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세상이 망했다. 이유가 크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합병증이 심화되고 심화된 끝에 거진 종말을 불렀다. 엄연히 따지자면 세상이 망한 것은 아닐 테다. 온도가 높아지니 해수면이 높아지니 해봤자 정작 지구라는 별이 입을 피해가 뭐가 있다고. 단지 인간의 세상이 망했고, 인간의 문명이 망했고, 그에 휩쓸린 여러 동물만이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여기서 정정한다.
인간의 세상은 망했다.
.
바다.
우리는 그곳을—
.
세상이 물에 잠기고 지평선이나 산과 같은 것으로 가려진 형태는 온데간데없고 수평선만 남게 되어서, 물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 보아도 사랑할 수 없는것의 한 종류가 되었다. 어디를 돌아봐도 새파란 것이 반짝반짝… 까지는 아니지만, 퍽 보아도 새파란 것이 발치에서 찰랑거리며 쭉 이어진 것이 세상 천지라. 망망대해를 떠돌던 항해사들의 심정이 이러했나 싶은 생각만 솟구쳤다. 그 광경을 가만 바라보고 있자면 배가 아닌데도 뱃멀미를 하는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만.
물에 잠긴 세상이 파랬다. 하늘도 파랬고, 파랗지 않은 것은 용케도 살아남아 뭉친 고작해야 5명정도밖에 안되는 무리와 겨우 숨통을 터 놓은 고층 건물의 끝자락, 그리고 둥둥 떠서 매여있던 4인용 고무보트 하나. 여기서 과거형으로 말한 고무보트는 터졌다. 그 고무보트의 존재 때문에 싸움이 났거나 해서는 아니고, 그냥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에 묶은 매듭이 약하게 풀려서. 바람이 드세었던 만큼 매듭이 풀린 고무보트는 빠르게 사라졌다. 세상이 평평해서 보트가 가만 나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어서, 가만 허무하게 있을 수밖에 없어서.
후우, 하고 긴 숨을 뱉어내는 것은 고무보트가 제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던 것을 바라보던 그날을 회상하던 푸른 눈동자. 낮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한숨이 가만히 제 할것을 하던—할 것이라 해봤자 딱히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이들이 슬쩍, 드러누운 그를 향했다.
“우리, 바다 갈래?”
바다? 뭔 바다? 물은 여기에도 있어요 도원씨. 온 사방팔방이 바다인데 얘는 대체 무슨 소리래. 아직 도원이 말 다 안끝난거 같은데 들어보자 얘들아. 바다 가자는 말이 뭐라고 그 한마디에 이렇게나 한마디씩 툭툭 날아오는지. 그런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입 안에서 굴렸다. 말이 입 안에서 구르면서 이쪽저쪽 바삐 확인하는 파란색이 확인한 것은 그들이 살짝 떨떠름한 얼굴이었다는 것이고, 그 반응에 말을 하기보다 또 한번 길게 숨을 뱉는다는 것에서 넷은 무언가를 직감해서.
“도원아 너 미쳤냐?”
문장과는 달리 그렇게 심각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직까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믿어 주는—사실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을 것이다—사람의 다정함이 고맙기도 했으나 정말 미안하게도 이번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천천히 뉘인 몸을 일으키고서는 제게 비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를 향하면 역광을 받아서 살짝 그늘이 진 자줏빛 눈동자가. 매미씨, 하고 차분하게 부르는 그 목소리가 매미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야, 김도원.”
그것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너 미쳤어? ‘바다’가 어딘지 몰라?”
바다.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모래사장과 함께 푸른 빛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세상이 망하고 난 뒤의 바다는 의미가 좀 다르게 통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변한 기온이 탄생시킨 해류의 변화가 거의 뭉치듯이 한 점으로 모이게 된 장소. 여러 오물과 오염물질이 뭉치면서 가까이 가서조차 안되는 범위. 적어도 핵 오염수 같은 것도 다량 섞여있다는 카더라도 도는 장소. 그런 곳이라는 것을 도원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바다라는 지점을 처음으로 명명한 사람이니까. 물이 하룻밤사이에 10미터고 20미터고 상승하던 그 시절에 비정상적으로 모이는 해류를 알아내고 밝히기 위해 남아있다 도망친 사람이라서. 너는 바다가 뭔지 모르는 애도 아니잖아, 하고 내뱉는 목소리가 날카롭다.
