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겜무

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3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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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층이 열리고 정확히 열흘 뒤 보스 공략 회의가 진행되었다. ‘더 퍼레이드’는 길드장이 죽은 이후로 부길드장이었던 온화가 뒤를 잇게 되었다. 더 퍼레이드는 과거의 명성이 될 뻔했으나 온화의 카리스마 또한 길드장 못지 않았던 덕분인지 금방 다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컨코드 또한 인원수를 늘리기보단 길드 내부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좋은 아이템이나 벌이 좋은 던전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것이 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스테노 또한 평소와 조금 달랐다. 길드를 세우기 위해 최소인원을 채워야만 했다. 그 탓일까, 안색이 안 좋았다.

“오늘 회의는 끝입니다. 곧 선발대를 보낼 것이니…….”

스테노는 회의에 집중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이를 눈치챈 슈크림이 회의가 끝난 직후, 그녀에게 물었다.

“스테, 무슨 일 있어?”

“슈, 눈치챘어?”

“어떤 걸?”

“마린이 보스 공략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어.”

스테노의 말에 슈크림은 아차 싶었다. 보스전에 참가하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슈크림은 마린이 한 층도 빠짐없이 보스전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느렸다. 반면에 스테노는 보스전에 매번 참가했기 때문에 마린이 빠졌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건 이상하네.”

“무슨 일이 생겼어.”

스테노는 곧바로 친구 창을 열었다. 저번에 마린과 친구 등록을 해 둔 덕분에 현재 상태는 알 수 있었다. 마린, HP는 풀로 채워져 있는 상태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듯 했다.

심각해 보이는 두 사람 곁에 신속배달이 달려왔다.

“오늘 마린 안 왔네, 너네 혹시 알아?”

“신속 씨…. 아뇨, 저희도 잘 몰라요.”

“메세지, 보내 봤는데 답이 안 와.”

한참 동안 기다리자 메세지 창이 오프라인 모드로 바뀌었다. 이 말은 즉, 필드나 주거 구역에는 없다는 뜻이다.

“미궁이나 던전에 있어.”

“그렇겠군, 그렇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겨서 못 빠져나오는 중이겠지. 보스 공략 회의 날짜를 마린이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으니.”

“어떡할까요?”

슈크림의 질문에 스테노와 신속 배달은 조용해졌다. 두 사람 다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찾아야지.”

스테노가 말했다 뒤이어 신속배달도 짧게 “그래,” 라고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였다.

“내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 수소문해볼게. 67층에 던전이 총 몇 군데 있지?”

“네 군데.”

“망할, 엄청 많네. 일단 흩어져서 찾자.”

막무가내라는 생각은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문적인 인력 동원 없이 실종된 사람을 찾는 격이었으니까. 신속배달은 67층 동북쪽 던전, 슈크림은 광안파도주먹과 협력해 남쪽 미궁 구역을, 스테노는 서쪽 던전을 찾기로 했다.

스테노는 몇 번이나 더 친구 창을 들여다보았다. 혹시라도 HP가 0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을 봐 버린다면.

“…저어.”

누군가 스테노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자 저번 50층 보스 공략 당시 잠깐 보았던 소심한 인상의 여자였다. 동그란 안경 너무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고개를 기울였다.

“음?”

“누군가를 찾고 계신가요…? 아, 죄송해요. 이야기를 엿들어서.”

“맞아.”

여성은 천천히 스테노의 곁에 다가오더니 시선을 받을 때마다 몸을 떨었다.

“추적, 스킬은 써보셨나요?”

“색적이라면 알아.”

“색적의 그, 상위호환이에요…. 저번에, 스테노 씨가 보스방 근처에서 색적 스킬을 쓰는 걸 봐서…….”

스테노는 두 눈을 끔뻑였다. 언제 그런 걸 다 봤담. 그러나 별다른 태클은 걸지 않았다. 스테노의 색적 스킬은 아직 추적 단계까지 오를 수 없었다. 추적을 사용한다면 쉽게 마린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충고 고마워. 사용해 볼게.”

스테노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안전지대를 벗어나자마자 곧장 색적 스킬을 사용했다. 현재 추적 습득까지 남은 경험치는 335 정도. 몇십 번만 더 사용한다면, 색적을 습득할 수 있을 테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틈은 없었다. 닥치는 대로 찾으러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어느 미궁 구역 깊은 곳.

