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가던
단아. 평이한 어조, 라기보다는 어떤 유혹을 하는 것처럼. 사실 그건 유혹도 뭣도 아닌 부드러운 발성과 어투다. 사근사근하게, 마치 목소리만 베낀 다른 사람이 말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그게 특히 들릴 리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배가 된다. 단아. 다시 한번 저를 부른다. 바람에 희미하게 실려오면서도 결국은 또렷하게 들리고 마
30일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뉴스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제가 켜지도 않은 뉴스가 시끄럽게 귀를 때려 차마 더 잠을 잘 수도 없게끔.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발로 차며 던져버리고서 침대에서 짜증스레 일어난 이는 눈을 빡빡 부비며 저기 티비가 크게 틀어진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눈을 문지르며 걸어가서 그런지 머리가 문에 부딪치기도
매미는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잊을 수가 없는 것에 더 가까운 부류의 것일 테다. 그림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압도적인 폭력성을 가질 수가 있는가? 터무니없는 질문이나, 그런 질문을 감히, 무심코 하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예술의 폭력성을 매미는 안다. 새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물감과 붓질의 흔적들은 모두
8월, 거진 여름의 절정. 세상의 열이 절정으로 치달아오르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짜증스러울 지경으로 시끄럽게 울어댈 때. 분명 그건 찝찝한 습기와 빌어먹을 열기의 범벅일 것일텐데. 후우, 하고 내뱉는 숨에는 새하얀 것이 칠해지고 몸은 겪어야 할 열기 대신 시린 것만. 발에 밟히는 것은 아스팔트도 바닥재도 아닌 새하얀 눈의 촉감. 시야를 메우는 것 또한 자연물
세상이 망했다. 이유가 크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합병증이 심화되고 심화된 끝에 거진 종말을 불렀다. 엄연히 따지자면 세상이 망한 것은 아닐 테다. 온도가 높아지니 해수면이 높아지니 해봤자 정작 지구라는 별이 입을 피해가 뭐가 있다고. 단지 인간의 세상이 망했고, 인간의 문명이 망했고, 그에 휩쓸린 여러 동물만이 있을 것이라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