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로 가공된 삶

문테라 헤즈윅 추모/관계 로그

123456789012 by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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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사랑했는가? 글쎄. 나는 당신을 애정했는가? 어쩌면. 우리의 관계는 보다 발전하여, 우리는 서로를 붙들고 염원하고 애틋하다고 부를 수 있게 됐을 지도 모르는가?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럴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미정으로 끝나고, 모든 문장들이 가정의 한 끝에서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든다. 우리와 당신들은 다르다.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남은 것은 재기동을 한 기체, 관내 검색을 통해 원본의 모조품이 된 MOON, 그것 하나. 아, 테라. 나는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유서로 가공된 삶

나는 언제나 목숨을 바쳐가면서 까지 당신 사랑할 자신 있기에, 미정된 관계에 추모를…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다. 줬다가 거두어 갈 수가 없다. 변질 될 수는 있어도 말이다. 문테라 헤즈윅에게 품은 것 또한 그랬다. 에이브 나인은 서른 둘이라는 인생에서 겨우 살아간다는 감각을 인지한다. 즐거움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언젠간 나도 이 지긋지긋한 납골당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직감한다. 그리고 나는 그 미래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사가 늘 그렇듯 바라는 것 그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런고로 직감은 패배한다. 어린 천재는 수많은 노고와 질투 아래에서 무너진다. 죽어가는 사람의 형태를 바라본다는 것이 그 실책의 증명이다.

아. 나는 당신 앞에서 윤슬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신에게 한 톨 잃어버리면 곤란한 조각이 되고 싶었다.

나는 상자가 되어 당신의 유품을 정리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고, 당신의 온정을 삼켜서 그걸로 자생 가능한 식물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희망에서 그친다. 모든 원념이 상상 속 문장에서만 구현될 뿐 현실로 구체화되지 않는다. 종말이란 그렇다. 끝이란 그렇다. 모든 것이 마무리란 그런 것이다.

에이브 나인은 납득한다. 이번에도 실패였던 거야. 아무도 없는 방에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거야. 그러니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에이브 나인은 그 날 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하루를 잃어버릴 정도로 울음을 토해내며 몸부림쳤다.

식음을 전폐하고 단전이 꽤뚫릴 정도의 통증을 느끼는 것 즈음이야 생경한 일은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지. 아니, 당신은 그 무엇도 이상하다고 여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약 따윌 복용하든 말든 진정으로 마주하며 애정했을 것이다. 나라는 근본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라는 맥락은 거부당하지 않으니까. 나라는 존재는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니까. 그 유니크함과 독창성 하나 만으로 나는 보장 받았을 것이다. 무엇이? 인생 자체가!

그래, 인생 자체가 보존 됐을 것이다. 당신의 70년 넘는 인생, 까짓 것 5년 정도 더 소비한다고 하자. 그 정도 즈음은 어렵지 않다. 처음 만난 즐거움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된다. 처음 마주한 신남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된다. 처음 직면한 삶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된다.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당신만을 위한 자리 당신에게만 제공이 될 것이고 남들이 범접 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쳐둘 것이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인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니, 5년 즈음은 껌도 아닐 것이다.

라는 문장이, 실토를 하지 못할 정도의 금언이 되길 바란 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에이브 나인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온 몸이 흠뻑 젖은 채였다. 비명을 지른다. 이를 들은 써틴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슨 일이신가요, 나인.”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 아아…”

“무엇이 견딜 수 없-”

“문테라 헤즈윅이 죽었다는 사실을요.”

“……. 나인.”

“아, 왜 나를 두고 간 건지 알 수가 없어. 왜 나를 혼자 두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왜 나를 바보같은 족속으로 만들고 떠나버리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왜 나를 이 빌어먹을 세상에 버려두고 간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어쩌지. 나 그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눈물이 나요. 그가 없으면 안되는데. 내 인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데.”

“나인. 무덤으로 구경을 갈까요?”

“싫습니다!”

“어째서요?”

“가면, … 가면, 내가 혼자가 됐다는 게 느껴질테니까. ‘살아있는 사람’은 결국 이번에도 나 혼자 뿐임을 자각하게 될테니까. 트웰브와 윕키를 나를 두고 가버렸듯이, 나 이번에도 홀로 남겨졌음을 깨달을테니까…”

“그래요, 그렇다면 물이나 마십시다, 나인. 너무 많이 울고 있어요.”

“싫어요. 이대로 탈수 와서 콱 아플렵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이불 안에 박히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엔 또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의 몸을 해치기까지 한다. 긁어대며 짐승에 가까운 짓을 한 해 넘게 하다 보면 체감하게 되는 것이 있다. ‘약을 그만 먹어야만 하겠어.’ 그런데 임의로 단약을 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점이 있는가? 슬픔이란 감정은 이미 체득되어서 제 몸에서 떨어지지도 않을텐데? 그래서 그는 고개를 떨군다.

‘안드로이드’가 된 문을 마음껏 껴안을 수 있단 사실은 물론 좋다. 상대에게 문, 당신의 살갗이 말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수십 번 정도 실험을 거쳐 인공 피부를 씌우는 것도 좋다. 손에 손 잡고 파르페 먹는 아저씨 둘을 구경한다거나, 문과 바티가 함께 산책 하는 곳 중앙에 끼어 들어서 양쪽에 손 잡고 이동하는 것도 좋다. 다 좋은데, 그곳에 테라는 없다. 그곳에 나의, 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었던 테라 따위는 없다. ‘나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테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테라. 그러게 왜 나를 혼자 두셨습니까.

테라. 그러게 왜 나를 혼자 두셨습니까.

테라. 그러게 왜 나를 혼자…

죽은 자를 향해 외쳐봤자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해진 수순에 따라 모든 것이 침묵으로 맺어졌다. 고해한다. 나는 이 긴 시간을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으리라고. 내 맹세와 맹약 사이에서 정신을 놓기를 택해버리겠노라고. 나, 여기서 미쳐버린 채로 살아가길 택하겠노라고. 난 도저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미래를 잊지 못할테니까…

테라의 상자는 어느 날 인식표를 옷 안으로 감추게 됐다. 그 날 부로 테라를 더이상 찾지 않게 됐다. 5년을 다 채운 참이기도 했고, 이제는 그의 유언대로 ‘살아가는 것’만 남아서이기도 했다. 그는 기꺼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유서의 효력을 다하는 증정품이 되는 삶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이자 추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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