일단 도원이 얘기부터 들어보자, 얘가 왜 가려고 하는지. 윤아, 평소같았으면 나도 그럴텐데 도원이가 바다를 간다잖아. 너도 알잖아 바다. 알긴 알지만…. 자줏빛 눈동자를 마주보던 녹색 눈동자가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흐리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도원을 보면서 빨리 대답을 촉구하는 보라색이 하나, 매미를 막지 못한 초록색이 하나, 세 명의 눈치를 보는 분홍색과 아직까지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노란색도 하나. 이제 파랑의 행동으로 이 모든 현상에 차이가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될 테다. 천천히 도원의 입이 열렸다. 살짝 달싹이는 것은 아마 수세에 몰렸고 그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매미는 부디 그것이 맞기를 빌었다.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면요?”
“그냥? 그냥 바다를 간다고? 죽기라도 하게?”
“그러면요? 이렇게 하루하루 연명해서 우리 뭐가 달라지는데.”
…이번 건 그냥 욱해서 뱉었어요. …나도 미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상황을 보던 셋에게도. 단순한 의견차이나 말다툼이라면 결국 중재할 수야 있었을 테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갑자기 튀어나와버린 현실이라는 것은. 세상이 물에 잠겼다, 지금은 물이 차오르는 것이 멈춰서 그나마 옥상이라도 드러난 건물에서 내부공간을 확인한 뒤에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세상이 차오르게 될 때 까지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보존식은 훌륭한 상태로 구비되어있으나 그것을 다 먹으면? 아직까지는 그나마 남은 생존자가 버틸 수 있을 재난이 왔는데, 그 이후로 점점 더 심해진다면? 기술의 발전이 꼭 사회의 안정성과 동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서 각 개인의 그럭저럭인 형편이라는 것도 이렇다 할 첨단 기술을 보유하지는 못했다. 사실을 곱씹을수록 나오는 것은 정말 다시 인식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라서. 마치 그들은 세상이 망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날이 온 것 같았다. 막막한데 답은 없지 그래서 살아나갈 희망이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것이 그날과 오늘의 차이였다.
“그럼 그냥 가.”
죽으러 가라는 게 아니야. 그냥, 도원이 너도 말 못할 이유같은게 있겠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묻지는 않을테니까 가. 그리고 멀쩡하게 돌아와. 알았지, 도원아. 천천히, 침묵을 깨트리는 매미의 말이 흘렀다. 고요한 공기를 흩어버릴듯 말듯한 간격으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동안 매미는 얼빠진 표정으로 저를 보는 도원을 내려다봤다. 멍한 파란색이 보라색과 만났다. 하늘을 닮은 파란색 눈동자가 그저 저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게 어딜 봐서 리더야.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멍하게.
얘들아 들었지, 도원이가 바다에 잠시 갔다가 온대. 어, 어? 멍한 하늘을 닮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리고 3명에게 말을 돌리면 갑자기 놀라서 얼타는 도원의 목소리가. 소리를 묵살하고 제게 집중된 셋의 시선을 한번 슥 훑는 움직임 끝에 도원의 등을 짝, 소리나게 쳤다. 원래라면 굳이 할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을 테지만… 도원이 이제 떠날 것인 만큼—돌아오겠지만—마무리는 해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원아 봐, 저렇게 커가지고 니 걱정을 시키겠냐? 시킬거 같은데. 야. 잡소리가 길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도원을 빨리 보내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이제 가.”
갔다 와요 도원씨. 언니 멀쩡하게 돌아와! 단이는 텐션이 왜이렇게 높아? 등등등, 다툼과 침묵이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분위기가 참 빠르게 바뀌었다. 아마 이 차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그저 멍하니 있던 도원이라서. 아니, 천천히 가볼까 했는데… 하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굳었다. 그리고 이내 매미가 살짝 부끄러워진 듯 열이 오른 얼굴로 말을 뱉어서.
아, 아니 넌 얘가 무슨 바로 가버릴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안 가냐?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매미씨가 미쳤냐고 그랬잖아요 저한테! 아니 그건 너무 놀라서… 그리고 말을 좀 빨리 하던가 아이씨 쪽팔리게 뭐야. 아니 근데 저도 바로 미친년이라 할줄은 몰랐거든요? 은근슬쩍 날조하네? 야 내가 언제 너보고 미친년이라 그랬냐? 어, 어 지금 또 그런다! 이건 그냥 예시잖아 어휴 저걸그냥…. 다들 그만 좀 싸워! 아니 근데 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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