밑으로 추락한 마린은 맵을 펼친 채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역시나 이 앞은 도달한 적 없는 미지의 구역이었다. 한숨을 푹 쉬고는 색적 스킬을 발동시켜 주변에 적이나 오브젝트는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텅 비었다.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 너무 어두운 탓에 앞이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이템 창에서 작은 등잔을 꺼냈다. 혹시 몰라 쟁여둔 것인데, 지금 쓰게 될 줄은. 불을 밝히자마자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까마득한 어둠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

등잔을 앞으로 돌린 순간, 자신이 애용하는 대낫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추락하면서 손에서 놓은 것이겠지. 마린은 빠르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때.

쉬익.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눈을 깜빡이자 방금 전까지 놓여져 있었던 대낫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린은 당황하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어디에도.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집중하자 아까 보았던 작은 땅굴쥐 몇 마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땅굴쥐들 머리 위엔… 낫이 있었다.

…스틸 몹이라니!

운이 안 좋다. 통상적으로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는 아이템이나 무기를 떨궈도 24시간 동안은 주인이 바뀔 수 없기 때문에 아이템 칸에서 불러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스틸 몹에게 걸리면 말이 다르다. 불러오기가 불가능하여, 직접 몹을 잡아야만 한다.

이미 사라지고만 땅굴쥐를 쫓았다. 그러나 어둠으로 뒤덮인 긴 동굴 속에서 들리는 건 마린의 발걸음 소리 뿐이었다.

“……후우.”

침착하자. 이런 위기 상황은 몇 번 있었다. 마린은 텅 빈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무기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는데.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마린은 템창을 열어 무기 카테고리를 눌렀다. 대부분 다른 낫은 강화 합성에 사용해 이벤트로 받은 무기 말고는 없었다.

그녀가 가진 무기는 50층 당시 얻은 낡아 빠진 한손검 한 자루 뿐.

마린은 한손검 숙련도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휘둘러 봤자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있는 편이 낫다고, 무기를 장착했다.

색적 스킬을 사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문득 친구 창을 열어 프렌드 목록을 살폈다. 마린은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기 때문에 1년 반 동안 친구 0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딱 한 명 추가되어 있었다.

‘스테노’

아마 지금은 미궁구역이라 메세지를 보내도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마린은 고개를 저었다. 도움을 받을 필요 없어. 혼자서 하면 돼. 마린은 다시 천천히 생각했다. 내일 보스전 회의 전까지 돌아갈 수 있다면….

걷고, 또 걸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제는 늦었다. 그러자 그때, 지네 형태를 한 몹이 벽의 구멍에서 기어나왔다. 이름이 불그스름한걸 보아, 마린과 레벨이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몹이다. 위에서는 별 거 아닌 잡몹만 나왔는데.

마린은 게임에 천부적인 센스가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더라도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숙련도가 부족한 탓인지, 지네의 물기 공격에 여러 차례 당하고 말았다. 주변이 어두운 탓도 있어 싸우기 불편환 환경임은 틀림 없었다.

“허억, 허억…….”

독 대미지로 인해 HP가 실시간으로 감소했다. 마린은 급하게 해독제를 꺼내 들이켰다. 그러나 놈들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한 탓에 긴 싸움이 되고 말았다. 시간을 끌수록 포션과 해독제는 바닥을 보였고, 각각 열 개씩 남은 끝 지네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마린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주무기를 되찾아야만 했다. 무기만 되찾으면 저런 지네 몹 따윈 아무것도 아닐텐데…. 시간은 벌써 밤 11시를 가리켰다. 던전에 벌써 5시간이나 갇혀 있었다. 던전에 다섯 시간. 평소에 10시간은 넘게 필드에 나와 있는 마린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지 평소보다 배로 지쳐왔다.

마린은 미덥지 못한 한손검을 내려다 보았다. 평소에 다른 무기 숙련도도 좀 올려둘 걸 그랬나.

“그만두자…….”

HP는 30퍼센트 가량 남았다. 무기도 템도 슬슬 바닥을 보였다. 나아갈수록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네와의 전투는 마린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텔레포트 크리스탈 또한 먹통이었다. 크리스털 무효화 구역이라는 건 힐 크리스탈이 사용 안 되는 시점에서 깨달았다.

마린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싸우는 걸 포기한 건 아니었다. 아이템 창에서 호리병을 꺼내고는 꽁쳐 두었던 스킬을 꺼냈다. 스킬 보관 아이템은 전 서버에서 10개 밖에 없다는 희귀템이다. 그곳에서 ‘각성’ 스킬을 장착한 마린이 각성 스킬 사용 조건인 ‘집중 자세’를 취했다.

스킬 발동 시간까지는 꽤 걸리지만 모든 디버프에 대한 내성, HP 회복 속도 상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버프가 붙는다. 이걸로 조금만 더 버티자는 심산이었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넘게 지났다.

