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겜무

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4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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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한다고, 그만해.”

거구의 남자가 팔을 휘휘 저었다. 플레이어도 잘 오가지 않는 작은 잡화점 안. 매일같이 꾸준히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다.

“…왜?”

범인은 스테노.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벌써 열 번째 거절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찾아와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할 때마다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키드야.”

무기를 새로 만들고 싶다는 말에 마린이 알려준 대장장이의 이름이었다.

그는 반 년 전에 이름을 알리던 대장장이 플레이어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요새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마린이 쓰는 낫, 그림 리퍼 또한 그가 만들어준 무기라고 했다. 스탯도 높고 강화 성공률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나 어느 순간 잠적했다고 한다.

“마린도 이유를 몰라?”

“그래, 친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51층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

스테노는 마린의 말을 믿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제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답했다. 오늘이 정확히 열 번째 거절이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제의를 해 오는 것이었다.

가장 무거운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좋은 말 할 때 가라.”

“안 가.”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냐? 무기라면 아무데나 맡기라고.”

“여기가 좋다고 추천받았어.”

“누구한테?”

“마린.”

그 말에 키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린과는 인연이 조금 있는 정도였다. 어쩌다 한 번 무기를 만들어 준 게 나비효과로 지금에 이르를 줄이야.

“오늘은 이만 가라, 장사가 안 되니까.”

“원래도 안 되는 거 아냐?”

“너 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키드는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말이 맞아, 난 늘 장사가 안돼. 하지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지?”

“대장장이 일, 그만뒀으니까.”

“……내가, 험한 소리는 안 한다. 다신 그 말 하지마.”

키드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으름장했다. 그러나 스테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까만 눈동자 뒤로 호기심이 반짝였다.

“듀얼 해서 이기면 알려줘.”

“뭐라고?”

“듀얼.”

“들었어. 듀얼이라니, 미쳤어? 그걸 어떻게 함부로 해. 목숨 내놓고 다니냐?”

듀얼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렇다. 스테노가 특이한 축에 속한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번엔 끙끙대며 고민을 했다. 키드는 그런 스테노를 무시하고 물품 재고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런 망할.”

물건 몇 개가 모자라다. 예약이 내일까지인데. 보통은 중개업자에게 소개를 받아 물건을 전해받고는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키드는 혀를 찼다. 직접 필드에 나가는 일은 선호하지 않는데….

“도와줄까?”

스테노의 말에 키드는 그녀를 찌릿 노려봤다.

마린과 아는 사이라면 분명 공략파일 것이다. 공략파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일개 평범한 유저로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키드도 잠시나마 보스전에 참가했던 적은 있지만, 그건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였다. 그의 레벨은 68. 공략파가 아님에도 나름 꾸준히 올린 셈이지만, 아마 진짜배기들과는 아득히 차이가 날 것이다.

“그렇다고 검을 만들어주진 않을거야.”

“괜찮아. 그냥 돕고 싶은 거니까.”

“……질문에 답하지도 않을거다.”

“그래.”

대가 없이 일하겠다는 뜻인가. 못 돼 먹은 어른들에게 굴려지기 좋은 성격이구만. 아무리 그래도 콜 정도는 주는 게 낫겠지.

마침 잘 됐다 싶었던 키드는 스테노를 데리고 65층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키드의 레벨대로서는 65층의 몹과는 싸우기 힘들 테니까. 공략파를 싸게 써먹을 수만 있다면야.

두 사람은 안개가 짙게 깔린 65층에 도착했다. 스테노는 그립다는 듯이 탄식했다.

“요즘 몇 층까지 진도가 나갔지?”

“71층.”

“어지간하군.”

키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테노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공략파랑 안 좋은 일 있었어?”

“뭐?”

정곡을 찔린 듯 키드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스테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65층 안쪽 필드까지 들어오니 사람이 꽤나 많았다. 경험치 벌기 좋은 곳은 아닌데. 아마도 레벨대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전선이 사람이 없는 편이겠지.

“기다려야겠군.”

“벌어야 하는 게 원혼의 천조각이야?”

“그래. 이 필드에서만 나오지.”

