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1화

익명 by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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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넘버.

유진이 빠르게 보스의 생김새를 훑었다.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스의 정체는 고에너지의 레이저를 발사할 수 있는 불상이었다. 불상이라기엔 생김새가 어딘가 로봇 같기도 했다. 아랫쪽을 보자 보스는 좌불식으로 밑면을 아예 바닥에 대고 있었다. 즉 고정시킨 채였다.

“탱커를 선두로 전방 주시! 보스에게 접근합니다.”

보스방 자체가 넓은 편이기는 했으나 보스와의 거리가 평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이처럼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전히 앞열에 탱커들을 세워 둔 채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너무 신중한 탓이었일까. 라스트 넘버의 이마가 다시 한 번 번뜩였다. 원거리 공격의 징조였다. 이번엔 전진하던 탱커 또한 빠르게 방패를 세웠다.

지잉! 강력한 분쇄음과 함께 빛의 줄기가 분출되었다. 능축된 에너지가 가장 가운데에 있던 방패에 닿자, 단숨에 몇 미터 뒤로 밀려났다.

“으윽, 이래선…… 다가갈 수 없어요.”

“내구도는?”

“2800정도요. 아직 좀 더 버틸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네. 흩어지죠.”

그 순간 유진이 세운 작전은 이러했다.

대방패를 가진 탱커 한 명을 세우고 뒤에 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수가 달라붙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을 분산시켜 레이저 어그로를 분산시킨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는 자칫해서 전멸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후열에 계신 분들, 대방패를 든 분 뒤에 붙어 주세요! 네, 최대한 소수로…….”

유진의 말에 스테노가 벌벌 떨고 있던 몇몇 플레이어의 등을 떠밀어 대방패 뒤에 서게 했다. 신속배들 또한 대방패를 들었기 때문에 앞장섰고, 슈크림은 그런 그의 뒤에 섰다. 마린은 알아서 중앙에 선 탱커의 뒤에 서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흩어지세요!”

유진의 명령에 여섯 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속배달은 방패를 앞으로 내세운 채 왼쪽으로 빙 돌아 보스에게 접근하려 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이마가 아닌, 두 눈이 빛났다.

“이런…!”

유진이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두 개의 빛이 곡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일직선이 아니었다. 마치 눈알이 굴러가는 대로 빛줄기가 그어졌다. 보스 근처로 접근하려던 몇몇 플레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다행히 레이저에 당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레이저가 닿은 지면이 화르륵 타올랐다. 사람 키 높이만한 불꽃의 장벽.

“이럴수가.”

신속배달을 따라간 슈크림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를 악다문 신속배달이 방패를 세우고 붉은 불꽃에게 접근했으나, 도무지 피해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한 불꽃 벽은 세 개가 만들어졌고, 분산되었던 팀을 단절시켰다.

오른쪽 사이드에 있던 유진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직 보스에게 대미지도 입히지 못했다. 이대로 퇴각할까? 아니, 이 정도 시련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적어도 놈의 패턴은 봐 두어야 한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달렸다.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었구나.

“유진.”

자신을 목소리가 들렸다. 뿌연 사고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때 퍼뜩, 저도 모르게 무기를 으스러트릴 기세로 꽉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스테노였다. 까만 눈동자 너머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알려줘,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간결한 부탁이었다. 유진은 그제야 시야가 넓게 트였다. 갈라진 건 두 팀, 한 팀, 세 팀. 라스트 넘버까지의 거리는 약 30m. 문득 전에 요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길드장님, 저희 레벨도 있고. 믿어 주셔도 된다니까요?’

늘 건들거리는 요한이었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럴때 에이스를 부르지 않고 언제 부르겠는가.

“요한, 모르타! 그쪽은 맡길게!”

각각 왼쪽, 오른쪽에 있던 두 사람이 제대로 들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럴 것이라 믿고 뒤를 돌아 외쳤다.

“지금부터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소 흐트러지긴 했으나 각자 무사히 보스의 앞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불상형 보스인지라, 레이저를 발사하거나 팔을 휘두르는 정도의 공격만 했다. 공격이 분산되어 여유가 생겼다. 불꽃으로 분산되어 버린 게 역으로 도움이 되었다.