색적 스킬을 사용해 앞으로 나아가도, 자신의 무기를 스틸한 몹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무기를 찾는 것보다 탈출을 우선해야 싶기도 하지만…. 그리 간단히 포기할 수만도 없었다. 그 순간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출구 비슷한 게 보였다. 마린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

그러나 그것은 출구가 아닌, 또 다른 문이었다. 개미굴처럼 무수히 많은 문이 마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잔으로 비춘 곳마다 작은 굴이 보였다.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마린은 풀썩 주저앉았다. 그대로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자신의 발끝만을 바라보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집보다 병원에 더 오래 머물던 시절. 과보호였던 부모님 덕에 지금에 이르러서야 조금은 건강해 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늘 내일 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긴 투병 생활 동안 마린은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안 아팠으면 했다. 조금이라도 이 아픔이 덜어지길 바랐다.부모도 의사도 마린의 아픔을 알아줄 리는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타인이니까.

10대 초중반 즈음에도 마린은 친구와 사귀는 것보다 차라리 조용한 병실에서 게임기를 만지는 편이 좋았다. 인간관계는 귀찮다. 그러나 게임은 단순하다. 수치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강해지고, 친구 시스템은 그저 일시적인 협력만을 위한 도구니까.

소드 아트 온라인에 갇혔을 때,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신은 언젠가 분명 죽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가 컸다. 오랫동안 의식을 가상세계에 맡긴 채 잠들어만 있다면 몸은 갈수록 쇠약해져 많으면 3년은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 보자, 그런 집념이 마린을 공략에 매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마린은 살아.’

그 순간 마린은 자신을 걱정하던 스테노 일행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장면도 순식간에 꺼졌다. 도우러 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나 거절했으니까.

그래, 그럼에도 찾으러 온다면 그건 바보거나…….

…….

………….

“…린.”

“마린.”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잃었던 건지, 시야가 흐릿했다. 마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야는 여전히 새까맣다. 그러나 뚜렷한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스테노였다. 숨을 헐떡이며 마린에게 손을 뻗었다.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자, 어째서인지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아파왔다. 마린은 거부하지 않았다. 이번엔 그녀가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과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마린을 따라잡을 거야.”

…아, 정말.

따라잡혔네.

……

“스테노, 마린!”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도중 합류한 슈크림과 신속배달이 마린을 보자마자 환하게 미소지었다. 두 사람 다 급하게 달려온건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미궁 밖으로 빠져나오자, 쨍한 빛이 마린을 향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 아, 벌써 하루가 지났구나.

“보스, 회의는…….”

“그런 건 나중에 설명할게! 나온지 얼마 안 됐으면서 뭐 그런 걸 물어!”

신속배달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마린의 불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무기가… 아직 안에 있어.”

“무기라면, 혹시 이거?”

슈크림이 아이템 창에서 무언가를 오브젝트화 했다.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낫. 마린의 것이었다. 마린은 놀란 눈으로 슈크림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이걸…….”

“스테를 따라 미궁 안으로 들어가다가, 땅굴쥐? 가 들고 다니는 걸 봤어. 잡으니까 주더라고…. 마린 거인 것 같아서 들고 있었지.”

마린은 슈크림이 건네는 낫을 받아들어 소중히 껴안았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디고 다짐하면서.

“그나저나 스테, 어떻게 찾은 거야?”

“색적 스킬을 썼어. 쿨타임 끝날 때마다 쓰니까, 어느샌가 추적 스킬을 사용할 수 있더라고. 그래서 미궁 주변과 안을 돌다 보니…. 찾았어.”

“막무가내다, 참…….”

“마린을 찾아야 하니까.”

신속배달이 스테노의 등을 몇 번 툭툭 두드렸다. 어이 없음 반, 감탄 반이 담긴 행동이었다.

“………고마워.”

“응?”

“흐억!”

마린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슈크림과 신속배달이 경악했다. 그 두 사람의 반응에 마린은 새침하게 그들을 쏘아보았다.

“뭐. 나도 인사 정도는 해.”

“너도 사람이긴 하구나!”

“놀래서 미안해요. 그냥, 어… 인사를 들을 줄은 몰라서.”

“슈크림, 똑같은 말이잖아.”

세 사람이 가볍게 웃고 떠들었다. 마린은 어째서인지 그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마린, 역시 우리 길드에 들어와 줘.”

“이 상황에서도 권유를…!?”

“그래.”

“뭐!?!?!”

이번에도 거절 당하리라 생각했으나, 마린은 흔쾌히 수락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다같이 함께, 하는 건…….”

“따로 움직여도 돼.”

“……할당제 같은 건.”

“없어.”

“그런데도 길드야?”

“응.”

스테노가 작게 미소지었다.

“우리만의 길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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