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2화
“거절할게.”
명백한 거절이었다. 스테노는 두 눈을 몇 번 더 깜빡였다. 그리고 한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 길드에 들어와 줘.”
“…거절했잖아.”
“정말?”
“그럼 거짓말이겠어?”
마린은 단호했다. 팔짱을 낀 채 눈까지 감고 있었다.
“왜?”
“내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어?”
“응, 마린이니까.”
“그게 무슨 이유야.”
스테노는 조금 풀이 죽은 듯 보였다. 곁에 서 있던 슈크림이 허둥대더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꼭 함께 행동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래도 든든하잖아.”
“난 필요 없어. 솔플이 편해.”
솔로 플레이가 편하다는 건 60층을 넘어선 시점에서 상당히 마니악한 말이었다. 점점 더 영악해지는 몹들. 조금씩 늘어나는 사망자 수. 이런 무법지대에서 홀로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레벨이 오를수록 렙업 효율이 떨어진다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 마린의 말대로 길드일 때와 솔플러일 때의 차이점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건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야.”
마린이 처음 권유를 받았던 건 60층을 막 넘어섰을 시점이었다. 스테노가 길드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게 왜 이제와서인지는 아마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거절한 이유는 뚜렷하다.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몇 번 생사를 넘나든 적은 있지만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죽음과 마주하는 짓은 질리도록 해 왔으니까. 마린은 몸이 약했다. 어릴적엔 병원 침실에 누워 그저 한없이 끝나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10대에 들어서서야 몸이 조금 나아져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러나 마린은 바깥의 상쾌한 공기보다도 딱딱한 게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마린은 죽는 게 무섭지 않아?”
문득 스테노의 말을 떠올렸다. 몸이 약한 탓에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의식을 잃는 건지 게임 속에서도 연결이 끊길 때가 간혹 있었다. 왜 이럴 경우에는 죽지 않는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린은 낫을 휘둘렀다. 어지간한 잡몹은 소드 스킬을 쓰지 않아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마린은 살아.”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유 없이, 때때로, 잊을만 하면. 그리고 스테노 일행과 보냈던 소소한 일상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그건 환상이다.
소드 아트 온라인은 비일상이다. 현실이 아니야, 그러나 마린에게는 일상이었다. 모두들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린은 어찌 되든 상관 없었다. 게임이 곧 그녀의 현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스테노 일행은 다르다. 이 게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니… 길드에 들어갈 자격 따위 없다.
67층을 공략 중이던 어느 날.
“나랑 승부해 줘.”
“뭐?”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필드에서 스테노 일행과 맞닥트렸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동시에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뜬금없는 말에 당황하면서도 도망치지는 않았다.
“승부해서, 내가 이기면 길드에 들어와 줘.”
스테노의 곁에 서 있던 슈크림이 당황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느냐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게, 첫 권유 거절로부터 벌써 한 달 반이나 지났으니까.
“…승부라면?”
“듀얼.”
듀얼. 플레이어끼리의 한 판 승부.
평범한 게임이었더라면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HP가 0이 되면 진짜로 죽는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목숨을 건 승부이기 때문에 대부분 듀얼을 꺼린다. 그러나 스테노는 당당하게 이를 요구하고 있다. 즉, 목숨을 걸어서라도 마린을 데려오겠다는 심산이다. 슈크림은 스테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안 돼?”
“위험한 건 너야.”
현재 스테노와 마린의 레벨은 5정도 차이가 난다. 수치로는 아니라지만, 경험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예상과 달리 마린은 한숨을 쉬고는 듀얼을 승낙했다. ‘한 판 승부’이기 때문에 HP가 옐로우 존까지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스테노는 여전히 방패 없는 한손검. 마린 또한 대낫 한 자루를 든 채로 서 있었다.
3, 2, 1… 띠링!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스테노가 먼저 돌진했다. 마린은 스테노의 공격을 전부 받아냈다. 챙, 채앵! 날카로운 금속음이 몇 차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스테노의 검이 붉게 빛났다. 소드 스킬이었다. 마린은 동요 한 번 없이 무표정으로 똑같이 소드 스킬을 발동시켰다. 붉게 빛난 스테노의 검이 곧장 수직으로 날아들었다. 카앙! 마린의 낫이 부드럽고 빠르게 스테노의 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동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흡!”
여전히 이펙트로 감싸진 낫의 날이 스테노의 목에 육박했다. 그대로 베어버리기 직전, 마린이 몸을 틀었다. 목에 명중할 것 같았던 날이 가슴께를 베어냈다.
