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봉
새하얀 머리칼, 감긴 눈꺼풀 안에 있을 녹색 눈, 잔뜩 손상당한 옷가지와 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 악어는 고통스럽게 죽어간 제 시체를 본다. 붉은 피가 여전히 배어나오는 것이 그렇게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그에 비해 태연한 얼굴색은 이 시체를 운반한 남봉이 다급한 와중에도 얼마나 이 악어를 신경 썼는지를 고스란히. 악어는 태연하게, 그리고 조금은 어색하게 제가 입고 있던 옷가지 따위를 수습해 챙겨 입고는 남봉을 본다. 다 입었어? 하고 물어오는 것에는 숨기지 않는 호의가 가득하고 힐끗힐끗 죽은 시체를 바라보는 움직임에는 옅은 떨림이. 악어는 저 눈을 안다. 그러니까, 남봉은 지금 분명히. 악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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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남봉에게 대체 무언가? 질문에 대답하기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나열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악어는 남봉의 첫 학생이고, 가장 친한 사람이며, 추억을 쌓은 동료에다, 그리고. 남봉씨! 나 물렸어! 뭐? 남봉씨 도와줘! 알았어 악어님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남봉은 묘한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그 뒤에 마지막으로 나올 이야기는 남봉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것이라 마침 악어가 잘 물렸다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야, 악어는 클론이니까. 당신의 기억을 다만 이어받았을 뿐인 복제인간에 지나지 않으니까. 물론 정말 그러한 것인지에 대한 최근의 혼란은 조금 뒤로 미루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 씨, 손에 물렸어… 그리 중얼거리는 악어의 목소리는 남봉의 귀를 두드린다. 그러면 남봉은 저것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집중하고 만다. 악어의 얼굴에 악어의 목소리로 악어의 위기를 악어가 조금 짜증스럽게 말한다. 마치 악어처럼. 악어의 탈을 쓴 악어가 악어처럼 행동하고 사고해서 마치 처음부터 악어가 악어였던 것처럼. 짧은 찰나의 사고에 들어간 악어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남봉이 지금 너무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일부러 흐르던 생각을 멈추고 사고의 화제를 전환시켜서. 악어님 근데 어디로 갔었던 거야? 나? 나 차 좀 정비하러 카센터 가고 있는데 엔진이 멈추더라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차를 수리하고 싶었는데. 오. 흘러나오는 말이 고막에 닿으면 눈을 질끈 감는다. 우리의 추억은 무슨. 그 추억은 악어와 남봉의 것이다. 제 옆의 악어가 아니라, 아니, 그것도 악어였고 또.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이 아니라. 그거 완전 똥차야 악어님! 아 그래? 악어의 그 말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여서, 남봉이 입술을 꽉 깨물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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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씨, 나 왜 이렇게 메스껍지? 악어는 지금 제가 대체 그 말을 몇 번 반복했는지 알까? 사실 남봉도 잘 몰랐지만, 대충 간단히 떠올릴 수 없을만큼 그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남봉은 묘하게 초조해지는 것도. 메스꺼움은 좀비화 되고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증상 아니던가? 거기에 열도 나고, 더 말하진 않겠지만 자잘한 합병증 같은 것도. 악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착실하게 좀비화되고 있다. 백신을 찾으러 원래 무리에 갔더니 이미 조치를 취할 수 있는걸 다 썼다는 소식밖에 없어서 다른 먼 곳으로 떠나는 지금에. 이 대로면 악어는 또 좀비가 된다. 숨을 멈추고, 호흡을 멈추고, 원인불명의 사유로 당신은 움직이는 시체가 되어 차마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해서 남이 당신을 때리게 할 테다. 그러고 나서야 남봉은 뒤늦게 수습할 생각을 하겠지. 수습도 잘 안되는 시신을 그러모아다가, 당신이 갖고 있던 것들은 최대한 온존시켜서. 남봉은 또 악어를 들쳐메고 악어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그게 악어가 죽으면 일어날 일이다. 악어는 남봉의 첫 정신병이니까. 그래서 이깟 클론에게 당신을 찾고 있으니까.
클론을 악어를 닮았다. 애초에 악어의 육체를 복제하고 악어의 기억을 모두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당연하지만. 악어가 남봉에게 느꼈던 감정도 추억도 친구로서의 그 기간도 전부가 저 클론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남봉에게는 가끔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남봉도 자신의 클론이 존재하기야 할 것이다. 제가 생명활동을 멈추면 몇 번이고 기억을 이식받아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클론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무리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한 열 번인지 열 한번인지 죽었다가 보충된. 그런게 예외적으로 많은 것이고 한번쯤 죽었다 클론으로 보충된 이들도 제법 있었고.
문제는 그럼 클론의 인지는, 생각은? 갑작스럽게 채워진 영혼에 너희들은? 과거는 과거에 불과해서, 육체로 흘러들어오는 기억에 따라 가장 유사한 영혼이 강제로 성장하고 마는 방식이다. 악어의 클론인 악어는 악어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생전과 가장 유사할 뿐인 악어가 아닌가? 김남봉은 결국 죽은 악어의 흔적에 계속 매몰되어있을 뿐이 아닌가? 아무리 지금 다급해져봤자 악어가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참의 명제이지 않던가? 그러니까—
“남봉씨.”