키드는 제대로 기다릴 생각인건지 팔짱을 낀 채 입을 다물었다. 스테노 또한 마찬가지로 곁에 얌전히 머물렀다. 한참을 지났지만 그들은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냥터 매너라는 걸 지키라고.

참다 못 한 키드가 앞으로 걸어갔다.

“이보셔들. 언제까지…….”

키드는 말을 부자연스럽게 뚝 멈췄다.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물러났다.

“이게 누구야, 키드 형씨잖아?”

남자 무리가 스테노와 키드 일행을 눈치채고 거들먹거리며 걸어왔다. 아무래도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뻔뻔하게 얼굴 내밀고 있는 거냐? 꼴에.”

“키드라고?”

“그 대장장이?”

남은 일행 또한 두 사람을 둘러싼 형태로 자리 잡았다. 표정에는 악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키드는 무어라 반박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키드 아저씨를 알아?”

“큭, 크하하핫! 아저씨, 아저씨란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착하게 살지 그랬어.”

보다 못 한 스테노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

“야, 꼬맹이. 이 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 같이 다니는 거야?”

“몰라.”

“그렇겠지.”

코웃음 치고는 남자는 키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만.”

“이 놈은 말이야….”

“그만하라고.”

“사람을 죽인 적 있어.”

정적. 길고도 긴 침묵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남자들의 조소는 더욱 더 드세졌지만, 그 안에는 경멸 또한 담겨 있었다. 스테노는 그들이 말하는 키드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사실임을 인지했다.

“남의 무기를 빼앗아 돈으로 바꿨으니까, 그치? 그걸로 얼마나 벌어먹었을까? 내 동료는 그 무기가 없어져서 던전에 나가서 죽었는데 말이야.”

확연히 드러나는 경멸과 분노. 키드는 이를 악물었다. 꾹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넌, 아무 보상도 사죄도 없이 그냥 도망갔어. 이젠 우리의 사냥터도 빼앗을 거야?”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주먹다짐까지 가기 직전, 동료들이 그를 막아섰다. 이곳은 아직 필드였다. 지금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다간 커서가 오렌지색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

“……….”

“쟤네 말 다 사실이야.”

긴 침묵 끝에 키드가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스테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키드는 과거, 이름난 대장장이었다. 과거라고는 해도 반 년 전 쯔음이지만, 워낙 유명해서 줄을 서서 손님을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함께 하는 동료도 여럿 있었다. 게임 속에 갇힌 이후 유일하게 찾은 즐길 거리였다.

그 시절의 난, 진짜 빌어 먹을 쓰레기였다.

머리를 감싸쥐며 후회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능하다면 그 시절의 나에게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돈귀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인간은 물질적인 것, 특히 돈에 홀려 버리는 일이 많다. 현실에서도 좋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힘겹게 알바를 하며 간신히 돈을 모았다. 학교도 그만두고, 힘 쓰는 일이라면 전부 다 했다. 그 돈을 뭣 같은 아버지가 통째로 날려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솔직히 말하자면 소드 아트 온라인과 너브기어 또한 키드가 산 것이 아니었다. 훔친 것은 아니나, 친구에게 빌린 물건이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써 보자고 반쯤 협박한 결과가 이 꼴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 그놈의 돈에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친했던 놈이 내게 권했어. 콜 잘 버는 장사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자주가 아니라, 가끔이면 의심 살 일도 없을 거라면서.”

그 방법은 이러했다.

강화를 맡긴 무기를 훔치자.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게임에게 있어 무기란 자신의 반쪽자리 영혼이다. 그러나 유감이게도 이 게임은 그리 친절하지 않아서, 확률이라는 이름 아래 잔혹한 결말이 날 때도 있다.

강화에는 대성공, 성공, 실패, 대실패가 있어 각각 발생할 확률이 다르다. 대성공하면 무기의 스탯이 대폭 상승하고, 성공하면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의 스탯이 나온다. 실패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대실패는… 무기 파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키드는 그 대실패를 이용한 대규모 사기극을 벌였다. 대실패가 난 척 하면서, 무기를 스틸한다. 건네 받은 무기를 해머로 두드리는 척 하면서 강화가 되기 직전, 빼돌린다.

