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혼(魂)

당보 X 청명 ; 죽은 이는 혼이 되어 연모하는 이의 근처를 맴돈다.

영원하기를 by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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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은 귀신같은 걸 믿으시오? ”

“ 귀신? “

타닥타닥.

두 거대한 남성 사이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낙엽 잎들이 바람에 굴러가고 달빛이 나무들 사이로 환하게 내려앉았다. 맑은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명멸하자 옅은 구름이 사뿐히 그것들을 덮었다.

” 귀신 그딴 거 뭐 대가리 깨면 그만 아니냐? “

” .. 도사 형님은 정녕 도인이 맞으시오? “

” 자신만만하게 들어와선 길 잃는 놈이 암존은 맞고? “

“ 아니 내가 요 숲이 이리 미로 같을 줄 알았나! 그러는 형님은 그 잘난 검으로 새 한 마리 못 잡으셨잖소! ”

“ 야,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불쌍해서 놔준 거지 그게 못 잡은 거냐? ”

“ 아! 그게 그거 아니오! ”

“ 이놈이 어딜 형님한테 큰 소리야! ”

“ 으악! ”

검집째로 휘둘린 매화검이 당보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하자 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밤낮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달아나는 주교를 쫓아 다다른 곳은 낯선 숲 한가운데였다. 이미 내력이란 내력은 다 쓰고 최소한의 것만 남아 기감을 펼쳐 길을 찾는 건 사치였다. 그 상황에 당보는 자신이 이 숲을 아는 것 같다며 당당히 길을 안내하다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찾은 새를 놓아준 건 분명 그것이 생각보다 잽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서글퍼 그런 것이다.

아무튼! 그런 것이다.

“ 그래서 갑자기 귀신은 뭐 때문에 물어보는데? ”

“ 예? 아, 요즘 세간에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

“ 소문? ”

청명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한 쪽으로 삐딱하게 숙였다. 단순히 고개를 숙인 것뿐이다만 천하제일인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과연 내뿜어지는 기세는 흉흉했다.

하나, 그의 말상대도 천하제이인으로 불리우는 암존 당보. 그런 기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니 어쩌면 익숙한 듯 말을 이어갔다.

“ 사람이 죽으면 등선을 하지 않고 귀신이 되어 그 자가 연모했던 이의 근처에 머문다는 소문이외다. “

“ .. 허. 바보 같은 소리 지껄이고 앉았네. 그럴 시간에 어떻게 하면 그 망할 마교놈들 목을 더 빨리 벨까 고민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

큭큭.

무명천으로 추혼비를 닦던 당보의 웃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쓰라리게 웃고 있는 그들의 옷에는 애석하게도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들이 가득했다. 오죽하면 옷에서 피가 묻지 않은 부분을 더 찾기가 힘들었다.

정마대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쟁은 그 대가로 너무 크나큰 비극을 선사했다. 마교에 부상을 당한 자들은 태반이었고 소중한 이를 잃은 자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그러한 소문이 생긴 것도 분명 그 때문이리라.

소중한 자를 잃은 슬픔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온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소문은 큰 절망 속에서 작디작은 부표가 돼준다. 덮쳐오는 파도에 그 자그마한 부표라도 있으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은 되지 않겠는가? 설령 그게 나의 몸을 띄울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런 작은 부표가 피를 뒤집어쓰고 길을 잃은 그 두 사람에게도 필요할지 모른다. 아니 이젠…

“ 형님. ”

“ 엉? ”

당보가 깨끗하게 닦인 추혼비 하나를 청명에게 던지고 그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왼손으로 잡았다.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한 것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면 기다란 녹빛 술이 추혼비 손잡이에 달려있었다.

“ 그러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

“ … 뭐? ”

당보의 뜬금없는 말에 청명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모아 인상을 힘껏 찡그렸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사랑스러운지 당보는 속 좋게도 하하 웃어댔다.

“ 뭔 소리인데? ”

“ 청문 진인, 청진 진인께서는 도인이신지라 선계로 가셔 내려오시질 못하시지만, 전 세가 놈 아닙니까. 그러니 이 암존 당보가 친히 도사 형님의 곁에서.. ”

“ 잠깐만, 뭔. 뭐라고? 장문 사형이랑 진이 그놈이 선계엔 왜 가. 너는 또 무슨.. ”

당황과 혼란에 가득 찬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당보의 눈빛이, 청명을 가득 담아낸 그 눈이 더없이 애잔해 보여서 그리고 깊은 죄책감에 베여있어서. 청명은 목소리를 더 낼 수 없었다.

