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 나인은 확신한다. 코드 콜론 루시아를 개조하려고 하는 사람 있다면, 그 자리는 자신이 차지해야만 한다고. 주먹 휘두르든 뭐든 해서 그 자리를 쟁취한 뒤에 제 손 뻗어 분해했다가 재조립을 시도하고 싶다고. 비록 그 분야로는 손을 안 붙인지 어언 15년이 지났지만 자신은 천재 아니던가? 적절한 자격 취득 즈음이야 한 달 꼬박 코피 질질 흘려가면 해낼 수
그래, 여행을 가고 싶었다. 나도 남들과 기록할 만한 추억 따윌 쌓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런 감성적인 건 죽어서 해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왜 함께 가자고 했지. 연구소에 들른 전 직장 동료가 팜플렛을 주며 제안을 할 적 부터 혹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이었다면 진작에 추진해서 갔겠지. 어쩌면 눈이 가득 쌓일 적 까지 기다린 걸지도 모른다. 이것도 헛
에이브 나인은 살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벽돌을 꺼내 저 머리를 내려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된 건지 감도 안 잡혔다.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은 금방의 일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고, 우리는 다르게 태어났으니 인식되는 개념과 자각하는 애정의 형태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내 모든
에이브 나인은 시온 라피우스를 애정한다. 확답할 수 있다. 사랑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는 고작 2주를 봐왔으니까. 이런 시간들로 확언할 수 있는 애정은 없다. 미쳤거나, 흔들다리 효과에 의해 모든 걸 맡겼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나인은… 아마 후자였을 것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추정한다. 그야 고작 2주 밖에 안 본 젠더리스 작자 한 명에게 입을 맞
에이브 나인은 어린 나이에 재기불능이란 단어를 체화했다. 그 다음엔 무기력이었고, 종착지는 음울이었다. 허비한 시간들이 아쉽진 않았다. 모든 인생이 추모와 부고로 이루어져 있으니 보다 일찍 체득한 것이라고 보면 되는 일이었다. 보다 일찍 납득하면 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됐다. 그러나 모든 삶이 비루해야 하는 법은 아니기에 그는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 자
나는 당신을 사랑했는가? 글쎄. 나는 당신을 애정했는가? 어쩌면. 우리의 관계는 보다 발전하여, 우리는 서로를 붙들고 염원하고 애틋하다고 부를 수 있게 됐을 지도 모르는가?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럴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미정으로 끝나고, 모든 문장들이 가정의 한 끝에서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든다. 우리와 당신들은 다르다.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튀는 얼음 파편, 낯에 서늘하게 들이닥치는 공기,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곧은 춤선. 아이스링크장 위에서의 속도는 곧 다치지 않음과 비례하고, 느림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고수의 행위거나 초짜의 서투른 걸음으로 해석된다. 늘 얼음 위를 바라보던 루시아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 것은 한 사람 뿐이었다고. 그 사람을 따라
에이브 나인은 과연 문테라 헤즈윅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기존의 문테라 헤즈윅은 죽었다. 더는 따뜻한 살갗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더는 보드라운 살결에 뺨을 치대지 못할 것이다. 남은 것은 오롯이, 실리콘 덩어리와, 구동음 뿐. 에이브 나인은 악몽 속에서 일어난다. 코핀 속에서 눈을 뜬다. 제 하프문을 봄과 동시에 죽음을 직감한다. 저 너머에서 아무렇지도
에이브 나인은 월면 지구에 정착한 지 얼마 안 지나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원더러 호의 탑승자이자 생존자였던 것뿐만 아니라 개인 연구소를 차려 ‘기체권 향상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말이다. 운동권에 가깝지 않나? 라고 누군가는 속닥거렸으나… 뭐 어떤가. 어떤 분야로든 천재는 활약하는 법. 그의 이름과 명성은 남다른 것이 됐다. 그러는 와중 가장 시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