“…그런데, 몰랐지. 그걸 권한 녀석이 범죄 길드에 속해 있었을 줄은.”

그래, 몰랐다. 영혼의 반쪽과도 같은 무기를 빼돌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키드는 이런 세계에서도 정직하게, 올바르게 싸워 나가는 이들의 생각 따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더 이상 무기를 만들라 하지 마.”

여전히 스테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명백히 그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 키드를 빤히 쳐다보는 새까만 눈동자.

“왜 도망쳤어?”

“……뭐?”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했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도 죽을 뻔했어.”

키드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표정을 잔뜩 구겼다.

“나한테 사기 방법을 권한 녀석이 계속 내 뒤를 밟아서. 도망쳤어.”

“그랬구나. 얼굴은 기억해?”

“기억하지. 그래서…… 아니, 잠깐. 너 그놈을 찾으려고?”

스테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드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자, 잠깐…. 상대는 범죄자라고. 거기다 너, 왜…….”

“그 사람을 찾아서, 키드랑 같이 사과하라고 할 거야.”

“참 나. 배짱도 크네. 네가 뭔데 굳이 그런 짓을 해?”

“경찰이 없으니까.”

차가운 시선이 키드를 향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했다. 확실히, 내가 떠들 입장은 아닌가.

“…너, 이곳에서 범죄자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

“응.”

“어쩐지. 네가 그리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가.”

키드는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곳에서는 지문도 남지 않고, CCTV도 없어. 사람을 죽였을 때 시체가 남는 것도 아니지. 법이 통용되는 곳도 아니야. 처벌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 줄곧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 몬스터를 잡는 너네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살인사건은 줄곧 일어났었어. 전부 의문사로만 처리될 뿐이지만. 1층에 새겨진 검사의 비에서는 사망해도 플레이어의 이름에 두 줄만 그어질 뿐이잖아.”

음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나같이 돈을 밝히는 놈이라면 차라리 나아. 교묘하게 시스템의 허점을 노려 사람을 해하는 놈들은 차고도 넘쳐. 언젠가 우리가 이 게임을 나갔을 때, 그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을 것 같아? 아니. 오히려 법이 그들을 도와줄 걸.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이야.”

스테노는 얌전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실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공략파 인원 중 몇 명도 의문의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는 보도가 아주 간간히 들려온다. 그러나 공략파이기에, 몬스터와 싸우다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뿐이었다.

“아는 놈중에 기록자라는 놈이 있었어. 그 녀석은 여기서 발생한 모든 사건을 기록하고 밖으로 나가 모든 사실을 세간에 퍼트릴 거라고 호언장담했지. 그 결과가 어땠는 줄 알아? 던전 내 함정에 빠져 사망, 이었어. 물론 소유자의 인벤토리에 있던 수많은 기록 용지도 전부 날아갔지. 그런 곳이라고, 여긴.”

“그랬구나.”

“너같이 맹목적이고 강한 놈들은 남일 같겠지만, 우리에겐 아니야. 너도 우리 같은 놈들이랑 엮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키드는 마치 춥다는 듯 팔을 감싸더니 떨었다. 죽어서 시체조차 남지 않는 곳. 게임 밖으로 빠져나가도 아무도 그죽음의 진실을 알아줄 곳이 없는 곳.

“……너.”

그러나 스테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키드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듯, 문장 속 단어를 몇 차례 웅얼거렸다.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없는 거냐?”

“무섭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그렇지만.”

생각을 마쳤는지 확고한 목소리로 답한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렇잖아.”

“…….”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생각해야 해.”

어떻게 해야 앞으로 희생자를 내지 않을 수 있는가를. 그리 덧붙였다. 키드는 경악을 넘어 경이롭다는 감각에 휩싸였다. 겉보기로는 1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애가 뭘 안다고 까부냐기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키드도 결코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에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스테노보다는 몇 년을 더 살았다.

“…그래. 알겠다.”

“응?”

“나한테 그 방법을 알려준 놈을 찾을게. 그런 뒤 충분히 보상하도록 하지. 콜이든, 뭐든.”

그 말에 스테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조만간, 그 쪽에서 날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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