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0화
길드 ‘컨코드’는 그날부로 새로운 공략팀을 찾아 나섰다. ‘더 퍼레이드’라는 대형길드가 전선에서 물러난 지금, 그 빈자리를 채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큰 사고가 난 이후라서인지 좀처럼 자처해서 보스전에 참가하고자 하는 길드가 나타나질 않았다. 길드 ‘컨코드’ 본부로 들어온 모르타가 요한과 만났다.
“요한, 그쪽은 어떻게 됐어?”
“우리는 다섯 명 정도? 이것도 많이 모은 거야~…”
두 팔을 저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보스전에 참가해 줄 플레이어를 찾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서 전달할 뿐 아니라 직접 두 발을 뛰며 돌아다녔다. 이틀이 넘게 지났으나, 가까스로 공략에 필요한 멤버 절반을 채운 정도였다.
“난 조금 더 찾아볼게.”
“기운도 넘쳐라. 나도 좀 쉬었다가 돌아봐야겠다~.”
그러나 모르타가 아무리 여러 길드에 문의를 해 보아도 보스전에 참가해 줄 만한 용자는 찾지 못했다. 신문을 통해 이미 전 층에 퍼졌을 소문을 생각하면 이해도 간다.
“유진, 아무래도 소수로 공략을 해야 할 것 같아.”
“역시 안 모이지?”
“그래, 우리 길드만으로…….”
모르타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선발대가 50층 보스룸에 들어갔을 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도중, 빛이 번뜩이더니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대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크리스탈을 사용해 현장에서 도망쳤다. 공략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깊게 고민하던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전은 사흘 정도 뒤로 미루겠어.”
“사흘동안 어쩌게?”
“대규모 훈련에 들어갈 거야. 장비도 강화하고, 포션도 배로 구입해야지.”
“……길드의 금고를 쓰는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더 퍼레이드’는 멤버가 100명은 되는 대형 길드였다. 그 중에서도 선발대는 고레벨만을 뽑는다. 그들 중 절반이 사망하였으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추모할 시간도 필요하고.
“우리도 멤버가 50명은 넘는 대형 길드야.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어.”
“우리 길드 멤버가 아닌 다른 공략원들은?”
“……그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어. 내부 강화에 집중하자.”
그때 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요한?”
“그게… 모이긴 모였는데 조건을 걸어오던데요. 보스전에서 얻은 레어 아이템을 본인들에게도 배분해 달래요.”
“몇 명이지?”
“음, 아홉 명 정도 모인 소형 길드였어요. 어떻게 하실거죠?”
유진은 짐짓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모르타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좋아, 받아들일게.”
하루 뒤, 보스 공략 회의가 열렸다.
장소는 길드 ‘컨코드’의 본부였다. 새하얀 망토가 트레이드 마크인 컨코드 사이에서 형형색색 다양한 방어구를 걸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긴장한 건지 경계하는 건지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스테노 일행도 있었다. 스테노와 유진의 눈이 한 번 맞았다.
“오늘은 바쁘신 와중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50층 공략에 차질이 생겨 부득이하게 비 공략조인 여러분을 한곳에 모으게 되었습니다.”
유진이 말을 하는 동안 스테노는 이 상황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언제더라, 아. 1층 보스전 공략 회의 때.
“저희 길드 컨코드는 이번 50층 보스전 공략의 선두 지휘를 맡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는 서포트 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바로 보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말이 뚝 끊겼다. 그러나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이번 사고로 인해 보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접 부딪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 길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서 보스의 패턴이나 생김새 등을 봐 주시면서 적절히 대응해주시길 바랍니다.”
유진의 말에 내부가 술렁거렸다. 그동안 공략은 대형 길드가 선발대를 뽑아 미리 보스의 패턴을 가볍게 살피고 후퇴한 뒤, 태세를 정비했다. 이렇게까지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그러나 저희가 알아낸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닙니다. 보스의 모습은 어두워서 보지 못했으나, 광범위 원거리 공격을 사용하는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러니 탱커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한번 더 소란스러워졌다. 괜히 참가했나, 부터 어쩌라는 거냐는 말들이 오가는 게 들렸다. 그러나 유진은 그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길드장님.”
누군가 손을 들더니 유진을 불렀다. 컨코드 사람은 아니고, 요한이 불러온 소수 길드 멤버 중 한명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조금 소심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왜 바로 보스에게 도전하지 않는 것인가요? 급하게 모은 것 치고는 보스전은 사흘 뒤에 열겠다고 하셨는데….”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그럼…… 저희는 뭘 준비해야 할까요? 보스전 자체에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도 많고, 아예 처음인 사람도 있어서….”