“ 내가 이래 봬도 암존이외다! 형님 곁을 따라다니는 것 정도는 몸풀기도 안되오. 그러니 나는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아해들이랑 잘 있다 천천히 오쇼. “

” 이 망할 말코도사야. “

마취침이라도 맞은 듯 의식이 까무룩 해졌다. 애정이 가득 담긴 말은 그 둘의 성정을 내비치듯 썩 곱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 한 마디만큼 마음이 가득 담긴 말도 없어서 의식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을 헤집는 것이다.

청명이 눈을 떴을 땐 달님은 이미 서쪽 나라로 가고 해님이 쨍쨍히 숲을 비추고 있었다.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어 선선한 그늘을 만들고 생기 있는 구름이 바람을 타고 느릿느릿 움직였다. 불이 타오르던 자리엔 차갑게 식은 재만이 남아있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니 그의 앞자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이에 순간 불안감이 청명을 덮쳤다. 창백한 볼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붉은 동공이 사시나무 마냥 흔들렸다. 순식간에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얇게 새어 나왔다.

“ 보야..? ”

“ 보? 그건 또 누구냐? ”

“ 사숙! 청명이 깼어요? ”

“ 사형! 이설 사고가 꿩 잡았어요! ”

청명의 뒤편에 선 백천이 주저앉아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뒤로 조걸, 소소, 윤종, 이설, 그리고 혜연이 따라나와 합류했다. 그들은 아침으로 먹을 것을 잡으러 다녀왔는지 양손에 알 수 없는 식물들과 작은 동물들- 개중 큰 사슴이 있긴 했다만 조걸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에 포대자루 걸치듯 들고나왔다.-을 양손 가득 들고 돌아왔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가슴속에서 백아가 튀어나와 청명의 목덜미에 자리 잡았다.

“ 음? 청명아, 너 무슨 식은땀이 그렇게 나냐? 답지 않게 늦잠을 자더라니 악몽이라도 꾼 거냐? ”

“ 엑. 사형 악몽 꿨어요? ”

“ 괜찮으십니까, 시주? ”

“ 어, 어? 아니? 뭐.., 별거 아니야. ”

자신을 걱정하는 그들을 보니 그의 의식이 깊디깊은 꿈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뒷머리를 긁적이려 왼손을 들자 무언가가 왼손을 벗어나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밑을 내려보니 청명의 녹 빛 머리끈이 풀려 왼손에 올라가 있다가 듦과 동시에 떨어진 것이었다.

- “ 그러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

“ .. 망할 놈. ”

청명이 낮게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다만 그 말 역시 무엇을 그리 잔뜩 담았는지 썩 위협적이진 않았다.

“ 정말 괜찮은 거냐? 열도 좀 있는 것 같은데? ”

“ 응? 아, 아냐. 진짜 괜찮아. 오히려.., 음 그래. 길몽이었지. 조금 더워서 그런 거야. ”

“ 사질. 거짓말 안돼. ”

“ 아! 아니라니까? ”

“ 오, 진짜네요? 사형 피부가 조금 달아오른 거 말곤 별 이상 없어요, 사고! ”

“ 청명아,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말하거라. 아직 너에겐 우리가 짐 같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 않느냐. ”

“ 짐은 무슨, 청명이 전에도 저희 감당 못하고 바닥에서 뻗었잖습니까! “

” 조용하거라, 걸아. “

아니, 왜 저한테만.. 조걸이 살짝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청명을 제외한 육검일권은 귀환과 동시에 일시 분란하게 움직였다. 방금 막 일어난 청명과 함께 먹을 아침 식사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내려앉는 빛은 화사했고 그들에게서 자연스레 풍겨오는 정은 따뜻했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것은 꽤나 즐거웠으나 나머지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는지 홀로 앉아있는 청명의 이름을 불러댔다. 가벼운 헛웃음을 뱉은 청명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녹 빛 끈을 들어 머리를 대충 조여맸다.

“ 안 그래도 천천히 갈 생각이다. “

” 사방팔방 다 돌아다닐 거고. “

” 아마 세가 도련님한테는 좀 힘들 거다. 큭큭. “

약초의 향을 실은 바람이 청명의 목뒤를 훑고 지나쳤다.

” … 너무 오래 기다리진 말아라. “

” 청명아! 너도 좀 도와라! “

” 으휴, 짜식들.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

” 아무것도 못한다니! 너 혼자 노는 꼴을 못 봐서 그런다! “

.

.

.

” 나 참, 내가 암존인데! 그까짓 거 100년은 더 있어보지, 뭐. “

서늘한 산들바람이 두 사람을 스쳐갔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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