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겜무

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5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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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스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소드 아트 온라인의 날씨는 허구일 뿐, 내리쬐는 햇볕은 영양가가 없다. 홀로 조용히 산책 나가는 걸 좋아했던 슈크림은 SAO에 갇힌 이후로 계속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럼에도 왜 따스하다고 느끼는 걸까. 왜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걸까.

이에 신속배달은 ‘그런 생각은 해 본적 없는데!’ 라고 말했고, 마린은 ‘그렇게 설정되어 있으니까.’ 라고 했다. 스테노는 ‘슈는 슈니까.’ 라고 일말의 고민 없이 답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슈크림 소중한 동료들을 떠올렸다. 59층 주거구역 ‘다낙’은 슈크림이 현실세계에서 부모님과 함께 갔던 오스트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이 떠올랐다. 그리운 느낌. 어느 나무 아래에 스르르 앉은 슈크림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졸려.

너무 일찍 나왔나. 스테노의 길드 설립을 위해 매일이 바빴다. 어제도 너무 늦게 잔 바람에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흔들, 흔들.

누군가 슈크림을 깨웠다. 스테인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자 눈앞에 모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아…!”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슈크림을 깨운 이는 낯이 익은 한 여성이었다. 둥근 안경 템을 끼우고, 어깨가 조금 굽은 연금발색 머리. 마린을 구출할 때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아, 아아…. 그런가요? 그렇지만 여기는 안전구역인데….”

“잘 때는 별개예요. 그, 최근에 일어난 사건… 모르시나요?”

여성의 말에 슈크림은 기억을 되짚었다. 이런 최신 정보에는 약했다.

“아뇨, 모르는데…….”

“수면 살인이요.

“…네!?”

슈크림이 화들짝 놀라자 안경 쓴 여성이 불편한 미소를 지었다.

“모르셨…군요. 네, 그게 말이죠. 음….”

말을 더듬었다. 그러더니 주변을 휙 휙 살폈다.

“자는 동안은 완전 무방비하잖아요…? 그 상태로 듀얼을 건 다음, 상대의 손을 움직여 수락을 누르고,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거죠.”

“그런, 끔찍한……. 도대체 왜요?”

“그러니까요…. 범죄자들의 심리는 잘 모르겠네요….”

여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순간 슈크림은 어딘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몇 되지 않는 여성 플레이어들과 친해질수록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남성이 싫은 건 아니지만, 게임 속 남자들은 대체로……. 아니다.

어찌됐든, 이 사람은 슈크림을 구해준 셈이다.

“감사합니다. 그… 그러고보니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안나, 입니다. 슈크림 씨.”

“절 아시는군요.”

“스테노 씨에게 들었어요.”

“그러고보니 마린을 찾는 데 도움을 주셨다고…. 늦었지만 정말 감사해요.”

슈크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안나가 두 손을 휙휙 저으며 부끄러워했다.

“서로 돕고 사는거죠…. 안그래도 각박한 세상인데….”

“좀 더 좋은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한가득이라….”

슈크림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시죠?”

“그 말을 들으니 제 친구가 떠올라서요.”

“친구분?”

“지금은 없어요. 여기서… 죽었으니까.”

그 말에 슈크림은 입을 꾹 닫았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여긴 이런 세상이다.

“그 사람은 이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기록하고자 했어요. 이번 일이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돈을 버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자신만의 정의, 선의로 일을 행했죠….”

“그런…….”

“하지만 그대로 깊은 던전에서 죽고 말았어요. 아무도 그의 최후를 몰라요. 그걸 기록해줄 사람은 없으니까….”

안나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크림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것밖에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냥, 그래서…… 곤란해하는 스테노 씨를 보며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분은 뭐라도 해야 할지……. 특이해요.”

“특이해요?”

“눈에 띄는 것도 아닌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내죠…. 저는 그런 분들을 존경해요.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런 분들이 조금씩 정체된 상황을 바꾸니까요.”

