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가던
파이브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문득, 무덤을 만들던 손길이 우뚝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제 손에 쥐여진 것들은 모두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한 것. 하면, 파이브는 그들을 제대로 기렸는지. 파이브가 한 것이라곤 분노다. 결국 그 분노를 원료로 무언가를 해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 분노에 함께하다 죽은 친구들만이 있겠지
우란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봄을 향해 가는 것이라. 너른 봄을 향하여. 꼼꼼히 감싼 이불의 사이에도 틈이 있다. 그걸 모르지 않아서 조금 여러 겹 겹쳐놓은 이불이건만 자꾸만 찔러 들어오는 한기가 조금 강해서. 이불 밖으로 빼꼼 내민 손이 방황하다 손 끝에 걸리는 감각으로 휙 채 온 것은 휴대폰이라. 머리 끝까지 덮어 쓴 이불 안에서 확인한 시간은 정
입증된 종말론은 대체 무엇을 불러오는가? 예전에 교육을 받을 때, 종말론에 대한 수업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사람들은 저렇게 예언이라는 근거없는 사유에 의한 종말론을 믿으면 제정신으로 못산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로, 이성과 논리에 의한 기술로 관측한 종말을 목도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역사의 일부가 될, 똑같은 광증에 가까운
매미는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잊을 수가 없는 것에 더 가까운 부류의 것일 테다. 그림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압도적인 폭력성을 가질 수가 있는가? 터무니없는 질문이나, 그런 질문을 감히, 무심코 하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예술의 폭력성을 매미는 안다. 새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물감과 붓질의 흔적들은 모두
왜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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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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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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