그 이름이 나지막히 불린 것은, 어지간히도 김남봉 자신이 복잡해 보였으리라. 그래서 남봉은 애써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자신은 괜찮다고, 악어님은 살 방법이 있다고. 내가 끝까지 살린다고. 그러나 아쉽게도 악어의 말은 끊지 않았고, 남봉은 그저 들어야 했기에.
“나 어차피 부활하면 돼. 어차피 모두 알잖아. 남봉씨도 그렇고.”
나 클론인거. 어? 멍청한 되물음과 함께 남봉은 스스로가 정말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저를 보는 그 녹빛 눈 때문에. 악어의 눈에 반사된 제가 너무나도 멍한 얼굴로 당신을 보고 있었기에. 뭔, 뭔 소리하는 거야 악어님. 뭔 소리냐니, 남봉님이 하던 생각이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생각인데. 나한테서 죽은 악어를 찾아내고 있던 거. 나지막한 선고에 숨기던 것이 찔리듯 남봉이 굳었다. 잘 가던 차가 덜컥, 하고 급정거하는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지만, 과연 그것 때문에 온전히 기분이 썩은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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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는 제가 처음 깨어나던 때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수습된 시체, 속옷만 입은 채로 세상에 던져진 복제인간의 몸. 악어가 죽은 방법과, 고통과, 그 전까지의 악어라는 인간의 궤적.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저로 깔고 태어난 악어. 인간 악어와 클론 악어는 다르다. 그래서 제게 자신의 시체를 전달해준 김남봉은 어색한 눈짓으로 자신에게서 죽은 악어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악어는 처음에, 악어가 되려고 했다. 되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구분되는 자의식이 있고 하겠지만, 악어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인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의지가 피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악어는 결국 그래봤자 악어였으니까. 결국 어떤 자의식을 갖던 간에 악어가 원본이 되는 악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모든 의지는 이미 죽은 망령의 잔재. 그런 것을 언젠가는 설명해야 한다고, 남봉도 어렴풋이 깨달을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남봉님, 기억해?”
무얼, 반문하듯 돌아오는 침묵의 눈동자가 녹색과 겹쳤다. 남봉님이 내가 한번 죽은 이후에 감염 한번 됐잖아. 내가 남봉님 살리려고 그렇게나 백신을 찾았던 거. 기억하지.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어. 악어가 클론으로 부활하고 남봉과 만났다가 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의 그는 감염의 3번째 단계에서 문턱을 밟고 있던 남봉을 악어는 잊을 수가 없다. 잘못하면 죽어버릴 당신, 백신을 구해자기 않으면 그대로 감염되어 죽게 될 당신. 아마 거기서 실수했다면 지금의 남봉은 없고 클론 악어랑 클론 남봉으로서 남았을 테다. 사실 그것도 썩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 적어도 악어는 가장 순수한 정도의 악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악어니까.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그때까지 또 같이 다니면서 생겼던 정 때문인지, 악어는 그때만큼 필사적이었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 배가 아플때는 좀 비등비등하긴 한데. 농담이지? 내가 죽을뻔했던게 그깟 똥이랑…. 미안하긴 한데 생리현상이었잖아. 뭐 아무튼.
남봉이 언제 더 감염이 진척되어 숨이 멎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총을 쏘고 경적을 울리는 개 지랄발광을 다 떨어도 좀비 하나 보이지 않던 그때. 너무 급해서 두 손 모아 싹싹 빌면서 제발 김남봉을 살려달라고 빌었던 것은 아마 남봉으로서는 모르는 이야기일 테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반추하는 그때의 감각이란, 정말로 아찔한 것 처럼 보여서. 남봉도 자연스레 그때를 반추했다. 나도 죽는 건가 싶었고, 악어님 따라가나 싶은데 악어는 저 멀리서 있어서 그냥 악어가 제대로 구해오기만을 싶은 그 가능성에 매달려서 빌던. 아마 그때부터 남봉이 악어를 인식하는 것에 혼란이 생겼을 즈음일 테다. 악어를 닮은 악어. 그렇지만 악어가 아닌 악어. 남봉도 죽으면 그렇게 될까, 싶었던. 당신은 나랑 같은 정신병을 앓아줄까 생각도 했던. 그런 악어는.
“그러니까 지금 다시 말할게 남봉님.”
날 버려도 좋아.
지금 비로소 남봉의 안에서 악어로서 성립하여. 악어님 손에 물렸다고 했지? 어? 어…. 내가 악어님 왼손을 자를게, 그럼 감염이 멈출거야.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걸로 악어님은 살 수 있어. 남봉님? 내가 톱질은 처음해보는거긴 한데, 이 좀 쎄게 깨물고. 남봉이 악셀을 밟았다. 톱을 구해서 빨리 악어의 팔을 잘라버릴 심산으로. 내가 그냥 죽으면 되는 문제 아냐? 닥쳐 악어. 난 당신을 살려야만 해.
정신병이 제대로 돌아간 것인지 뭔지 어떻게 생각해도 좋았다. 악어는 이제 악어다. 그가 처음부터 악어였던것처럼 비로소 악어가 악어로 완성됐다. 그러니까 악어에게 두번의 죽음은 용납할 수 없어서. 그래서 남봉은 그 팔을 잘라야만 한다. 당신에게 조금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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