그 말에 슈크림은 스테노를 떠올렸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그 대범함에 몇 번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갈림길에 설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멈추게 된다.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스테노는 달랐다. 망설임 없이 나아간다. 한 번도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뛰어난 리더십은 없다. 성숙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든다. 그녀에게 이끌려서….

그리고 그건 슈크림도 마찬가지였다.

“……스테가 좀 대담하긴 하죠. 뭐랄까,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또 어쩔 땐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워요. 표현은 적지만, 거짓을 말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언제나 앞을 바라봐요.”

“슈크림 씨는 스테노 씨를 정말 잘 보고 계시네요. 저도 스테노 씨와 친해지고 싶은데…. 제 성격이 좀, 소심해서요….”

“나중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안나가 방긋 웃었다. 슈크림은 이 사람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저, 시간 괜찮으시면… 어디 가게라도 들어가서 차라도 마실래요?”

“아, 좋아요…! 마침 저도 그, 권하고 싶었는데…. 후후.”

두 사람은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 시간, 어느 던전 앞.

“야, 혁. 좆밥 길드 여기 지나간다며. 왜 아무도 없냐?”

잠복해 있던 수상한 집단 안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속배달의 친구였던 혁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색적’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사람은 커녕 몹도 보이지 않았다.

“아, 씨발. 누구야. 정보는 정확하다며.”

“야야, 신뢰를 팔아먹고 사는 정보상의 말이야. 좀만 더 기다려.”

“그걸로 우리도 팔아넘겼잖아, 등신아.”

남자들 무리가 낄낄댔다. 그러나 혁은 조용했다. 팔짱을 낀채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야, 시끄러. 소리 들린다.”

조용해진다. 어두운 던전 깊숙한 곳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실루엣은 하나였다. 사람의 것. 몬스터 무리라도 끌고 오는 걸까 싶어 유의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살려주세요…!”

여자였다. 사뭇 어려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 혁 일행은 검을 내려놓았다. 서로를 바라보고는 다시 무기를 집어넣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여자가 자신이 온 길을 가리키며 덜덜 떨었다. 남자 일행은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구해주면 뭘 해줄건데?”

“뭐든, 돈이든…아이템이든 다 드릴게요.”

“그걸로는 부족한데~…”

“야, 씨. 지랄하지 마라. 뭘 살려달라는 겁니까?”

여자는 주저앉았다.

“저 안쪽에 동료들이 함정에 걸려서…. 어떻게든 저만 도망쳤어요. 제발 같이 가서 도와주세요.”

“……흐음.”

다섯 명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는 승낙했다.

그들을 구해주고 난 뒤 돈을 털면 되겠지, 같은 마음으로. 혁은 조금 미심쩍었지만, 훔친 돈으로 그럭저럭 강해졌으니 문제는 없겠지.

일행이 여자를 따라 달려갔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자,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뭐야, 함정은?”

혁 일행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중 한 명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야, 씨발. 구해달라며! 다 도망갔냐?”

말이 끝난 직후, 어깨에 얹어진 팔이 잘렸다.

절단된 팔이 지면에 맥없이 떨어지자 폴리곤 덩어리가 되어 허공에 흩어진다.

“………뭐야?”

남자는 잘린 팔을 감싸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딘가 쎄함을 느낀 남자들이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울며 불며 매달리던 여성은 온데간데 없었다. 언제 뽑아든 건지 손에는 단검을 든 채 무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았어, 다달.”

사방에서 사람들이 여럿 튀어나와 일행을 감쌌다.

그 순간, 혁은 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커서의 색이 붉은색인 것을.

“……살인 집단.”

“그라비스.”

혁이 말하자 다른 남자들 또한 두려움에 질려 굳는다.

혁 일행은 약한 길드만을 노려 템이나 콜을 훔친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들의 커서 또한 초록이 아닌 오렌지색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붉은 커서는 다르다. 명백하게 사람을 많이 죽인 증거.