“스위치!”

스테노가 물러나며 외치자, 유진이 곧바로 뛰어들었다. 곧게 뻗은 창이 부채꼴 모양으로 휘었다. 그러더니 세 번을 찌르고, 다시 수직으로 긋는다. 장병기 소드 스킬 ‘익스트림 윈드’ 였다.

그러자 이번엔 땅이 흔들렸다.

“패턴 바뀐다!”

요한이 외쳤다. 그의 말대로 라스트 넘버의 자세가 조금씩 바뀌었다. 플레이어를 위협하던 팔이 곧게 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두 팔을 뒤로 뻗었다.

“무슨, 자세지? 저러면 마치…….”

공략팀은 감이 좋았다. 실력도 물론 출중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뛰어난 감이 한몫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99% 적중한다.

놈이 두 팔을 천천히 앞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마주보더니 쿵! 소리가 나게 손을 맞댔다. 그 순간, 돌풍이 불었다.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다.

“으악!!!”

그 돌풍에 40명 중 절반 넘게 방 끝까지 밀려났다. 대방패를 든 탱커도 몇몇은 뒤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 순간 라스트 넘버의 눈이 빛났다. 레이저 공격이 온다.

“피해!”

유진이 절규했다. 급하게 상황을 알아챈 플레이어 몇몇은 방패 뒤로 달려가 숨었으나, 패닉에 빠진 플레이어도 있었다. 바닥을 기며 벌벌 떨고만 있었다.

웅-. 눈이 한차례 크게 빛나더니 레이저의 빛줄기가 바닥을 일직선으로 그으며 날아갔다. 레이저가 패닉에 빠진 플레이어들이 모인 곳에 도달하기 직전.

“……!”

스테노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맨몸으로 막은 것은 아니었다. 스테노는 검을 붕붕 돌려 방패를 만들었다. 소드 스킬 ‘스피닝 실드’ 였다. 검이 너무 빠르게 돌아서 마치 방패처럼 보였다. 검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레이저를 빗겨나가게 만들었다.

“허억, 헉…….”

스테노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성공할 줄은 몰랐다는 듯.

“…바람 공격이 또 오기 전에 접근해서 공격하겠습니다! 포션 사용하시고, 바로 대방패 뒤에 붙으세요!”

정신을 차린 유진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떻게든 피통을 절반 깎았다.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포션을 마신 모르타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건재하는 불꽃 벽 너머에서 결심을 굳힌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무아지경이었다. 보스는 더 이상 큰 기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근접해오면 팔에서 바람을 쏘아댔다. 탱커는 방패만 계속 들고 있어야 했고, 딜러들은 딜을 넣을 틈이 거의 없었다. 유진의 아바타는 가벼워서 몇 번이고 바람을 맞아 몸을 굴렀다.

딜을 포기하고자 마음먹고 고개를 들자, 마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요령 좋게 바람 공격을 스치듯 피하며 놈의 몸통에 소드 스킬을 꽂고 있었다. 그녀의 동료인 슈크림과 신속배달은 날아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난 뭘 하는 거야.

멍해졌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자신의 길드를 앞세워 승리를 대가로 가져다주겠다고 했는데, 이래서는 의미가 없다.

“유진!”

모르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몸을 일으킨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모르타, 너….”

“유진. 넌 우리를 봐 줘.”

“뭐라고?”

“길드에 들어왔을 때, 내가 말했지. 반쯤 장난이었지만…. 난 나름 진심이었어.”

유진은 모르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잠시 뒤에 깨달았다. 길드를 처음 세웠을 때, 요한 다음에 들어온 건 모르타였다. 그녀는 셋 중에서 레벨이 가장 높았다. 솔플의 효율이 떨어지자 길드에 들어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 순간 유진이 눈에 들어왔다. 운명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리더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눈부셔 보였다.

‘살아남으려면 레벨이 높은 사람은 레벨이 낮은 사람에게 정보와 템을 제공해야 해. 서로 돕고 살아야지. 비단 게임 내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야.’

