네 임무는 날 지키는 게 아니라 저 불장난에 미친 놈을 제압하는 거야.”

연화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연화의 푸른 두 눈을 마주 본 아셀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에서 매섭게 날뛰는 화마와 그 가운데 선 센티넬, 그리고 연화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며 입을 벙긋거리던 아셀라는 끝끝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 대신 안 다치게 조심해.

연화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아셀라가 손가락을 쭉 폈다. 순식간에 부두의 시멘트 바닥에 두 발이 닿은 두 사람이 곧장 경계 태세를 취했다. 최대한 불길이 없는 곳으로 내려오긴 했는데. 이미 부두는 곳곳에서 폭발이 일고 있었고, 여기저기 튀는 불티와 연기의 온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 아셀라가 저 앞에 선 센티넬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연화가 총을 장전하고, 카니발 앞에 서 있던 센티넬을 조준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가 당겨진 연화의 권총으로부터 탄환이 빠르게 튀어 나가, 곧장 센티넬의 머리를 노렸다.

“뒤로 와!”

다급히 내뱉은 아셀라의 목소리에 연화가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제가 쏜 탄환은 센티넬의 신체에 닿기도 전에, 그사이에 방어막처럼 세워진 불길에 녹아 감쪽같이 사라졌다. 연화의 공격은 무(無)로 돌아갔지만, 아셀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팔을 넓게 휘둘렀다. 연화와 아셀라의 양옆에서 시작된 바람이 일제히 센티넬을 향해 몰아쳤다. 강한 풍속과 범위에 부두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바짝 몸을 낮추었다. 효과가 있나? 연화가 기대에 찬 눈으로 아셀라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와, 대단한데.”

연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사를 내뱉었다. 바람이 잦아들기가 무섭게, 땅바닥에 한껏 달라붙었던 불길이 재차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우리 공격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데, 감탄이 나와?”

기가 찬다는 듯, 아셀라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음, 꼭 그런 뜻은 아니었어. 연화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저 정도로 강한 센티넬에게 바람은 일시적인 효과를 볼 뿐이라는 건가. 연화가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물이나 흙을 다루는 센티넬이 지원군으로 있지 않은 이상, 아셀라의 바람에 관한 능력만으로 불을 진압해야 했다.

‘흙을 다루기엔 주변이 죄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라 힘들고, 산에 있는 걸 가져오기엔 나무 때문에……, 자칫하다 장작만 던져주는 꼴이 될 수도 있겠어.’

연화가 시선을 돌렸다. 흙이 안 된다면 물이다. 부두는 바다와 인접해있고, 이런 상황에서 바닷물은 마르지 않는 소화기지. 연화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스, 요즘 스트레스 꽤 쌓이지 않았어?”

“오늘 너 때문에 좀 쌓이려고 하는데 왜?”

“넌 나 상처받게 말을 꼭 그렇게 하더라…….”

“그래, 이런 대화 때문에!”

아셀라가 제 앞으로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바람의 흐름으로 막아내며, 꽥 소리를 내질렀다. 연화가 뻔뻔스레 미소를 지었다. 에이, 내 맘 알지?

“바닷물을 이용해보자.”

“바닷물?”

“반대편 컨테이너까지 폭발하면 이 근처 마을까지 피해가 갈 거야. 이런 건 시간 싸움인 거 알잖아.”

아셀라가 제 앞의 센티넬과, 그 너머에 있는 바다를 차례대로 확인했다. 연화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필 오늘따라 바람도 썩 불지 않아서, 새까만 바다는 한없이 고요하고 잠잠했다는 게 문제였지.

“이만한 불을 끄기 위한 바닷물을 움직이려면 힘이 꽤 들어갈 거야. 내가……, 폭주하게 되면 네 안위도 확신 못 해.”

아셀라가 불안한 듯, 연화를 향해 빠르게 속삭였다. 은색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연화는 아셀라의 걱정에도 굴하지 않고, 그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내 걱정은 말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기 전에 가이딩 해줄게.”

아셀라와 연화의 앞으로 다가오는 불길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붉은빛이 두 사람을 물들였다. 아셀라의 은빛 눈이 점차 시퍼런 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셀라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본 연화가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아스.

“가서 실력 발휘 한 번 마음껏 해봐.”

고요하던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새카맣기만 했던 하늘 위로 동이 트고 있었다. 피부가 다 화끈거릴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던 부두는 조금의 불티도 찾아볼 수 없었고, 바짝 말라 있던 바닥은 바닷물과 바닷물에 딸려 온 해초들로 온통 질척거렸다. 다시금 고요를 되찾은 바다와 아침 새가 지저귀는 새벽 공기를 뚫고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가 귓전을 마구 때리는 중이었다.

“으, 입에 바닷물 들어갔나 봐. 완전 짜.”

“그러게 누가 거기 버티고 서 있으래…….”

“그래도, 약속한 게 있지.”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연화와 아셀라가 터벅터벅 부두를 빠져나왔다. 바람으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불바다가 된 부두를 덮친다는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만한 물이 한꺼번에 불 위로 쏟아지며 완벽한 산소 차단이 된 모양이었다. 다만, 컨테이너 박스 뒤에 숨어있던 연화는 미처 그 파도를 피하지 못해 물을 죄다 뒤집어썼다는 게 문제였지만.

“수고했어, 아스.”

“……너도.”

연화가 살풋 웃으며 아셀라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다행히 폭주까지 가진 않았다. 정확히는 온 힘을 쏟아부은 아셀라의 폭주 직전에 불 속성 센티넬의 힘이 다했던 게 다행이었다. 부두 바닥까지 비틀거리며 겨우 내려온 아셀라는 다행히 근처에서 계속 상황을 지켜보던 연화의 빠른 가이딩으로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부두를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곁으로 본부에서 지원 나온 요원들이 빠르게 스쳐지났다. 현장 검증과 용의자 체포, 증거물 확보 등을 위해 부두 이곳저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저렇게 뒷북칠 바에야 처음부터 현장 등급을 똑바로 측정하란 말이야…….”

“그러게. 우리 진짜 죽다 살았는데.”

연화가 맞장구를 치며, 주먹을 쥔 손에서 검지를 쭉 뻗어 아셀라에게 들이밀었다. 철벅거리는 바닥을 묵묵히 딛고 걸어가던 아셀라가, 대뜸 눈앞에 놓인 연화의 손가락을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게 뭐냐는 듯 묻는 아셀라의 눈빛에 연화가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

“ET 가이딩~.”

“꺼져.”

아아, 왜~. 대꾸해줄 힘도 없다는 듯, 아셀라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뒤돌았다. 연화가 뒤에서 따라오든 말든, 앞만 보고 걷는 걸음걸이에 피로가 잔뜩 묻어 있었다. 얼른 본부로 돌아가서 가이딩 제대로 받고, 좀 쉬어야지. 아셀라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알록달록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이, 퍽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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