다달이라고 불린 흰 머리카락의 남자가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잔뜩 겁을 먹고 벌벌 떠는 혁 일행을 주욱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너무 겁 먹지 마. 해치려고 한 건 아니니까.”

아니, 이미 한 명의 팔을 날려 버렸잖아.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아픔이나 출혈이 없다. HP가 조금 줄어들 뿐이다.

“너네가 그거지? 오렌지. 소문은 잘 들었어. 고생이 많네. 남이 뼈 빠지게 번 콜로 꿀 빠느라.”

기분 탓일까 다달이라고 불린 남자의 커서는 다른 이들의 것보다 조금 더 붉어 보였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너희는 뭐가 다르지?”

혁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깡따구 한 번 참. 그 질문에 다달은 다시 한 번 잔뜩 쫄은 다섯 명을 훑었다.

“당연히 다르지?”

정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고개를 몇 번 기울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너희가 한 게 뭐야? 공략팀은 공략을 위해 애씨고 있지, 우리는 우리대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지 궁리하고 있어. 그런데 너흰? 그렇게 벌어들인 콜로 뭘 하는데? 그들을 돕던가, 제대로 망칠거면 마음을 다잡아야지. 우리처럼 말이야.”

다달이 한손도끼를 뽑아들었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 조금씩 더 서로에게 붙기 시작했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난 말야. 너희같이 어중간한 게 제일 싫거든.”

다달이 도끼를 일행 쪽으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다섯 명은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

그런 소리를 듣자 다섯 명은 몸이 움찔거렸다. 나서려는 듯, 마는 듯 어색한 자세만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본 다달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점이 어중간하다는 거야. 자, 지금부터야? 도끼를 줍고, 나머지 넷을 죽인 사람은 살려줄게.”

흐트러짐 없는 맑은 미소로 말했다.

정말 순수한 표정이었다. 한 치의 잘못됨이 없다는 듯이 담담했다.

“살 수 있는 기회야. 자, 얼른.”

그러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을 죽이라니. 그런 건….

“음, 그래. 너희 우정이 참 돈독하구나. 야, 다 죽여.”

다달의 지시에 구석에 얌전히 있던 검은 로브의 살인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러자 남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제, 제발…. 뭐든 할 테니까, 살려만 주세요!”

“그러니까 죽이라고. 그걸 해.”

“으, 윽….”

공포로 인해 패닉이 온 것인지 그는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쥐었다. 그걸 본 혁이 “병신아!”라고 외쳤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으, 아아아악…!!!”

도끼를 쥔 채 다른 한 명의 남자를 베어냈다. 똑같이 공포 때문에 몸이 굳어 있었던 탓인지 저항도 못한 채 공격을 받고는 쓰러진다.

“크악!!!”

“너, 너… 개새끼, 잘 됐다. 평소에 날 존나 깔봤지? 안 그래도 죽이고 싶었어!”

비굴한 합리화. 그러나 생존본능이 너무나 강한 탓에, 인정사정없이 도끼로 찍었다. 무아무중이었다. 혁이 말리려 하자,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미친놈이….”

다른 한 명이 검을 뽑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진심으로 죽이려 드는 상대를 이겨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다. 얇은 검신이 맥없이 튕겨나갔다. 도끼의 스펙이 굉장히 높은 덕이었다.

“아악!”

“개새끼, 씨발! 개새끼가!”

도끼를 휘두르면서 연신 욕을 뱉었다.

혁은 어쩔 줄 몰라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명, 세 명이 사망하고 혁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이미 미쳐 있었다. 동료였던 존재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혁은 검을 늘어트리더니, 곧바로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의외로 침착했다. 죽일 기세로 사람을 공격하는 순간,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살고자 발버둥쳤던 그는 혁의 검에 사망했다.

그렇게 혁이 혼자 남았다.

“음? 의외네. 이건.”

즐겁게 지켜보던 다달이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가더니 등을 툭툭 쳐 줬다.

“안심해. 이제부터는 우리가 네 동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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