그렇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길드 멤버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 모인 열 다섯 명의 사람들은 보스전을 경험하지 못한 일반 플레이어다. 레벨이 낮지는 않으나, 공략팀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한 점이 있다. 숫자 채우기만 될 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포션과 크리스탈은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장비를 재점검하시고, 여기 계신 두 분에게 보스전에 대한 팁을 들으시면 됩니다.”
유진이 모르타와 요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몇 차례 더 술렁거리긴 했지만 회의는 종료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테노가 유진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스테노 씨. 오랜만이에요. 매번 보스전에서만 만나 뵈네요.”
유진이 손을 내밀자 스테노가 맞잡았다.
“힘들겠네.”
스테노의 말에 유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희 길드에 들어올 생각은 여전히 없으신 거죠?”
“응.”
“그래요, 뭐… 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당연한 거야.”
당당한 스테노의 발언에 유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 떨리지 않는 손, 그리고 부딪힐 줄 아는 용기….
“그쪽 길드만으로 괜찮겠어?”
“어떻게든 해 봐야죠. 경직되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지. 걱정마. 우리가 도울 테니까.”
우리? 유진이 스테노의 어깨 너머를 보자 여러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략 회의에서 여러번 마주친 적 있는 신속배달과 마린,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
“그렇군요. 마음이 든든하네요.”
그 후로 약 사흘 동안 길드 ‘컨코드’는 보스전을 대비해 대규모 정비에 들어갔다. 레어 아이템을 드롭하는 몬스터의 정보를 정보업자에게 사서 본격적인 파밍을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왜 못 지나가게 하는 거야! 우리도 파밍 좀 하자고!”
일부 플레이어들이 컨코드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던전과 필드의 자리를 독점하게 되면서 비매너 플레이에 불만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길드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SAO는 더이상 게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의 목숨을 짊어진 공략팀에게 양보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는 당연히 반발을 일으켰지만, 뭐라 할 수도 무력으로 밀고 갈 수도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보스를 잡아야 하니까. 이 게임에서 탈출해야 하니까.
“유진, 괜찮겠어?”
“응, 이게 최선이야.”
모르타가 걱정스럽게 묻자 유진은 담담하게 답했다. 장시간도 아니고 딱 사흘간이다. 그동안 참아 주기만 하면…. 보스전 승리라는 명함을 대가로 내놓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모르타는 유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길드장님이 옳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으니까요.”
요한이 기지개를 쭉 피면서 말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모르타의 걱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우린 더 퍼레이드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길드야. 이 참에 입지를 다져두는 것도 좋지.”
“아, 그리고 길드장님. 이번 보스전이 끝나면 길드 내부 규칙을 강화하는 게 좋겠어요. 아무래도 매번 문제를 처리하는 건 귀찮거든요.”
유진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 보스전 당일이 되었다. 컨코드 멤버 스물 두 명, 일반 플레이어 열 여섯 명이 보스방 문 앞에 모였다. 다들 경직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길드 컨코드의 멤버들의 방어구와 무기는 꽤나 달라져 있었다.
“거 참. 자기네만 좋은 거 잔뜩 끼워놨네.”
조금 뒷줄에 선 신속배달이 혀를 찼다. 일행과 조금 떨어져 있는 마린 또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두에 선다고 했으니까, 어쩔 수 없죠.” 슈크림의 말은 정답이었다. 전열 선발대 사람들이 열 명이나 사라진 걸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진다. 자처해서 앞에 서 준다면 방어구가 새 것인들 레어하든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들어가자.”
쿠구구궁….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흙먼지가 휘날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인 것처럼.
문을 열었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암흑. 시커먼 어둠만이 앞을 도사리고 있었다. 수 많은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번뜩였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불안을 감지한 유진이 앞을 나섰다.
“가드!”
선두에 서 있던 탱커 집단이 방패를 세웠다. 그리고 그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파직, 지이이잉…-
불꽃이 튀었다. 전방에 서 있던 사람이 무언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건…….”
“레이저……!?”
몇몇 사람이 그들을 공격해온 에너지의 정체를 깨달았다. 광범위 레이저. 그리고 그 레이저를 쏜 상대는….
커다란 불상. 이마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그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라스트 넘버]
그것이 50층 보스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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