승자는 마린이었다.
“이걸로 끝. 길드 권유는 하지 마.”
“…….”
스테노는 멍한 표정으로 쇄골 부근을 매만졌다.
“…친구 등록.”
“뭐?”
“친구 등록은 해도 되지?”
스테노의 물음에 마린은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 하지만 더이상 길드 이야기는 하지 마.”
생각보다 깔끔하게 승낙했다.
잠시 뒤, 67층 안전 구역에서 신속배달이 합류하고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그는 뒷목을 벅벅 긁더니 어딘가 아니꼬운 눈빛으로 스테노를 바라보았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걱정된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혼자 있겠다는 사람을 왜 굳이 끌어들이려는 거야?”
“응, 나도 그게 궁금해.”
슈크림과 신속배달의 질문은 타당했다. 몇 번 보스전에서 얽히고 필드에서 신세진 적도 있지만, 그건 거기까지의 인연일 뿐이다.
“…사람이 죽는 걸 본 적 있어?”
스테노의 질문은 너무나도 예상 밖의 것이었다. 슈크림과 신속배달 두 사람은 놀라 흠칫 굳고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HP가 0이 되면 실제로 죽는 게임에 갇힌 이후로부터, 제 1층 보스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 죽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었다. PK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 듣기만 했을 뿐이지….
“난 있어.”
이야기에 담긴 묵직한 무게감에 비해 목소리는 말도 안 되게 평온했다. 마치 그게 일상이라는 듯이.
“이 게임 속 이야기가 아니야. 바깥……현실 세계에서 말이야.”
슈크림과 신속배달은 놀라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이유는 즉슨, SAO 내부에서 암묵적으로 현실 세계의 이야기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바타도 이미 현실 세계의 모습인데, 어째서 꺼리는지는 이 게임이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그게 누구인지, 언제 그랬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물어도 되는 말인지를 몰라서.
“그래서 난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죽는다면, 적어도 누군가가 보는 곳에서였으면 좋겠어.”
조용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 건 슈크림과 신속배달 뿐이었다. 정작 발언을 한 당사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게 마린을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야?”
“응.”
“음, 확실히… 저렇게 무리한다면 언젠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신속배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크림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만 느끼는건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게임 속이라서, 게임 속이니까… 다들, 설마 죽겠어? 라고 쉽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갇혀 있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이곳이 익숙해져 현실처럼 되어갈수록, 겁을 먹게 됐어. 그건 좋은 현상이라고 봐. 하지만 마린 씨는 어쩐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상관없다. 스테노는 마린과 공격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느꼈다. 신속배달이 턱을 문지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몇 번 그런 애들을 본 적이 있어. 혁이, 그 놈도 그랬고…. 하지만 마린은 그런 생각이 없는 부류라서가 아니야. 어쩌면, 그게 걔한테는 일상일지도 모르지. 난 스테노 네가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는 가.”
“오지랖인건 알아.”
“오지랖 부릴 필요가 있는 세상이라고. 우리가 알던 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신속배달의 말에 스테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 둘 말고는 길드 멤버 좀 모였어?”
“응, 광안파도주먹…….”
“아! 걔한테도 말 걸었구나. 좋은 녀석이지.”
세 사람은 그 이후 무거운 대화를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갔다.
이틀 뒤, 67층 숨겨진 던전 근처.
마린은 레어 아이템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듣고 필드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미로 같은 동굴을 하염 없이 걷는 중이었다. 워낙 깊은 곳이라 어지간하면 절대 혼자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발이 워낙 빠르기도 했고, 잡몹만 나와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다.
“여기도 아니야….”
과거, 몇 번인가 다른 사람(특히 스테노)에게 아이템을 선점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마음이 급해졌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으나, 마린은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그 순간.
파사삭.
무언가가 천장 위에서부터 벽면을 기어갔다. 마린은 곧바로 멈춰서 무기를 고쳐쥐었다.
“찌익, 찍!”
땅굴쥐. 머리 위로 커서와 함께 나타난 놈의 이름이었다. 약해 보였기에 마린은 낫으로 단숨에 베어 버렸다. 놈은 무력하게 파편이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응?”
그 순간, 땅이 흔들렸다.
마린은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흔들림이 멎은 동시에 안도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마린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러나 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땅이 움푹 꺼진 것이다.
“…!”
마린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깊고, 깊은…… 진정한 미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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