모르타는 그것도 한계가 있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길드만큼은 이 이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모였으면 해.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유진의 말에 모르타는 그저 픽 웃을 뿐이었다.

‘진짜야. 만일 벽에 부딪히는 날이 온다면, 정신 차리게 해 줘.’

‘때려서라도?’

‘때려서라도.’

모르타가 손을 들었다. 강하게 내려칠 것 같았던 그 손이 유진의 등을 가볍게 칠 뿐이었다.

“쫄지 마, 리더.”

그 말에 유진은 자신이 겁에 질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으로는 아직 우리 길드가 선두에 서기는 이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냥, 들떠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를 결코 만만하게 본 적은 없을 텐데도.

“…신속배달 씨! 당신은 그 상태를 유지해 주세요! 요한! 그쪽 방패 팀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지시를 들은 신속배달은 “얍!!!” 크게 대답했고, 요한 또한 손을 들어 따봉을 날렸다. 보스의 남은 HP는 약 20%정도. 총 공격으로 몰아붙이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모르타, 넌 우리 길드 내에서 가장 강해. 마린 씨를 도와.”

“오케이.”

모르타가 달려나갔다. 고개를 돌리자 스테노가 보였다. 처음과 달라진 게 없는 결연한 표정. 그저 검을 쥔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고르고 있었다.

…역시 우리 길드로 데려오지 못한 게 아쉽네.

“스테노 씨와 나머지 아홉 분들은 절 따라오세요. 탱커들이 어그로를 끄는 사이 공격할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테노가 도약했다. 무섭지도 않은 건지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정면? 그렇구나. 팔은 중앙까지 닿지 않는다. 레이저 공격에서도 사각지대. 대미지는 적게 들어가더라도 공격하기엔 좋은 곳이다. 스테노가 묵직한 검을 몇 차례 휘두르고는 스위치를 외쳤다.

“하압!”

유진과 몇몇 사람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소드 스킬을 먹였다. 공격에 여유가 생겼다. 어그로를 끌어주는 다른 탱커들 덕분이었다.

HP 바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운이 안 좋으면 패턴이 바뀔 것이다.

보스의 팔이 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작. 또 한번 돌풍이 불고 레이저로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온다! 대비를…….”

그러나 이번엔 동작이 빨랐다, 느릿할 줄 알았던 손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쾅! 소리를 내며 마주보았다. 대비를 미처 끝내지도 못했는데, 돌풍이 불었다.

이번 돌풍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날아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진은 바람으로 날아가며 그저 멀어져가는 보스의 몸체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 순간 시야가 고정되었다. 더는 보스와 거리가 멀어지지도 않았다. 스테노였다. 바닥의 틈새에 검을 꽂고는 버틴 것이다. 붙잡은 유진의 망토를 끌어당기더니 던지듯 놓았다.

“……가!”

그 외침에 힘입어 유진이 돌진했다. 보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진의 창이 노랗게 빛났다.

“하아아앗!”

‘스피링 셔터’ 숙련한 창 소드 스킬 중에서도 가장 공격력이 높은 8연격 기술. 망설임 없이 보스의 몸통에 꽂아 넣는다. 예리한 창 끝이 8연격의 끝을 마무리짓자, HP가 0으로 줄었다.

그렇게 누구도 죽지 않고 50층이 클리어 되었다.

2주 넘게 굳게 닫혀 있던 51층의 문이 열리자, 길드 컨코드 멤버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새로운 층의 지면을 밟았다. 유진은 그저 멍하니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한이 다가왔다. 그 또한 상당히 지쳐 보였다.

“고생했네. 잠깐이지만 파티장 리더 맡아서.”

“이야, 역시 전 통솔하는 건 안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종종 부탁할게.”

“그건 좀….~”

모르타가 다가왔다. 유진의 곁에 서며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 모르타.”

“됐어 그보다 앞으로 어쩔거야? 어차피 너니까 길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신경을 기울일 것 같은데.”

“잘 아네. 음……. 전보다 내부 강화에 신경 쓸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유진이 왔던 길을 돌아 보았다. 스테노 일행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있는 걸 좀 더 잘 챙겨야지,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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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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